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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개여시

미히스토리

by 미히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 호랑이 행세를 하는 짐승이 있었다.

짐승을 부르는 이름은 많았다.

평안도에 머무를 때는 맥(貘),

경주에 머무를 때는 넙덕바리,

통영과 거제에 머무를 당시에는 개여시,

부산 지역에서 머무를 때에는 장산범으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물렁물렁한 육지 문어와 같은 질감이었다.

이 동물은 오랫동안 목소리를 흉내내어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서 인간들은 귀에 줄이 달리거나 달리지 않은 마개와 비슷한 무언가를 끼고 다녔고,

더이상 짐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짐승은 오랫동안 배를 곯았고,

산짐승이나 강가의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겨우 목숨을 유지했다.

어느 날, 그는 감악산에서 호랑이를 마주쳤다.

“뭐야, 이 여우같은 것, 너 아직까지 내 흉내를 내고 다니는거냐?”

호랑이가 큰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아 저 그게,”

짐승은 얼른 꼬리를 말고 몸을 움츠렸다.

“한심한 녀석, 남쪽 반도에 내려오지 않은 사이에, 너같은 놈이 나를 흉내내고 있을 줄이야.

여기는 여전히 나의 영역이다, 썩 꺼져.”

짐승은 깨갱 하는 소리를 내며 산을 타고 내려왔다.

짐승은 몸을 길게 늘여 하수도관 밑을 지나, 한 물 줄기에 다다랐다.

아라뱃길이었다.

평온한 분위기에서, 러닝을 하는 사람이 다가 왔다.

짐승은 몸을 넓적하게 늘여 풀숲에 숨어, 아기 소리를 냈다.

‘응애, 응애, 응애.’

그러나 사람은 짐승을 지나쳐 달려갔다.

그 사람의 귀에는 줄이 없는 마개가 끼워져 있었다.

‘더이상 사람들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그 때 목줄이 풀린 흰 강아지 한 마리가 뒤에서 나타나 짐승을 위협했다.

“으르르르”

‘나 원 참,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짐승은 한 입에 강아지를 삼킬 준비를 하며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깨깽”

강아지가 짐승의 커다랗게 벌어진 입을 보더니 꼬리를 말고 몸을 움츠렸다.

강아지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똥까지 지렸다.

그 때였다.

“두부야, 여기 있었네.”

한 사람이 다가와 두부라고 불린 강아지를 들어올렸다.

사람은 손잡이에 달린 줄에 강아지의 목걸이를 매고,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똥을 수거했다.

“여긴 뭐야? 신기하게 생긴 굴이 있네.”

사람은 짐승을 힐끗 보더니, 강아지를 데리고 가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짐승을 돌아보며 낑낑 거리면서도, 목줄을 따라 점점 멀어져갔다.

짐승은 그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흰 털을 뭉쳐 엉덩이를 강아지 모양으로 만들었다.

조금 뒤, 한 사람이 짐승의 앞을 지나갔다.

“어, 여기 귀여운 강아지가 떨고 있네.

강아지야, 혹시 버려진거니?”

사람이 귀에서 노래가 나오는 마개를 빼내고, 풀숲으로 다가왔다.

강아지는 낑낑 거리는 소리를 내며 깊숙히 들어갔다.

“괜찮아, 내가 구해줄게.”

사람은 풀숲을 헤치고 강아지를 따라 깊은 수풀로 들어왔다.

그 때 짐승은 고개를 돌렸다.

사람은 그제서야 흰 털로 뒤덮이고 진흥색 피부에 짐승의 벌리고 있는 큰 입을 목격했다.

“끼이익, 끼이익”

짐승은 웃으며 사람을 한 입에 먹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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