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부여행 -필라델피아 일상
“미국 가면 사막 횡단하자.”
미국 연수가 확정되자 틈만 나면 남편에게 말했다.
“거길 왜 가야 하는데?”
“한국에는 사막이 없잖아. 나무도 있고 계곡도 있지만 사막은 없잖아. 그리고 경비가 조금밖에 안 들 것 같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나는 지평선까지 끝도 없이 황톳빛 모래인 사막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밤이면 사막 한가운데에 누워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다시 보길 바랐다.
내가 처음 사막에 가 본 것은 이십 대 초였다.
나는 오랫동안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다.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것마다 반대하는 부모님, 내가 살던 19 만원 짜리 반지하 월세방, 수중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돈.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일은 사치였다.
그런 내가 처음 몽골 사막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교회 단기 선교 때문이었다.
대학생들의 재정은 교회가 후원해 줬다.
8월,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듯 선교여행을 따라갔다.
몽골에서는 수도인 울란바토르 근교에 있는 마을에서 주소가 적힌 문패를 달아주는 일을 했다.
수도 근교임에도 불구하고 몽골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 가옥인 게르에서 지냈다.
울란바토르 일부를 제외한 모든 길은 흙길이었다.
게르 옆에는 집에서 키우는 말이나 양들이 묶여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땡볕 아래에서 나는 못과 망치를 꺼내 문패를 달았다.
뜨거운 날씨였지만 건조해서 그늘로 들어가면 곧 땀이 식었다.
간간이 보이는 작은 구멍가게는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비록 살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러시아산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일주일 동안 나는 문패를 달고 그늘 아래에서 땀을 식히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가끔 친절한 몽골사람들은 우리가 일을 끝내면 집으로 불러 말술이나 양젖을 넣어 만든 마테차를 주기도 했다.
처음 맡아본 낯선 향에 먹기 쉽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함이 느껴져 늘 한 컵을 다 비웠다.
일주일이 지난 후 우리는 며칠 동안 여행을 했다.
어떤 산에도 가고 무슨 병원도 방문했지만 내가 계획했던 여행이 아니라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단 한 곳은 고비사막이다.
우리는 8시간을 넘게 달려 사막 한가운데 게르에 도착했다.
'저녁으로 제발 양고기만 먹지 않게 해 주세요.'
양고기는 2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은 향 때문에 먹기 힘들었다.
하지만 몽골의 모든 음식에는 양고기가 들어 있었다.
내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양고기가 들어간 만두와 볶음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게르에서 쉬고 있는데 현지 목사님이 우리를 게르 바깥으로 불러냈다.
“별 구경하러 나와.” 그러고는 하늘을 가리켰다.
숨이 멎는 듯했다. 쏟아질 것 같은 별.
그때 내 안의 뭔가가 갈라졌다.
저 넓은 우주에서 나에게만 아무런 기회가 없는 것 같고, 생존하기 급급한 상황, 생존하느라 놓치고 있는 것들.
내 욕심과 내가 이루고 싶은 모든 것들.
그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나 있는 나.
내 욕심과 분노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저 우주 아래 모든 존재가 먼지 같았다.
그때는 <아모스와 보리스>라는 그림책을 몰랐지만, 그때로부터 15년 후에 <아모스와 보리스>를 읽고 나는 윌리엄 스타이그가 나와 같은 것을 느꼈다고 확신했다.
그 그림책에 나오는 생쥐 아모스도 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고는 황홀해 데굴데굴 구르다 바다에 떨어진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나도 아모스처럼 데굴데굴 굴렀을 것이다.
그 후로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늘 그 하늘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사막에 가길 소망했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인 데다가 큰 아이가 원하는 요세미티와 그랜드 캐니언 여행이 주 목적지라 아쉽게도 사막은 당일치기로 타협했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데스밸리 국립공원이었다.
한반도 크기 1/3인 옐로스톤 국립공원보다 1.5배 넓은 곳.
미국에서 알래스카 국립공원을 제외하면 면적상으로는 가장 넓은 국립공원이다.
데스밸리.
죽음의 계곡이라니.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1849년은 서부 개척시대에 금을 캐서 큰돈을 벌고 싶었던 사람들은 사막으로 몰려들었다.
