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날은 나나 아내나 뼛속까지 녹초가 될 정도로 지쳐있던 터라 도저히 음악을 듣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지쳐있었다.
자세한 것은 잊어버렸지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비싼 티켓이라 아까워서 우리는 무거운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해서 콘서트에 갔다.
마지막으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연주되었다. 첫머리에 호른의 잔잔한 인트로가 흐르고 나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연주를 듣고 있으려니 웬일인지 몸속의 피로가 쑥 빠져나가는 듯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포의 구석구석에 찌들어 있던 피폐함이 하나씩 씻겨지듯 사라져 갔다.
나는 거의 꿈꾸는 듯한 기분으로 음악을 들었다.
하루키 <비밀의 숲>
“조성진이 필라델피아 킴멜 센터에 온대.”
필라델피아 교민들 사이에는 10월부터 조성진이 온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1월 19일 목요일부터 시작해 21일 토요일까지, 총 3일간의 연주회였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고 했다.
1월 중순 콘서트인데 사람들은 10월 중순부터 티켓을 예매했다.
하긴, 한국이었으면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1분 안에 매진됐겠지만.
우리는 연주회 이틀 전 1월 19일에 21일 토요일 저녁 8시 티켓을 샀다.
조성진 연주회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연말에 2주간 미국 서부여행을 한 데다가 4월 부활절 연휴에는 올랜도 여행을, 8월에는 옐로스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터라 예산이 빠듯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조성진은 연예인 같은 존재다.
둘째 같은 반 한국인 친구가 조성진 콘서트에 간다고 했나 보다.
12월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는
“친구 A는 조성진 콘서트 간다는데.” 슬쩍 말했다.
‘가고 싶은가 보구나.’ 생각했지만
“그래?” 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그러다가 조성진이 콘서트를 시작한 첫날 마음을 바꿨다.
계기는 큰 아이 학교 연주회다.
조성진 콘서트 첫날인 19일 목요일은 큰 아이 학교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있는 날이었다.
아이는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공연은 8시부터 시작이지만 아이들은 7시 반까지 도착해서 준비해야 했다.
흰 남방과 검정 정장 바지, 검정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10월 말에는 현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만 야외 운동장에서 연주회를 했었다. 이번에는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관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 밴드, 그리고 합창단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물론 겨울이고 비도 와서 야외가 아닌 실내 강당에서.
아이 말로는 오케스트라와 밴드 합창단을 합치면 6학년 절반이 무대에 서는 거라고 한다.
큰 강당에는 아이들의 연주를 들으러 온 가족들로 가득했다.
공연은 합창단이 미국 국가를 부르며 시작했다.
6학년 남자아이들은 아직 변경기가 오지 않았나 보다. 아름다운 미성이었다.
거친 선이 아니라 부드러운 선으로 채워진 스케치 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현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는 정말 부족한 연주였다.
개인의 실력 차가 너무 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한 곡 한 곡을 진지하게 연주했다.
모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에 나도 손바닥에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아이들의 공연을 보다가 마음 깊이 있던 생각 ‘조성진 공연에 가고 싶다’를 인정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 조성진 공연 갈까?”
문제는 ‘조성진 콘서트에 간다, 가지 않는다’를 고민하느라 그동안 브람스는 뒷전이었던 거다.
그리고 콘서트에 신고 갈 구두도 없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신발은 신고 왔던 운동화에다가 패딩 부츠 하나뿐이었다.
두 가지 숙제가 생겼다.
이틀 동안 브람스 듣기, 구두 사기.
이제 브람스를 귀에 발라야 했다. 브람스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해야 했다.
금요일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너희도 조성진 연주 듣고 싶다고 했으니, 브람스에 대해 오늘 저녁까지 공부하고 엄마한테 알려줘.”
그날부터 연주회 직전까지 우리는 브람스 교향곡 2번을 배경음악처럼 틀어뒀다.
폴리니 연주도, 짐머만의 연주도, 유자왕과 조성진의 연주도 모두 찾아서 들었다.
나는 짐머만의 이성적인 연주가 좋았다. 아이들은 조성진 연주가 좋다고 했다.
남편은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고.
