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부여행 - 필라델피아 일상
첫 행선지는 단테스 뷰였다.
'차들이 모두 주차장에 주차를 하네?'
궁금해서 우리도 주차를 하고 내려보니 국립공원 티켓을 사는 곳이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과 함께 여행하는 가족은 모든 국립공원 입장이 무료다.
하지만 4학년이 없어도 입장료가 비싼 것은 아니다.
80달러를 내면 1년 동안 모든 국립공원에 입장할 수 있다.
국립공원은 1인 1 입장권이 아니라 한가족 1 입장권이라, 저렴한 편이다.
우리는 4학년인 딸 덕분에 국립공원 무료 입장권을 받을 수 있었다.
매표소에서 프린트해 온 4학년용 쿠폰을 카드로 바꾸려고 했다.
사막 한가운데라 그런 걸까? 아니면 크리스마스 연휴라서?
매표소에는 직원 없이 기계만 덩그러니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프린트한 종이를 조수석 창문 앞에 놓고 다시 단테스 뷰를 향해 달렸다.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서 단테스 뷰 주차장에 들어서자 탁 트인 하늘이 보였다.
햇볕이 뜨거웠다.
나는 외투를 벗고 자외선 차단 크림을 덧발랐다.
'눈 부셔.'
긴소매 옷과 선글라스를 챙기라고 했던 조언들이 떠올랐다.
'겨울에도 이렇게 뜨겁고 눈부신데, 여름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단테스 뷰는 바로 아래에 펼쳐져 있는 북미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배드워터보디 1699m 높은 곳이다.
단테스 뷰와 맞은편에 보이는 산은 텔레스코프 뷰, 그리고 둘 사이에 있는 평평한 분지가 배드워터다.
데스밸리의 역대 최고 온도는 화씨 130도 (섭씨 54도), 그때를 제외하더라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곳이라 눈이 오지 않았을 텐데 땅이 군데군데 하얀 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
'설마 눈은 아니겠지? '
구글에 찾아보니 데스밸리에 눈이 왔다는 신문 기사가 있긴 했다.
Goldfield Daily Tribune지에 따르면 애리조나주 골드필드에 10센티미터, 라스베이거스에 25센티미터 정도.
부산인 고향인 나는 서울에서 살기 전까지 눈이라곤 몇 분 내리다 말았던 싸락눈이 전분데, 사막은 오죽할까.
그런데 심지어 저렇게 눈이 많이 내렸다니, 정말 신문에 날 만한 사건이긴 하다.
눈처럼 빛나는 흰 물체의 정체는 소금이었다.
서부 개척시대에 황금을 찾아 서부로 온 사람들이 황금이 아닌 소금을 보고는 화가 나서
"이런 나쁜 물 같으니! 배드 워터! 소금은 필요 없어. 황금이 필요하다고!"라고 해서 그곳의 이름이 배드워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곳이 항상 밸리였던 건 아니다.
데스밸리의 17억 년 에서 5억 년 전까지 12억 년 동안 데스밸리의 지질은 지금의 과학자들이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했다.
이곳은 5억 년 전에서 2억 5천만 년 전까지는 이곳이 따뜻하고 얕은 바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개와 암모나이트 화석이 흔히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그러다가 지표면이 융기하면서 바다는 서쪽으로 조금씩 밀려나갔다.
데스밸리는 지각을 연결하는 두 판과 가까이 있다고 한다.
한 판이 움직이면 다른 판도 영향을 받는다.
데스밸리는 아주 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던 거다.
중생대(2억 년 전부터 6천5백만 년 전까지) 내내 지각은 접히고, 휘고, 부서졌다.
중생대 때 지각이 이리저리 접히는 바람에 제3기 (6천5백만 년 전부터 2백만 년 전까지)에 지각은 단층이 움직이고 산이 생기면서 약해져 있었다.
그 결과 약해진 곳을 뚫고 화산이 분출했다.
화산 분출은 다른 화산에도 영향을 줘서 점차 화산활동이 퍼져나갔고 그 결과 재와 가루가 뒤덮였다.
이 붕산염 광물 퇴적암이 우리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붉은 퇴적물이다.
그러다가 3백만 년 전쯤 지각은 다시 서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판과 판은 서로 멀어졌고, 그 결과로 밸리가 생겼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단테스뷰에서 데스밸리를 볼 수 있게 됐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변화한 움직임을 나는 눈에 담고 있는 거였다.
우리는 단테스 뷰 전망대를 따라 걸었다. 전망대 끝 절벽까지 걸어도 20분 정도.
그 이상은 걸어갈 수 없다. 사방이 절벽이라서.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가 배드워터를 보고는 다시 차에 휙 올라타 다음 행선지로 가버린다.
나도 그런 여행객 중 하나였지만.
"엄마, 나 화장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먹은 후로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아이들은 덥다고 물을 연신 마셔댔으니 화장실이 급했을법하다.
다행히 단테스 뷰에서 내려가는 길에 화장실이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매표소에 사람이 없을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는데.
이곳 화장실도 사람이 관리하지 않게 만들어진 화장실이었다.
물을 내릴 필요도 없고 손 씻는 곳도 없는 화장실.
깊게 뚫린 구덩이 속에 모든 걸 비우는 화장실이었다.
나는 어릴 때 그런 화장실을 써봤고, 중국에서도 살아봐서 그러려니 하지만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아이들은 "훕." 숨을 최대한 들이마시고 최대한 빠르게 화장실에 다녀왔다.
나오자마자 화장실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숨을 헥헥거렸다.
우리 차 옆에 다른 차도 주차했다.
엄마와 아이들이 내려 화장실 문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맞아요. 여기 화장실 엄청 냄새나죠?” 내가 말을 건넸다.
“이 근처에 화장실이 여기뿐인 거죠?” 중국인인 것 같은 여자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적어도 여긴 벽은 있네요.”
“그러게요.”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문 앞에서 들어가길 망설이던 아이 둘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쏜살같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또 한바탕 웃었다.
“좋은 여행 되세요.”
아이들은 그 이후로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게 신중하게 물을 마셨다.
우리는 차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자브리스키로 향했다.
식당도 없었다. 땡볕아래에서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음 행선지까지 가는 데는 한 시간씩 걸렸다. 겨울이라 해는 빨리 저물고, 해가 지기 전에 빨리빨리, 한국인 특유의 빨리를 외치며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나는 이런 여행은 적성에 맞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