한여름에는 온도가 50까지 올라가고 물 한 방울 없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캤러 왔지만 실제로 금을 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시절 캘리포니아는 광부들보다는 그들을 상대로 음식을 팔고 숙소를 제공한 사람들에게 황금의 땅이었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리바이스 청바지도 그때 황금을 캐러 간 사람들에게 튼튼하고 해지지 않는 바지를 팔아 성장한 기업이다.
청바지를 팔아 황금 캔 것보다 더 한몫 단단히 챙긴 셈이다.
황금을 캐러 간 사람들은 왜 그만둘 수 없었을까?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황금을 캐 오겠노라고 호언장담하며 멀고 먼 서부까지 가서?
한 달, 두 달 황금을 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조금만 더 캐면 황금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도박 같다.
라스베가스에서 도박에 빠진 많은 사람들도 그런 헛된 희망으로 내적인 죽음의 계곡에 있지 않을까?
사막 한가운데 라스베가스를 만든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사막을 쓸모없는 땅이라고 한다.
사람도 살지 않고, 버려진 땅.
그런 땅이라 사막은 핵 실험장으로도 쓰였다.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서 북서쪽으로 105Km 떨어진 곳에 핵 실험장이 있었다.
1950년부터 ‘포괄핵실험금지조약’이 발표된 1992년까지 42년 동안 1,021회 핵실험이 진행되었다.
핵이 폭발할 때의 섬광은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호텔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핵실험을 하는 영상은 텔레비전을 통해 송출됐다.
동북쪽 메인에 사는 사람부터 따뜻한 플로리다까지 사람들은 티비만 켜면 편안한 거실 소파에 앉아 감자튀김을 먹으며 핵폭탄의 섬광이 번쩍 솟아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핵실험장 근처에는 폭발 장면을 보려는 관광상품까지 있었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인지만 사람들은 방사능의 위험을 몰랐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방사능 오염물질 때문에 동쪽에 위치한 유타주까지 암환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했고 기형아가 많이 태어났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는 핵 실험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니 모하비 사막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였다.
기아에서 만드는 차 이름 정도로만 알고 있던 곳을 이정표로 보다니.
고비사막에 누워 하늘을 보던 20대의 나는 모하비 사막을 밟고 있을 나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차창 밖으로 멀리 거친 황톳빛 산이 보였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스프링 마운틴이라고 했다.
산과 산 사이에는 큰 평지가 있는데 그 평지 한가운데로 도로가 나 있었다.
도로 옆 평지에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고 있는 것처럼 생긴 키 작은 조수아 나무와 선인장이 삐죽 자라고 있었다.
평지에는 철사로 울타리가 이어져 있었다.
“여기 사막 땅에도 다 주인이 있겠지?” 남편에게 물었다.
“주인 없는 땅이 어딨냐? 요즘 세상에.”
“이 땅은 사서 뭣하지?”
“나도 모르지.”
“우리도 살래?”
"......"
사막이라 그런지 아침 열 시인데도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해가 따가웠다.
“엄마 선글라스 좀 빌려줘.”
“엄마, 나 모자 빌려줘.”
선글라스와 모자를 뺏기고 앞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해를 손수건으로 가리느라 팔이 아팠다.
눈을 가리지 않으면 눈이 아팠다.
남편도 운전석 옆 유리로 들어오는 해가 뜨거운지 왼손으로 옷을 들어 해를 가리고 오른손으로는 핸들을 잡았다.
캘리포니아 주는 물가가 비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네바다에서 캘리포니아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마지막 큰 도시인 패럼프에 들러 주유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칼스 주니어의 버거.
오리지널 버거는 9달러.
생각보다 비쌌지만 야채가 아낌없이 들어가 있었고 크기도 컸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그리고 토마토와 양상추가 듬뿍 들은 버거를 먹으니 기운이 났다.
햄버거 가게 옆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우리는 다시 데스밸리로 향했다.
이제 캘리포니아로 들어섰다. 도로 옆으로 간간이 보이는 주유소에 적힌 기름 가격을 보니 정말 비쌌다.
1갤런당 5달러가 넘었다.
네바다 주에서는 3.7달러 정도면 주유할 수 있었는데.
미국 자동차 기름통은 한국 자동차 기름통보다 작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기름을 가득 채우면 서울과 부산을 오갈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가득 채워도 4시간 정도 운전하면 기름이 동난다.
그래서 조수석에 앉은 내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경유지에서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구글 지도로 찾는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데스밸리, 사막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