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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옥 안아줄 거야!

Hug machine을 읽고

by 니나

얼마 전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 온 지 2주 정도 지나고 어느 정도 짐도 제자리를 찾고 새로 들인 물건들도 제자리를 잡을 즈음 벨이 울렸습니다.

주문한 택배도 없는데 하고 나가보니 옆집 아주머니가 찹쌀파이를 예쁜 상자에 담아 옆집이니 잘 지내보자며 오셨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방문이라 몰골이 처참했지만 들어오라고 청하고 차를 대접했습니다.

원주에 이사 온 지 만 7년, 결혼한 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옆집 사람과 인사하고 환대받는 것은 처음이었고, 나 역시 괜한 오지랖일까 싶어 윗집이나 아랫집 심지어 옆집이 이사를 해도 무관심한 듯 지내왔습니다. 그러니 정말 뜻밖일 수밖에요.

옆집은 아파트 입주 때부터 살아서 옆집 윗집 아랫집 모르는 집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런 동네인가? 아니면 함께 입주한 사람들은 서로 잘 지내는 건가? 그래도 참 좋다.’ 생각했습니다.



어릴 적 저는 상가가 즐비했던 동네에 살았습니다.

새로 가게를 열거나 이사 오면 으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시루떡을 겹겹이 담아 들고 이사 왔다고 찾아왔지요.

저와 동생은 먹기 바빴고, 엄마는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잘 씻은 접시에 빵이나 과일을 담아 돌려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뭘 이런 걸 다~ 그냥 빈 접시로 주시죠.’ 하는 단골 멘트도 함께 오고 갔지요.

언제부터 우리는 이사를 가도, 이사 와도 궁금해하지 않게 된 걸까요? 궁금하지만 모두 초연하게 지내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얼마 전 친구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평생 속내는 잘 말하지 않는 친구라 솔직히 놀랐습니다.

상담사로 일하는 친구는 예전에 모래로 어떤 공간을 만들어 피규어와 모형으로 꾸미는 놀이치료를 받았을 때일을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냇물도 흐르고 나무도 있는 멋진 공간을 만들었다고요.

그런데 그곳으로 나가고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상담사가 말해줘서 처음 인지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야 그 친구가 문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냥 그 말을 나에게 한 그날부터 잠을 푹 잤다고 했습니다.



타인을 향해 문을 여는 것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 귀찮아질 때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싶습니다.

어릴 적 친구를 만났는데 생각이 너무 달라져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데 혼자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혼자가 편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함께 있어 외로운 것보다 혼자인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하지만 혼자 있는 게 편해서 누군가 만나고 싶지 않아 하다가도 남편이 아닌 멀리 사는 친한 친구가 아닌 가까이 있는 실체가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꼬옥 대장에게 배울 때입니다.


꼬옥 대장은 꼬옥 안는걸 제일 잘하고 언제든 기다리는 친구들을 꼬옥 안아줍니다.

동네의 사람들을 꼬옥 안아주는 건 물론이고 나무도 우체통도 딱딱한 것도 부드러운 것도 만나는 모든 것을 꼬옥 안아주지요.

이정도면 저도 자신이 있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반기는 것까지는요.

그런데!

나에게 가시를 세우는 사람에게는요?

꼬옥 대장은 고슴도치에게 오븐 장갑을 끼고 헬멧을 쓰고, 배에 쿠션을 두르고 꼬옥 안아줍니다.

나보다 거대한 누군가는요? 다가가기 힘들고 거대한 누군가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꼬옥 대장도 고래를 보고 놀라기는 합니다.

조금 당황은 했지만 꼬옥 대장은 사다리를 세우고 고래 위로 올라가 미끄러지며 안아주지요.

꼬옥 대장에게 힘을 주는 음식은 피자입니다.

좋아하는 피자를 먹고 힘을 내어 다시 안아주지요.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잊지 않고 안아주지요. 더 이상 안아주기 힘들 만큼 지쳤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꼬옥 대장도 누군가에게 안겨야 힘이 나지요.



누군가를 만나 마음이 다친다고 해도,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 해도, 코로나라 안 만나는 것이 당연해라는 생각이 들어도, 우리는 꼬옥 대장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만 있으면 나의 좁은 시야와 생각이 더 좁은 틀에 가둬지는 것 같습니다.

고인물이 흐르면 다시 맑아지듯 우리의 마음도 부딪치고 흐르고 깨져야 맑아지는 걸까요?

조금은 떨리고, 오지랖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도 오늘은 꼬옥 대장이 되고 싶습니다.

꼬옥 대장처럼 나도 좋아하는 피자를 먹고 힘을 내어, 이웃을 찾아가 찹쌀파이를 건네는 꼬옥 대장이 되어야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더 꼬옥 안아주어야겠습니다.

퇴근하는 남편을 꼬옥 안아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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