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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Feb 11. 2023

풋볼에 미친 미국인들

필라델피아 일상

1월 29일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가 준결승전을 벌였다. 결과는 31대 7.

그 이후 필라델피아에서는 약간의 흥분상태가 느껴진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관련 기사를 읽었다.     


1월 29일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챔피언십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꺾고 2월 12일 열리는 슈퍼볼에 진출이 확정된 직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공식 트위터에 필라델피아의 승리를 축하하는 메시지와 함께 해당팀을 상징하는 색상인 초록색과 흰색 점등이 이뤄진 빌딩 사진이 게재됐다. 


중략


키스파워스 뉴욕시의원은 소셜미디어에 “완전히 터무니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일보 2022. 1.31 >     


뉴욕시 위생국은 트위터에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라고 썼다.

뉴욕 포스트는 심지어 “새 머리”라는 제목으로 녹색으로 물든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1면에 실었다.

뉴욕시장은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빌딩이 우리로부터 멀어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2023. 2.5 김현수 기자>     



미국 생활 겨우 4개월 차라 미국인들의 반응이 농담 반 진담 반인지, 아니면 진심에 더 가까운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인들이 풋볼에 정말 진심이라는 건 알겠다. 




가을에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월드시리즈에 올라갔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08년에 이후 14년 만에 결승에 진출한 거라 다들 기뻐하기는 했다. ‘필라델피아’ 하면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만 떠올리던 아이들도 어찌나 열심히 필리스를 응원하던지.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흥분의 정도는 차원이 다르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온 큰 아이가 말했다.     

“헬스 시간에 뉴욕 자이언츠 옷을 입고 온 애가 있었거든. 

그랬더니 선생님이 너 계속 그런 옷 입으면 점수 깎아 버리는 수가 있다고 하는데, 농담처럼 말했는데 표정이 진심이었어.”     


며칠 후 학교에 다녀온 큰 아이가 말했다.     

“전에 뉴욕 자이언츠 옷 입고 왔던 애가 오늘 헬스 시간에 뉴욕 매츠 옷을 입고 온 거야. 애들이 ‘너 뭐야.’ 했어. ”      


며칠이 지난 후 학교에 갔다 온 아이가 가방을 벗자마자 말했다.

“엄마,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 출석부 부르면서 좋아하는 운동팀 말하라고 했거든. 근데 어떤 애가 카우보이스 (댈러스 풋볼팀) 좋아하고 뉴욕팀들(메츠, 양키즈, 제츠, 자이언츠)  좋아한다고 한 거야. 그래서 선생님이 you like to get into trouble? eh? (너 혼나는 거 좋아하는구나?) 했어. 진짜 진심이었어.

자이언츠가 이글스랑 정말 앙숙이거든, 메츠랑 필리스도 비슷하고. 선생님이 더 화내고 싶은 걸 참는 것 같았다니까.”     


학교에 다녀온 작은 아이도 말했다.

“요즘 우리 반 선생님 맨날 이글스 옷만 입고 와. 초록색 흰색 번갈아서 계속.”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거의 이글스 옷 입고 다녀.” 큰 아이도 말했다.     


이번 주 월요일에는 아이들 학교 교육감에게서 단체 메일이 왔다. 학교 교육청 전체 학부모에게 보내는 메일이었다. 메일에는     


“1년 학교 일정표에 다음 주 수요일은 교직원 역량 계발로 인해 2시간 지연 근무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일요일 밤에 슈퍼볼에 진출하기 때문에 역량 계발하는 날을 수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꿉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슈퍼볼 진출과 역량 계발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도대체 얼마나 밤새 놀려고 그러는가? 

맞벌이 가정은 1년 학사 일정을 보고 아이들 돌봄을 다 계획했을 텐데, 어쩌나.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서 다시 메일이 왔다. 메일을 짧게 줄이면 이렇다      

“2시간 지연 등교일이 수요일에서 월요일로 바뀌면서 혼란을 야기해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방과 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은 1회 40불을 주고 신청하세요.”          

슈퍼볼 때문에 갑자기 날짜를 바꿨으면서 학교에 아이를 맡기려면 40불을 내라니.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에서 온 메일에는 슈퍼볼이 있기 전 마지막 등교일인 금요일에 이글스 옷을 입고 등교하라는 메일이 왔다. 

부랴부랴 동네 엄마들과 이글스 옷을 사러 갔다.     

우리나라 이마트처럼 식품도 팔고 저렴한 옷도 파는 타겟, 없음. 

옷이나 가방 이월상품을 파는 티제이맥스 갔더니 역시 없음. 

운동복 전문매장인 딕스에 갔다.

딕스 출입문 유리에는 누가 그렸는지 한쪽에는 이글스 독수리가, 맞은편 유리에는 초록색 헤드 기어가 그려 있었다.

이글스를 상징하는 녹색이나 흰색 옷을 사고 싶었지만 남은 색은 검은색과 회색이 전부였다.     

교복도 체육복도 없는 학굔데 이글스 옷을 준비물로 사야 하다니.     


중학교도 마찬가지다. 큰 아이가 금요일은 풋볼 데이란다. 

영어, 수학, 과학, 사회 같은 중요 과목은 수업을 하지 않고 작은 과목만 두 시간 수업을 한단다. 

나머지 시간은 풋볼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프레첼이랑 간식을 먹으며 논다고 신이 났다.               


학교뿐이 아니다. 얼마 전 오렌지를 사러 집 근처에 있는 마트 아크미에 갔더니 마침 오렌지가 할인 중이었다.

할인 명은 플라이 이글스.

그리고 슈퍼볼 경기가 있는 일요일에 이글스 옷을 입고 20불 이상 사면 5프로 할인이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편의점 와와도 이글스 옷을 입고 가면 무료 커피 제공, 던킨 도넛도 이글스 옷을 입고 가면 토, 일요일 무료 커피 제공.          


오늘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갔더니 정문에 떡하니 이글스 로고가 걸려 있었다.          

100프로 한국인인 나는 이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다. 

'이렇게나 흥분할 일인가?'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풋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흥분까지면 괜찮다.

필라델피아 시내에서 상점을 하는 사람들은 필라델피아 팀이 이기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야구든 풋볼이든 필라델피아 팀이 이기면 흥분한 사람들이 흥분을 이기지 못해 상점 유리를 깨고 물건을 도둑질한다고.

흥분하는 것과 도둑질하는 것은 별개의 일인데, 어쩌다 둘이 같이 묶여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원래도 어두워지면 밖에 잘 나가지 않지만 풋볼을 하는 일요일 저녁 이후에는 가능하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마치 거기가 풋볼 경기장인 것처럼 응원가를 부르고 마음껏 에너지를 방출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CBS 필라델피아에서 우리 학교 찍어갔어." 했다. 

어, 진짜네...

풋볼 덕에 아이가 미국 뉴스에 잠깐 스쳐 지나갔다.            

영상으로 본 학교 분위기는 내 생각보다 더 흥분의 도가니였다.


풋볼이 밋밋한 생활에 엄청난 양념이 되어준다.

적어도 아이들은 이번 주 내내 일요일 경기를 기다리며 즐겁게 보내고 있다. 



스티커 아니라 진짜 그린 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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