내가 클래식을 원래 좋아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몇 가지 좋은 기억들은 떠오른다.
초등학생 때,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가 테이프를 넣을 수 있는 카세트를 사 오셨다.
그때는 카세트를 사면 클래식 테이프를 하나 주곤 했다.
그 때는 1990년대 초반이었고, 아직 워크맨은 나오기 전이었다.
내가 살던 부산 변두리 동네에는 집에 카세트를 가지고 있는 집도 별로 없었다.
아빠가 카세트에 테이프를 넣고 세모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웅장한 관악기와 현악기 소리, 힘이 넘치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관악기와 현악기, 피아노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나는 단번에 그 곡에 매료됐다.
그 당시 나는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나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공유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1층 방 앞에 딸린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부엌 위 다락방에서 몰래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다.
그 음악을 들을 때면 나는 다락방이 아닌 다른 세상에 있었다.
다른 세상 속에서 나는 설원을 끝도 없이 달리는 기차를 타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그때는 그 곡이 무슨 곡인지 몰랐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그 곡이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학생 때는 아랫동네에 레코드 가게가 생겼다.
내가 서태지 음반을 예약하고 사느라 가끔 가던 레코드 가게였다.
버스를 타려면 그 레코드 가게를 지나야 했다.
레코드 가게에서는 늘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느 날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다.
더 듣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이었다.
어느 날인가에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모차르트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조수미의 목소리로 들었다.
나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 정교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다.
가끔 차이콥스키나 베토벤이 흘러나오면 나는 그때로 돌아간다.
내 클래식 선생님은 아이들이다.
큰 아이는 6년, 둘째 아이는 4 동안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큰 아이는 낯선 곳을 싫어했다.
어쩔 수 없이 피아노를 사서 집에서 레슨을 받았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는 동안 거실에 있으면 선생님이 레슨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부분은 이렇게 쳐야지,” 하고 선생님이 연주하는 소리.
“손가락에 좀 더 힘을 주고.” 하고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는 소리.
“포르테는 몸까지 써야 해.” 피아노는 손가락만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알게 됐다.
아이들은 다음 레슨 때까지 같은 곡을 한참을 연주했다.
아마 아이들은 한 곡을 어느 정도 치기까지 오백 번은 넘게 쳤을 거다.
그러다 보면 나도 그 곡이 익숙해졌다.
처음 들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5번도 계속 듣다 보니 좋아졌다.
아이들과 나는 짐머만, 폴리니, 호로비츠처럼 대단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도 찾아 듣곤 했다.
나는 클래식을 그렇게 레슨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배웠다.
그래서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슈베르트까지는 익숙했다.
아이들이 아직 연주해 본 적 없는 브람스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틀 동안 브람스를 듣는다고 해도 나는 그 곡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21일 토요일은 꽤나 바쁜 날이었다.
오전에는 아이들 학교에서 ESL을 듣는 학생들과 가족을 위한 행사가 있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9시에 시작하는 행사에 갔다. 오후에는 콘서트에 신고 갈 구두를 사러 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녹초가 됐다.
나는 하루키가 말한 대로 브람스의 연주를 듣고 나면 이 피곤함이 ‘치유’ 될지 궁금했다.
우리 가족은 이른 저녁을 먹고 깨끗이 이를 닦고 제일 좋은 옷을 입었다.
나는 오후에 산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킴멜 센터의 버라이즌홀에 가 예약한 자리에 앉았다.
너무 늦게 예약한 터라 가장 싼 3층 좌석만 남아있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는 오케스트라 왼쪽 날개는 잘 보였지만 오른쪽 날개의 절반은 보이지 않았다.
지휘자와 조성진이 함께 입장했다.
우레 같은 박수.
호른이 곡을 시작했다.
숨을 죽였다.
3악장에서 첼로 솔로가 연주될 때 나는 하루키의 말처럼 내 몸의 무언가가 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첼로 소리를 타고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그 바람에 내 찌꺼기를 모두 실어 보냈다.
이어지는 4악장에서 나는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를 여행했다.
곡이 끝나고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오길 정말 잘했다.” 아이들이 말했다.
“응, 정말.” 나도 말했다.
우리 집 배경 음악은 당분간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