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국사탑의 길고 긴 여행>을 읽고
만약에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는 곳으로 떠났다면?
그 여행이 내 선택이 아니라면 어떨까?
심지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면 어떨까?
나는 대체로 느슨한 여행을 하는 편이지만 그런 여행 많이 부담스럽다.
나는 여행할 때 돌아올 날과 숙박은 예약하지만 가게 될 곳에서 무엇을 할지는 최대한 열어두는 편이다.
20대에는 숙박을 예약하지 않아 낭패를 본 여행도 있었지만, 그때도 돌아올 계획은 있었다.
대학생 때 같은 동아리에 러시아어과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사학으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 계신 부모님 영향인지 언니는 고려인 연구를 했다.
옆에서 고려인 연구를 하는 언니를 지켜봐서일까.
나는 돌아올 기약도 없는 여행을 생각하면 고려인과 일본에 있는 한인들이 떠오른다.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다.
오늘의 책 <지광국사탑의 길고 긴 여행>의 주인공 지광국사탑도 길고 긴 110년의 여행길에 있다.
아직 원주 부론 법천사지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했으니 말이다.
국보 제101호 지광국사탑의 고향은 원주 부론이다.
작년 법천사지에서 지광국사탑이 돌아오길 기원하는 연날리기 행사가 있었다. 역사를 전공하는 지인이 알려준 행사였다.
사실 그때까지는 지광국사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설령 들었다 하더라도 금방 잊었겠지만.
늦여름, 부론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어른 셋은 손을 맞잡아야 할 만큼 큰 아름드리나무가 찻길 옆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나무를 보니 ‘역사가 오랜 마을이구나.’ 싶어 부론이 어떤 곳인지 검색해봤다.
부론은 ‘말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말들이 많이 오갈 만큼 번성했던 마을임을 증명하듯 마을 옆으로 배도 오갈 수 있을 만큼 큰 섬강이 흐른다. 우리 가족은 법천사지 주차장에 주차하고 행사장으로 갔다.
나무로 만든 우리나라 절과 궁이 전쟁 때마다 전소되었듯이 법천사도 그 운명을 피해 가지 못했다.
사찰은 모두 사라지고 덩그러니 절터만 남아있는 모래밭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로 만든 지광국사탑비만 멀찍이 보였다.
우리는 덩그러니 큰 터에서 연을 만들어 날렸다.
바람도 불지 않는 여름날이라 땀을 뻘뻘 흘리며 이쪽에서 저쪽까지 뛰어다니면서 말이다.
지광국사탑은 1911년 일본 골동품상에 의해 명동으로 갔다.
명동에서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23년 경복궁 임시보관소로 다시 이전됐다.
한국전쟁 때는 폭격을 받고 만여 개로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시멘트와 철골로 복원을 했다. 제대로 된 수술이 아니라 손상을 부추기기만 한 수술이었다.
결국 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시멘트와 철골을 벗겨내고 원주에서 같은 석재를 찾아 다시 5년간의 복원을 마쳤다.
‘원래 자리에 두면 비바람에 손상이 되니 실내로 옮겨야 한다. 손상이 되더라도 제자리, 지광국사탑비 맞은편에 두어야 한다.’
갑을논박하느라 복원을 마치고도 원주 부론에 이전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법천사지를 다녀와 지광국사탑 이야기를 검색해보며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일었다.
하지만 그마저 잊힐 때쯤, 그림책 도시에서 <지광국사탑의 길고 긴 여행>이 출간됐다.
임정진 글, 장선환 그림이다.
편하게 책을 집어 들었다가 바로 정자세로 앉았다.
‘가릉빈가’ 처음부터 모르는 말이다.
탑비를 용이 껴안고 있다? 는 탑비에 용이 새겨져 있는 걸까?
가릉빈가는 왜 하루에 여섯 번씩 노래할까?
현해탄은 어디지?
모르는 것이 많아 검색을 하며 읽었다.
가릉빈가는 머리와 팔은 사람이고 새의 몸에 용 꼬리를 한 극락조이고 현악기를 연주한다고 한다.
얼마 전 신화를 공부하며 듣은 바로는 노래하는 것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고 언어를 쓴다는 것은 질서와 문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리고 질서와 문화는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니 그래서 가릉빈가는 책에서처럼 평화를 노래하는가 보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지광국사탑 맞은편 지광국사탑비 아래 용머리를 한 거북이 놓여 있다.
마치 지광국사탑을 영원히 지킬 듯이 듬직한 자세다.
현해탄은 우리나라와 일본 규슈를 잇는 바닷길이라고 한다.
불교신자가 아니라 여섯 번 노래하는 것은 어디를 찾아도 없으니 누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는 백여 년의 고려부터 현재까지 긴 이야기를 16장면 그림책에 요령 있게 넣었다.
논픽션 그림책, 그것도 역사 그림책이 너무 숙연해지거나 무겁지 않게 그림 작가는 수채와 색연필 콜라주로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도와줬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지광국사탑과 지광국사탑비가 마주 보는 장면이다.
지광국사탑이 드디어 길고 긴 여행을 끝내고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간 장면.
가릉빈가는 제 자리에서 마음껏 평화의 노래를 부르다.
아직 원주로 돌아오지 못한 지광국사탑이 여행을 끝내는 그때가 정말 오면 이제 절터에서 어떤 소원을 빌며 연을 날릴까?
그때는 돌아와 달라는 소원이 아닌 기쁨의 노래를 부르겠지.
기쁨의 노래와 함께 모두 평화롭길, 아직도 힘든 역사의 한 장면을 쓰고 있는 나라들이 전쟁을 끝내길, 마음 아픈 분단이 끝나길 함께 기원하는 소원을 빌어야겠다.
<지광국사탑의 길고 긴 여행> 임정진 글, 장선환 그림 / 그림책도시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