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를 읽고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근황을 나눴다.
“저는 아주 사소하고 쓸모없는 것만 하고 있어요. 일기 쓰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림책 에세이 쓰고. 뭐, 그렇게 지내요.”
어떤 모임에서 근황을 소개할 때 꼭 ‘사소한’일을 하고 있다고 보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중요한 일은 ‘출근’ 같은 일이다. 그래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의 시간은 존중된다. 하지만 내가 집에서 일기 쓰고 에세이를 쓰는 시간은 언제든 빌려 쓸 수 있는 시간으로 간주된다. 심지어는 나조차 ‘내가 왜 이런 일로 말도 안 되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지?’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고료도 주지 않는 일에. 그럴 때면 더더욱 내가 쓰는 글이 나에게만 쓸모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를 무한히 낮추게 된다. ‘사소한’ 혹은 ‘쓸모없는’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어쨌든 그런 쓸모없고 사소한 일을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오늘도 아침부터 일어나 일기를 펼쳤고. 30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쓰다가 매일 똑같은 것을 쓰는 것 같아 일기를 덮었다. 아이들을 챙기고 장소를 옮겨 다시 일기를 잡고 다른 주제를 만들어 30분을 더 썼다. 일기장 한 장을 채우고 나서야 노트북을 켰다. 스스로에게 숙제를 준 에세이 마감이 수요일 오전까지기 때문이다. 누가 청탁한 것도 아닌 순전히 개인적인 에세이다. 작년부터 나는 이렇게 사소한 글쓰기로 시간을 보내는데, 그런다고 내가 헤밍웨이나 하루키 같은 문장력이 생기리라는 기대는 눈곱만큼도 없다. 심지어 작은 출판사에 글을 출판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두 달 전에는 ‘이제 당분간 그림책 근처에 절대 안 갈 거야. 중요한 일, 그러니까 돈을 벌 거야! 그다음에 그림책 읽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9월부터 미국으로 2년간 살게 됐는데 환율이 말도 안 되게 올랐고 미국 물가도 올라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바이올린 레슨은 절대 그만둘 수 없단다. ‘그래! 내가 우리 집의 희망이다! 이젠 사소하고 쓸데없는 일은 그만하고 돈을 벌자! 돈을 벌어!’ 하고 생각하고 스마트 스토어 창업하는 사이트에 들락거렸다. 미국에서 구매대행 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봤다. 그런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다. 내가 받는 J2 비자는 미국 연구 비자로 가는 사람의 가족이 받는 비자다. 연구 비자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돈을 벌려면 워킹퍼밋를 받아야한다. 비용은 400달라. ‘아,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그래서 그냥 다시 평소처럼 일기를 펼쳤다.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는 전금자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표지에는 두꺼비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어떤 소원도 들어줄 것처럼.
보답으로 사소한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줄게.
꼭 사소한 것 이여야 해.
나는 두꺼비라 중요한 소원을 들어줄 만한 힘이 없거든.
소원을 들어주는 재주가 있는 건지 약 올리는 재주가 있는 건지 두꺼비는 매번 “그건 사소한 소원이 아니야.” 한다. ‘도대체 두꺼비에게 사소한 소원은 뭐지?’ 생각이 들 때 드디어 훈이의 소원이 이뤄지는데… 짠! 두꺼비가 훈이가 부탁한 지우개를 만들어줬다. 으흠, 작고 사소한 것은 지우개 같은 거구나~ 훈이가 짝에게 지우개를 빌려주며 둘은 서로 “미안해.” 하고 화해했고 짝과 다시 친해지고 싶다는 훈이의 진짜 소원도 이뤄진다.
두꺼비가 나에게 사소한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나는 어떤 소원을 말할까? 지우개처럼 아주 작고 보잘것없어야 하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후 스마트 스토어를 성공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까? 헤밍웨이나 하루키 같은 대문호가 되게 해 달라고 막 우겨볼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소한 일이 아니긴 하다. 그냥 일기 쓰다가 지워야 할 일이 있을 때 깔끔하게 잘 지워지는 지우개 하나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건 들어 주려나? 사소한 일기를 오늘도 열심히 쓰며 헤밍웨이는 아니지만 나는 오늘의 지우개 똥을 만들고 있다. 사실 남들에게는 사소하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중요한 일 목록’에 들어있는 매일의 일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