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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국 준비(식품 쇼핑)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by 니나

현재 우리 집은 혼돈 그 자체다. 현관에는 택배 박스가 3개 쌓여 있다. 이제 뜯는 것도 힘들어 아직 뜯지 않고 그냥 뒀다. 거실에는 6호 단프라 박스 3개와 이민 가방 2개가 줄지어 있다. 위탁 수화물로 23킬로씩 5개의 큰 짐을 보내고 기내용 캐리어 2개와 각자 배낭을 메고 비행기를 타는 것이 목표다.




한 달 전부터 가지고 갈 것을 차근차근 사 모으고 있다.

누군가 만들어 둔 출국준비물 엑셀 파일을 출력해서 하나씩 지우면서 말이다.

그중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식품이다.

미국에 가서 사야지 생각했던 물건도 환율이 급등하는 바람에 다 이고 지고 갈 작정이다.

어제는 노란띠가 그려진 샘표 국간장도 2병 샀다. 이건 원래 미국에서 사려고 했던 건데…

친한 동네 언니의 친정엄마가 기가 막힌 양념장을 만드는데 레시피를 물어보면서 어떤 간장으로 만드는 거냐고 했더니 샘표 국간장을 꼭 써야 한단다.

하필 내가 산 간장은 하필 850ml다.

오늘 찾아보니 위탁 수화물은 500ml 이내 액체 1인당 2L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위탁 수화물은 액체류 제한이 없다고 하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내일쯤 500ml로 두 병 사야겠다.


이제 만날 사람들도 다 만났고, 오늘은 네이버 멤버십을 해지했다.

다음 주에는 인터넷도 끊고 핸드폰 요금제도 한국에서 문자만 받을 수 있는 알뜰 요금제로 바꿔야 한다.

이렇게 정리하는 느낌으로 한 달을 보내고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나서 미용실 아래층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

미국에 가져갈 먹거리를 또 샀다.

식혜 티백과 청태김, 홈런볼.

지난주에 엿기름을 사서 식혜를 두 번 만들어봤는데 처음은 성공 두 번째는 실패했다.

미국에서 아이들이 식혜를 찾을 것 같아 식혜 티백도 몇 개 박스에 넣었다.

이것저것 넣다 보니 먹거리만 단프라 박스로 한 박스를 꽉 채우고 반 박스를 더 채우고 있다.


미국에도 미역이나 다시마, 고춧가루는 있지만 물을 건너와서 그런지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비싸다고.

그래서 미역과 다시마, 멸치는 한 달 전에 사뒀다.

고춧가루는 엄마한테 받았다.

김치는 가져갈 엄두가 안 나서 엄마가 김장할 때 만들어 냉동실에 둔 김치 양념을 아이스박스에 넣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건고사리와 건토란대도 샀다.

아이들이 육개장을 좋아하니 미국에서도 먹어야지! (사실 내가 한식이 아니면 잘 못 먹어서일지도)


마치 겨울 전에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2년 동안 네 가족이 먹을,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식재료를 사서 쟁여두고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한국에서의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새롭게 지낼 나라에서 최대한 불편함 없이 살 준비를 해야 하니, 지금은 설레고 즐겁다기보다는 귀찮기만 하다.


그렇다. 지금 우리 가족은 2년의 미국살이를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 중국에서 2년 살았는데,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2년 살게 됐다.

내 인생 시간표는 20년에 한 번 꼴로 외국에서 2년씩 살게 세팅이 된 건 아닐까?

‘20년 후에 어딘가에 살게 된다면 그건 어디가 될까?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밟아 봤으니 아프리카?’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한다.


혼자 중국에 가게 되었을 때의 준비는 일도 아니었다.

내가 음식을 해 먹는 것도 아니었고, 그때는 중국 물가와 환율도 싸서 한 학기에 400만 원도 들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지금은 4인 가족이 먹을 양념들 외에도 집을 구하기 전까지 호텔에서 간단히 먹을 반찬거리를 만들 준비, 건조국 마련하기 등 끼니만으로도 고려하고 계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대체로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이렇게 머리도 복잡하고 몸도 고단하게 됐다. 이런 날에는 역시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가 딱이다.

기세 좋게 산더미 같은 빨래를 "나한테 맡겨!"하고 팔뚝을 걷어붙이는 엄마를 보면 나까지 기운이 불쑥 솟는다.

그림책 속 엄마는 얼마나 빨래를 많이 했는지 마당도 모자라 숲까지 빨랫줄을 매어뒀다.

그 빨랫줄에 천둥번개 도깨비까지 걸리자 엄마는 도깨비까지 깨끗이 빨아버린다.

어찌나 깨끗이 빨았던지 눈코 입도 지워질 정도로.


"나한테 맡겨!" 그림책 속 엄마처럼 팔뚝을 걷어붙이고 다시 짐을 정리한다.

덜렁이인 내가 마지막 꼼꼼함까지 다 쓰는 듯하다.


KakaoTalk_20220831_152544292.jpg 먹거리로 계속 채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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