먼 옛날 변방 지역에 한 노인이 살았다. 그는 말을 길렀는데 어느 날 기르던 말 한 필이 국경 너머로 달아나 버렸다. 이를 본 이웃 사람들은 노인이 큰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해 위로하였다. 하지만 노인은 담담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수개월 후 달아났던 말이 훌륭한 준마 한 필과 함께 돌아왔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말이 좋은 말을 데리고 돌아왔으니 누가 보아도 큰 행운이었다. 사람들은 노인을 축하했지만 노인은 또 조용히 말했다. “이 일이 훗날 화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집에 좋은 말들이 넉넉하여 노인의 아들이 말 타길 좋아하다가 떨어졌고 다리가 부러져 절름발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위로하러 왔지만 노인은 이번에도 태연하게 말했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얼마 뒤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장정들은 활시위를 당기며 싸웠고 변방의 젊은이들은 열 명 중 아홉 명이 죽었다. 하지만 노인의 절름발이 아들은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어 부자(父子)는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다.
-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 이야기
그 해는 삼재(三災)였다 한다. 엄마 말에 따르면 그랬다. 엄마가 이야기 들었다는 점쟁이랬나 사주쟁이랬나가 그랬단다. 그리고 최근 챗GPT에게 내 생년월일시를 넣고 물어봤는데도 답은 똑같았다. 딱 그 시기가 내 삼재의 해였다고. 몸의 이상함을 느꼈던 해가 들삼재(入災)의 해였고, 원인을 찾아 헤매던 해는 눌삼재(沈災)의 해였으며, 진단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던 해가 날삼재(出災)의 해였단다. 어쩜 꼭 그랬을까, 신기하게도 말이야.
삼재가 됐든 뭐가 됐든 아마도 모든 건 내 운명이 그렇게 이끌었을 뿐일 테다.
내가 의무소방으로 군복무를 하지 않았더라면 뇌종양에 걸리지 않았을까? 복무 중 화재진압 과정에서 먼지를 마신 바람에 나는 뇌종양에 걸렸던 걸까? 세상에, 그걸 누가 알겠는가 오직 하늘만이 알 일이지.
솔직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병이란 훨씬 더 크게 잘못될지 모를 내 미래를 염려한 운명이 거쳐가게 만든 경유지였는지도 모른다고. 뇌종양이라는 중간기착지를 거치는 방법만이 더 나쁜 미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그래서 운명은 나를 그리로 이끈 거라고. 영화 <어벤져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천사백만 육백 다섯 개의 미래를 보곤 승리할 단 하나의 미래를 위해 타노스에게 타임스톤을 넘겨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인생은 새옹지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건 운명일 따름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병에 걸리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 운명에 따른 것이라고.
‘그럼 열심히 살 필요 따위 전혀 없는 거 아냐? 다 운명이 정해 놓은 거라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열심히 살아가는 마음 자세를 만들어 준 것도 운명이고 게으른 정신 상태와 삶에 충실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것 역시도 운명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열심히 사는 것도 운명이고 헛되게 사는 것도 운명이다.
그렇다면 삶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건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운명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하는 것 아닐까? 스스로 삶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충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만 운명도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줄 거라는 얘기다. 자신의 ‘운(運, 運命)’을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인사하고 쓰레기를 줍고 심판에게 예의를 갖추며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 애쓴다는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처럼.
그리고 브런치에 ‘정말 다행이야, 뇌종양이라니’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을 만들어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것 역시 운명이라 생각한다.
2024년 4월, 나는 경기도 양평군의 한 공구상을 찾았고 거기서 인터뷰이의 아내로 이현정 작가님과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작가님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팔로우했고 어느 날 작가님 브런치에 올라온 ‘작심살롱’이라는, 한 달간 매일 쓰는 모임의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게시물을 보곤 용기를 내 지원하게 됐다. 그리고 살롱의 멤버로서 매일같이 글을 끄적이다 보니 어머나, 이게 웬일? 그동안 자신이 없어 머뭇대기만 하던 진짜 ‘한 편의 글’을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야 만 것이다. 이후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통과되어 ‘정말 다행이야, 뇌종양이라니’라는 브런치북은 시작될 수 있었다.
2025년 9월 15일, 그렇게 이 브런치북은 시작되었고 2026년 4월 20일 마무리되었다.
내가 만약 뇌종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치료받느라 늦게 복학해 나이 많은 취준생들과 스터디를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가 잡지기자라는 꿈을 포기하고 어떻게든 겨우 다른 직업을 얻었다면, 더 나아가 양평군에서 공구상을 운영하는 인터뷰이를 섭외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현정 작가님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 브런치북을 과연 나는 쓸 수 있었을까? 단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케 세라 세라- 그야말로 모든 일은 운명일 따름.
브런치로 이끌어 준 이현정 작가님과 글쓰기로 한 월요일이 다가오면 ‘내일 글 올리는 날인 거 알지? 아직 못 썼으면 얼른 써’하고 간지럽혀 준 브런치에게, 그리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에필로그까지 스물아홉 편의 브런치북을 마무리지을 수 있도록 해 준 운명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래도 내가 운명에게 그리 밉보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운명을 생각할 때면, 나는 언제나 할머니를 떠올린다. 가족 아닌 타인들에게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기만 한 할매였을지 몰라도 나와 내 동생에게는 언제나 다정(多情)했던 할머니. 돌아가신 후에도 할머니께서는 하늘에서 언제나 우리 형제 걱정을 하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손주들 잘 되라고 온 마음으로 빌고 또 빌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마음이 운명에 닿아 내가 지금 이토록 건강하고 평안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이지 항상 감사한 마음 갖고 있어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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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이라는 병을 경험하며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많이 달라졌지 싶다. 무엇보다 가족의 사랑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병에 걸리기 전까진 엄마나 아빠 그리고 내 동생에 대해 뭐랄까, 관심이랄 것이 별반 없었다. 오직 나만 생각했고 나만이 중요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병에 걸리고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마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역시 내 병을 함께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더 가까워지고 더욱 돈독해졌을 것이다.
또 인생에서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정말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처럼 나는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가장 큰 달라진 점으로는 걱정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전까지는 짜 놓은 일상을 정확히 살아내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과 그로써 다가올 막막한 미래에 대한 우려에 얼마간 꽉 막혀 있기만 하던 나는 상당 부분 (어찌 보면 좀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변해버렸다. 미래의 일은 모두 운명이 정해둔 것이니 걱정한다고 안될 일이 되고 될 일이 안 되진 않을 거라는 생각, 나쁜 일이 있으면 그만큼 좋은 일도 있고 좋은 일이 있다면 또 나쁜 일도 찾아올 거라는 생각, 그리고 너무 가까운 곳만 바라보지 말고 더 먼 미래를 염두에 두자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한다.
저 멀리, 운명이 이끄는 내 마지막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걱정만은 하지 않으리라. 안달내 욕심부리지 않고 애써 피하려 들지도 않으며 그저 지금처럼만 충실하게 살아가면 결국 모든 일은 잘 될 것이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뇌종양은 나에게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져다주었다. 누가 뭐래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뇌종양은 나에게 긍정적인 가르침만을 남겨 주었다는 사실 말이다.
운명이 내 삶을 통과하게 했던 뇌종양,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 지금 내가 도달한 이 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쳐 본다.
“정말 다행이야, 뇌종양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