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8월 25일, 하루 세 번의 눈물

치료 후의 이야기 #10

by 이대


스물둘~스물넷 : 입대~제대
스물셋 겨울 : 몸에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
스물넷 : 제대 이후 확실히 이상해짐
스물다섯 7~8월 : 집에서 방에 틀어박혀 잠만 잠
스물다섯 가을 : 복학 그리고 휴학. 서울대학교병원 MRI촬영(12월)
스물여섯 2월 : 뇌종양 진단 후 입원. 항암치료 시작
스물여섯 하반기 : 방사선치료 시작. 두개골에 구멍 뚫고 조직검사. 치료 종료
스물일곱 3월 : 돌아왔어


치료를 마친 그다음 해의 8월 25일. 그날은 기록해 둘 만한 날이다. 나는 그날 하루, 세 차례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아침, 한 시간도 자지 못한 채 조금은 몽롱한 기분으로 깨어나 별생각 없이 동생에게 말했다. “형 어제 세 번이나 울었다?(강조하는 말끝 올림)” 그러자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나에게 물었다. “왜 울었는데?”

그러게, 나는 어떤 이유 때문에 세 번이나 울었던 걸까? 슬퍼서? 힘들어서? 아니다 그런 이유는 아니다. 동생의 질문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째서 세 번씩이나 눈물을 흘렸던 것인지를.


1. 첫 번째 눈물


뇌종양과 동반되었던 숨쉬기의 불편함 탓에 치료 종료 후에도 고생하던 나는 비염 수술 후 컨디션을 웬만큼 되찾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다시금 예전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게 된 것을 들 수 있겠다.

8월 25일 그날도 이전 몇 년간의 시간 동안 느끼지 못했던 행복한 기분으로 일어나 계획을 세웠다. 그날은 저녁 일곱 시쯤 승현이(18화 ‘치료 이후 달라진 것과 병으로부터 배운 것’ 참조)와 만날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그렇다면 오전은 평소처럼 비움으로 시작하고 열두 시쯤 점심을 먹고 하루키의 책을 두 시간쯤 읽다가 잠깐 자리에 앉아 뭔가를 쓰고 나서 144번 버스를 타고 강남역으로 가면 되겠구나, 하는 계획을 말이다. 오전과 점심과 독서를 마치고 학교 중앙도서관 1층으로 내려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계획한 대로 뭔가를 쓰기 위해서. 그날 쓰려고 생각했던 글의 원래 제목은 <글쓰기, 진로-2>였다.

MS워드 프로그램을 켜고 한참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런데 뭔가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일 테지만 글이란 제 나름의 방향성과 존재의 빛깔을 가지고 있는 법인 모양이다. 분명 시작은 내가 한 것인데 글이 흘러가는 건 제 스스로라는 말이다. 심지어 그 끝맺음 까지도. 하루키도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문장은 제 나름의 끝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고. 그날 역시 그랬다. 한 시간쯤 적어나가다가 글의 제목을 바꾸었다. <글쓰기, 진로-2> 에서 <행복하다>로.


그렇다면 눈물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글의 중간쯤 적었던 동생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생이 말한 ‘병신’이라는 단어. 동생은 고향 사람들 특유의 어투인 ‘븨응-신’ 가까운 발음으로 그 단어를 말했다.


<형이 병신 됐을 때, 병신처럼 잠만 쳐 자기만 할 때 그런 형을 보는 아빠 기분이 어땠겠냔 말이야>


그 문장을 타이핑하던 와중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그리고 동생에게 미안해서.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스러워서. 언젠가 그 시기에 대한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생각이 났다. 내 상태 이상 탓으로 날카로와진 엄마아빠의 다툼과 엄마의 눈물. 동생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감정이 떠오르자 너무나 죄송스럽기만 한 것이었다. 그 마음에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책상 옆자리에 앉아있는 학생 보기에 창피할까 봐 억지로 꾹꾹 눌러 참으며.


2. 두 번째 눈물


글을 마무리 짓고 홈페이지에 올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은 흘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마무리 지은 글의 제목처럼 행복했다. 집에 잠깐 들러 개인정비를 좀 한 뒤에 144를 타고 계획에 따라 강남역으로 향했다. 버스 안 창가 자리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정말로 그때 그 늦여름의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앞으로는 버스 타면 건물이나 자동차 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봐야겠다’하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하다가 이 기분을 엄마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난 요즘 너무 행복해. 컨디션이 정말 좋아져서 예전처럼 열심히 살 수 있게 되어서.]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흥겨운 기분으로 비틀즈의 《Rubber soul》을 들으며, 나는 어떤 곡이 폴이 쓴 것인지 존이 쓴 것인지 잘 모르니까 나중에 돌고래에게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각 곡마다의 선호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Michelle>은 동그라미 네 개 반, <Girl>도 네 개 반, <I’m looking through you>도 역시 네 개 반, 하지만 <Think for yourself>는 동그라미 한 개, <What goes on>도 동그라민 한 개 하는 식으로. 얼마쯤 지났을까, 열한 번째 트랙인 <In my life>가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엄마의 답문자가 도착했다. 버스 좌석에 앉은 채로 노래를 흥얼거리다 진동이 오는 걸 느껴 휴대폰을 보았는데, 엄마의 문자가 눈에 들어오자 곁에 있던 버스 안의 사람들 신경 쓸 틈도 없이 왈칵 눈물이 터져버렸다.


