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여행 - 필라델피아 일상
우리 가족이 라스베가스로 출발하는 날은 12월 22일,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였다.
아침 6시 반, 휴대폰 알람 소리에 일어나 창 밖을 봤다.
캄캄해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동지여서 아침이지만 캄캄했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일기 예보를 보니 필라델피아는 비가 온 후 영하 15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기다리던 서부로 출발하는 날이라 큰 아이는 들떴나 보다.
아이는 아침잠이 많아 밍기적거리며 최후의 일분까지 자곤 한다.
하지만 그날은 “일어나, 6시 45분이야.” 깨우자마자 “와, 내일부터 14일간 학교 안 간다!” 하며 벌떡 일어났다.
큰 아이가 스쿨버스를 타는 아침 일곱 시 십 분에도 거리는 여전히 어둑했다.
아침 등교할 때마다 춥고 어둡다고 툴툴거리던 큰 아이는 그렇게 바라던 남서부 국립공원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콧노래를 부르며 “엄마, 갔다 올게.” 인사를 하고선 초록색과 회색 줄무늬 이글스 모자를 눌러쓰고서 집을 나섰다.
둘째도 곧 일어나 학교에 가고 집에는 남편과 나 둘만 남았다.
그날 오전에는 9월부터 3달 동안 진행 중인 운전면허증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지연되고 있는지 킹 오브 프러시아에 있는 펜닷(PennDOT;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운전면허를 관장하는 도로교통공사 같은 곳)에 가기로 했다.
그 사이에 나는 펜닷에 3번이나 전화를 했다.
이제는 단축번호도 외울 수 있는 친숙한 펜닷.
전화 영어가 너무 힘들었던 나에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펜닷.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진척이 없는 펜닷.
여전히 면허증에 필요한 서류는 오지 않았다.
펜닷에 간 이후에는 가까운 코스트코에 가기로 했다.
여행에 다녀와서 집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으면 안 되니까.
물과 냉동식품, 그리고 여행 중에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좀 더 사기로 했다.
펜닷에서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하나씩 가지고 집에 왔다.
좋은 소식은 면허증에 필요한 서류를 집으로 발송했지만 분실됐다는 것.
그래서 지금 바로 임시면허증을 만들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임시면허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나쁜 소식을 전했다.
방금 유펜에서 전화가 왔는데 3달간 지급됐던 월급이 직원의 실수로 지급됐던 것이고 12월 30일까지 학교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할 수 있는 걸까?
여행을 가고 싶었던 마음까지 식어버리는 소식이었다.
한국에서 남편이 DS-2019 서류를 주고받을 때도 실수 연발이었다.
첫 번째 서류에는 동행 가족이 3명이라고 서류를 다 보냈는데도 0명이라고 적어서 도착했다.
심지어 미국 연구실 비서가 서류 봉투에 적은 남편 전화번호에서 한 자리를 빼먹어 서류가 인천공항에서 3주 묶여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미국 대사관 비자 인터뷰를 미루고 수정된 서류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수정된 서류에는 태어난 도시에 이메일 주소를 떡하니 적어뒀다.
다시 수정된 서류를 받느라 우리 가족은 비행기 티켓도 한 달 뒤로 미뤄야 했다.
결국 아이들은 8월 말 학기가 시작할 때 학교에 가지 못했고, 학기 중간인 9월 말부터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런데 월급을 실수로 지급했다니.
이런 실수를 하고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유지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1986년 챌린저호의 모든 부품을 미터로 계산해 제작하고선 이중 고무링을 실수로 인치로 계산해 폭발한 사고가 이런 실수들의 한 예일 거다.
이 나라는 실수한 담당자가 너무도 당당하다.
실수를 했건 말건 잘못된 거니 돌려 달란다.
돌려주지 않으면 법적인 문제가 생기니 우리는 돌려줘야 할 수밖에.
코스트코에 들렀을 때 나도 모르게 소심하게 장을 봤다.
늘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나서는 1.5달러짜리 핫도그도 먹었는데 그날은 핫도그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나는 배낭을 꾸렸다.
전자책이 담긴 태블릿 PC와 휴대폰 충전선, 여권과 운전면허도 확인했다.
몇 년 전 남편은 여권을 깜빡한 적이 있다.
미국으로 출장 가는데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을 때에야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여권을 가지고 갔다.
공항에 넉넉하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비행기를 놓쳤을 거다.
그 이후로 여권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여권과 카드, 휴대폰만 있으면 어떻게든 여행은 계속될 수 있다.
우리는 7시 1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고 4시 40분 우버를 예약했다.
아직도 잘못 지급된 월급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저녁 도시락을 만들었다.
냉동실에 있던 또띠아 안에 조금씩 남은 야채와 새우로 만든 볶음밥을 넣어 브리또를 만들었다.
우리가 예약한 아메리카 에어라인은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5시간의 비행 동안 끼니는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Happy new year.” 우버로 부른 차에서 덩치 큰 흑인 아저씨가 내리며 말했다.
아저씨라고 하기엔 40대 정도, 나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지만.
흑인 아저씨는 우리가 집에서 낑낑대며 끌고 내려온 기내 캐리어 2개, 수화물 캐리어 2개를 가볍게 들어 트렁크에 실었다.
연말이 되니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할 때는 모두 “Happy new year.”이다.
“혹시 한국인?”
“응, 우리 한국인이야.”
“그럼 어퍼더비에 있는 한인마트 가봤어?”
“아니, 아직 못 가봤어.”
“그래? 나는 거기 장 보러 자주 가. 가격도 싸고 괜찮더라. 어디로 여행 가는 거야?”
“서부로.”
“와, 멋진걸.”
비행기 출발은 30분 연기됐다.
우리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브리또를 먹었다.
비행기는 여행 가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5시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20년 전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궁화호를 타면 다섯 시간이 걸렸는데.
미국은 같은 나라를 비행기로 다섯 시간이라니.
한참 영화도 보고 꾸벅꾸벅 졸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수도 없이 시계를 봤다.
기장이 착륙을 알렸다.
“이제 곧 착륙합니다. 라스베가스는 저녁 10시, 날씨는 맑습니다.”
딸은 “라스베가스는 지금 10시야? 내 시계는 1신데. 시계 맞춰야지.” 하며 손목시계태엽을 감았다.
착륙하느라 고도를 낮춘 비행기 안에서 내려 보이는 라스베가스의 밤은 서울처럼 환했다.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만든 관광도시, 라스베가스. 그곳이 언제 사막이었냐는 듯 도시는 네온사인과 주황색 불빛으로 환했다. ‘필라델피아의 10시는 고요한데, 여기가 관광도시가 맞구나.’ 싶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라스베가스 공항으로 들어서자 카지노 기계가 보였다.
눈이 닿는 곳마다 환하게 불을 켜 둔 카지노 기계가 있었다.
전광판에는 라이브 쇼를 소개하는 광고가 돌아가고 있었다.
라스베가스라는 관광도시는 먹고 마시고 카지노를 하며 노는 곳인가 보다.
우리는 짐을 찾고 허츠 렌터카를 빌려 트럼프 호텔에 도착했다.
라스베가스는 이번 여행의 중요 기지다.
우리는 여행 첫날과 요세미티에서 그랜드 캐니언으로 이동하는 중간의 하루, 그리고 필라델피아로 떠나는 마지막 날. 이렇게 세 번 라스베가스를 거친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의 세계에서 날씨의 세계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