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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잃어버렸던 것들의 나라

미히스토리

by 미히

삼촌은 얼리어답터였다.

그는 멀리 미국에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했는데,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나에게 신기한 제품을 선물했다.

이번에 돌아온 그가 나에게 내민 것은 신기하게 생긴 껌 한 통이었다.

“애한테 이상한거 먹이지 마라.”

엄마가 말했다.

“누나, 이상한거 아니야, 이거 곧 의약국 승인받는 거야.”

삼촌은 나에게 눈을 찡긋해보였다.

“지우야, 이건 말이지, 새로 개발 중인 감정의 맛 시리즈야.

우리의 감정을 맛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줘.”

나는 삼촌을 따라 껌을 꺼내 씹었다.

즉시, 새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음, 새콤해요.”

“그건 궁금증의 맛이란다. 어디 보자, 나는 좀 짠 맛이 나는구나.”

“짠 맛은 어떤 맛인데요?”

“기대가 될 때 나는 맛이지. 아무래도 내가 지금 좀 긴장을 하고 있나 보구나.

저번에 가져다준 기억의 헬맷 있지?”

나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헬맷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삼촌은 헬맷 옆에 USB 장치를 꼽았다.

“새로 나온 게임인데, 한 번 해보자꾸나.”

삼촌과 나는 헬맷을 썼다.

그 즉시 우리는 머나먼 곳에 있는 한 들판으로 이동했다.

“여기가 어디에요, 삼촌?”

삼촌은 벌써 들판 중간에 놓인 무빙워크에 올라타고 있었다.

“잃어버렸던 것들의 나라란다.

우리의 뇌에는 블랙홀과 같은 빈 구멍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가리키는 장소지.

너무 많은 잃어버린 것들은 문제가 되지만,

적당히 있는 것들은 우리의 의욕이나 원동력에 도움이 된단다.”

나도 삼촌을 따라 무빙워크에 올라탔다.

무빙워크는 부드럽고 조용히 앞으로 전진했다.

“이제 기술은 우리의 뇌에서 더 깊숙한 곳까지 접근할 수 있게 됐고,

블랙홀과 같은 것들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재현해내는데 성공했단다.

저기 보렴, 저건 뭐지?”

삼촌이 무빙워크 왼편, 들판에 놓인 딱지를 가리켰다.

“저건 딱지에요, 올해 봄에 샀던 거죠.”

내가 손으로 딱지를 집어 올리며 말했다.

“아빠와 딱지를 사러 문방구에 갔어요,

여기는 신도시라 동네에 하나 있던 문방구는 멀리 있잖아요.

딱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조금씩 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산 것 중에 하나를 열어보니 왕중왕 딱지 교환권이 들어있었죠.

그래서 아빠를 돌아보면서 말했어요.

‘왕중왕 딱지 교환권이에요, 문방구에 가면 대왕 딱지로 바꿔줘요.’ 라고요.

하지만 비가 곧있으면 더 많이 내릴 것 같아서, 문방구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죠.

교환권만 있으면 언제든 문방구에 가서 대왕 딱지로 바꿀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기분은 지금 당장 그 곳으로 돌아가 대왕 딱지를 내 손에 잡고 싶었죠.

하지만 아빠는 흔쾌히 문방구에 다녀오자고 이야기했어요.

저는 신이 나서, 가던 길을 돌아서 문방구로 갔지요.

문방구에서 왕중왕 딱지 교환권을 내미니, 대왕 딱지로 바꿔주었어요.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아빠와 뛰어서 집에 왔지요.

비가 많이 내렸지만, 참 즐거웠어요.”

어느새 입가에는 촉촉하고 향기로운 맛이 퍼지기 시작했다.

“추억이란 참 달달하네요.”

나는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했다.

“그런데 그걸 잃어버렸다는 거지?”

삼촌이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저는 그 딱지를 태권도장에 가서 자랑을 했지요.

요즘은 딱지 치기가 유행인데요,

순식간에 내 딱지를 관장이 따 버렸어요.

룰은 룰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죠.”

이제 입 안의 껌은 씁쓸한 맛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

삼촌이 물었다.

“딱지를 다시 되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 딱지를 다시 딸 수는 없었어요.

저는 그 사람 손에 있는 대왕 딱지를 바라보아야만 했죠.

별 수 있나요, 근데 태권도장은 그만 뒀어요.

관장은 그것말고도 문제가 많았거든요.”

삼촌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잃어버린 것이라도 그대로의 의미가 있어.”

나는 무빙워크의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한 예쁜 소녀가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도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삼촌도 나를 따라 그녀를 바라보더니, 모자를 벗어 흔들었다.

“참 달콤한 맛이구나.”

삼촌이 말했다.

“외숙모한테는 비밀로 해드릴게요.”

내가 말했다.

소녀가 스쳐지나갔고,

무빙워크의 오른편에는 게임 잡지, 영화 CD, 외장하드, 쌓여있는 소설 책들, 빨간색으로 올라가는 그래프 등이 보였다.

“삼촌은 나보다 잃어버린 게 많은가보군요.”

나는 삼촌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삼촌은 쓴웃음을 지었다.

“꼬맹아, 내가 너보다 몇 배는 더 살았잖니.”

삼촌을 헬맷을 벗었다.

그는 나의 헬맷도 벗겨주었다.

“벌써요? 재미있었는데,”

입 안에서는 감칠맛이 느껴졌다.

“잃어버렸던 것들만 보는건 의미가 없어.

우리가 그것들과 바꾼 지금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

삼촌은 그렇게 말하고는 엄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누나, 오늘은 나가서 점심 먹을까?”

나는 방 한켠의 카스테라 통에 놓인 트레이딩 카드 덱을 쳐다보았다.

그 위에는 가장 귀중한 ‘오색 안개 속의 청룡’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카드 덱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지우야,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말했다.

“네, 엄마”

나는 맛있는 밥을 먹으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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