[대훈아엄마는너의행복이나의행복이야 너만행복하다면엄마는아무것도바랄것없어 네가행복하게살면그것이효도하는길이니까 너는무조건행복해야해알았지? 늘자신감있게행동하고 너의미래를실속있게설계하길바란다 사랑해 그리고고마워아들!]


너는 무조건 행복해야해, 그리고 고마워 아들. 턱까지 흘러내리는 눈물에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아직 도착까지 한참이나 남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린 그 순간, 흘러나오던 <In my life> 간주의 피아노 솔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찬연하고도 영롱한 선율을 말이다.


3. 세 번째 눈물


강남역 교보에서 일곱 시 반쯤 승현이를 만났다. 이번 만남은 그와의 네 번째 만남이었다. 그와 얼마 전 했던 약속, 다음 비 오는 날 만나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자, 라는 약속에 따라 근처의 파전집으로 향했다. 향하는 동안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만약 내가 뭔가를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빠의 희망에 따라 아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볍게 건넸다. 파전집에 도착해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조금씩 하고,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신 뒤 나는 이번에 그를 만나면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비밀 한 가지 말해줄까? 나 재작년에 J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서 지웠고 그 이후로 J랑 이야기한 적도 한 번도 없어. 내 이야기에 그는 깜짝 놀라 했다. 사실 승현이가 글을 쓰고 있고 그림도 굉장히 잘 그린다는 사실을 맨 처음 들었던 건 J로부터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승현이는 놀라하면서 한편으로는 왠지 그럴 것 같았다는 말을 꺼냈다. 분명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건 J로부터였을 텐데 자기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동안 J에 대한 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아서 뭔가 있나 보구나 생각했었다며. 그래도 그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말을 승현이는 들려 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날 J생각에 세 번째의 눈물을 흘린 것인가? 그건 아니다. J는 이미 내 마음속에서 정리된, 말하자면 이미 졸업한 사람이니까. 휴대전화 연락처 목록에서 그의 번호를 지울 때 나는 이미 그를 과거의 사람으로 분류해 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승현이와의 이야기 가운데 왜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내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그에게 J와 멀어지게 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입대 전 겨울, 나는 굉장히 외로웠고 처음으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고. 홈페이지에 뭔가를 쓰기 시작하자 주위에 하나 둘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 가운데 몇몇은 내 글에 반응을 보여 주었으며 고맙게도 또 몇몇은 내가 올리는 글에 덧글을 달아 주기도 했다며. 그 가운데 자주 댓글을 달아 주고 관심을 보여 주었던 건 J와 돌고래였다. 군대에 있을 때까지도 그 둘은 나의 주된 독자였다. 그러나 제대 후 나는 병 때문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하나도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잔뜩 굳은 얼굴로 말없이 앉아있을 뿐이었고 그 때문에 한 친구로부터는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사람을 만났으면 이야기를 좀 하라는 꾸지람을. 그리고 나는 그 시기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하기만 했던 일이었을까? 인간의 재미랄 것이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진 내 곁에서 하나 둘 사람들은 떠나갔다. 그것은 J도 마찬가지였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이야기를 잠깐 멈춘 채 승현이를 바라보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승현이는 그랬구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야 돌고래는 그래도 남아 주었어. 하나도 재미없어진 내 곁에 말이야. 홈페이지에 글이 올라오지 않을 때면 나를 닦달하는 글을 남겨주기도 하고, 가끔씩 올라가는 글에는 반갑다고 댓글을 달아 주었어. 나는 아마 돌고래가 없었다면…”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말을 잇자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온몸으로 실감한 것이다. 돌고래에 대한 고마움을. 참으로 미안하게도 그것은 너무나도 늦은 깨달음이었다.


아마 돌고래가 없었더라면 나는 진작에 글쓰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병인줄도 모르고 휘청대고만 있던 그 무렵에 말이다. 나는 그동안 대학에 입학해 돌고래라는 사람을 만나 뭔가 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생각하느라 그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고래가 없었다면 나는 내 꿈을 한참 전에 접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겨우 네 번째 만남이었던 승현이 앞에서 나는 손으로 눈물을 훔쳐 내며 웃으면서 이야기를 마쳤다. “아마 돌고래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을 거야.”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눈물이란 단지 슬픔의 의미만은 아니라고. 누구나처럼 나도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실감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지금의 나는 내 스스로가 겪은 경험으로부터 말할 수 있다. 눈물이란 단지 슬픔의 의미만은 아닌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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