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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Feb 12. 2023

5.미국 경찰에게 잡히다- 데스밸리 3

미국서부여행-필라델피아일상

단테스 뷰에서 자브리스키로 향했다.


자브리스키는 화산 지형이 대부분인 데스밸리의 다른 곳과 달리 퇴적암이었다. 

공사장에서 땅을 파서 흙을 대충 쌓아 올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런 황토색 언덕이 끝도 보이지 않게 구불구불 흘렀다. 

나는 여기가 거대한 공사장 같다는 것 외에 다른 특별한 면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아이들은 경치 따윈 관심 없는 듯 언덕을 오르내렸다. 

자브리스키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다른 곳과는 달리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잘 찾아보면 조개나 암모나이트화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덕 중간중간에는 2~3미터 정도 되는 나지막한 절벽도 있었다. 

아이들은 클라이밍을 한다고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여긴 퇴적암이라 잘 부서져. 내려와.”

“싫어, 클라이밍 할 거야!”


툭, 투두둑. 1.5미터 정도 기어올랐을까. 

딸이 튀어나온 돌을 디디자 돌이 있던 곳이 흙과 함께 무너졌다. 

딸이 허둥대며 다른 곳에 발을 디뎠지만 그쪽도 마찬가지로 무너졌다. 

황토색 흙먼지가 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과 나는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딸에게 달려가지도 못했다. 

떨어지던 딸은 어떻게 균형을 잡았는지 먼지 한가운데 우뚝 섰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라 이럴 때는 참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너무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지나치다.


“다리라도 부러졌으면 어쩔 뻔했어!”

“다리 부러지면 여행 못 해?” 태연한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이제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 딸은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며칠은 몸을 사리겠지 싶었다.           


다시 한 시간을 달려 배드워터에 갔다. 

단테스 뷰에서 한눈에 보이던 배드워터다. 

내려다볼 때는 흰 소금만 보였지 관광객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주차장이 협소해서 주차장 자리를 기다리는 자동차가 10미터 줄을 서있었다. 

비수기인 지금도 이렇게 차가 막히는데 성수기에는 몇 미터 줄을 서야 할까? 

고개를 들어 단테스 뷰가 어딘지 찾았지만 찾기 힘들었다. 

물론 단테스 뷰에 가득했던 관광객도 보이지 않았다. 개미만 하게 조차. 

하긴, 1,699m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마블 영화 속 호크아이보다도 시력이 좋은 거겠지. 


배드워터는 해수면 보다 86m 낮은 분지다. 

북미 대륙을 통틀어 가장 고도가 낮은 곳이다. 

이곳은 한 때 바다였다고 한다. 

이제는 물이 다 말라 소금밭이 됐다. 

배드워터는 염분 때문에 생명체가 거의 살지 않는다고 한다. 

생존한 생명체 중 하나는 희귀한 달팽이라고 한다. 

트레일 입구에 그 달팽이를 보호하기 위해 정해진 길 밖으로는 가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조금 더 크게 쓰여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니면 중간중간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을 세우거나. 

많은 사람들이 독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밟지 않은 소금밭을 걸어 들어갔다. 

파란 하늘과 흰 소금밭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좀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어서 마음속으로 달팽이의 평안을 빌었다.


소금은 멀리서 봤을 때는 희고 깨끗해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흙과 먼지가 섞여 흰색에 회색 점이 붙어 있다. 소금을 조금 잘라서 먹어봤다. 짰다. 

조금 더 걸어가서 한 번 더 먹어봤다. 역시 짰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냥 다 짠맛이었다.           


고운 모래가 깔린 메스키트 모래언덕 mesquite flat sand dunes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5시였다. 

해는 거의 넘어갔다. 

우리가 주차장에 내렸을 때 남아 있던 약간의 해조차 넘어가 어느덧 파란 어둠만 남았다. 

마치 스타워즈의 한 장면 같았다. 사람들은 조심조심 모래를 밟았다. 

아이들은 모래 언덕에 엉덩이를 깔고 썰매를 탔다. 

내 운동화 속에 모래가 들어갔다. 

그새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져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아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해졌다. 

한 시간 차를 타고 왔는데 이십 분도 머무르지 못하고 차로 돌아갔다.     


이제 라스베가스로 돌아갈 시간이다. 

몸에 붙은 모래를 털어내고 하루의 먼지를 씻고 싶었다. 

배도 고팠다. 


남편도 피곤해서 빨리 가고 싶었는지 평소보다 속도를 냈다. 

우리 차 뒤로 경찰차가 따라왔다. 

“어? 경찰차 못 봤던 것 같은데. 저녁 먹으러 가나?”

과속을 하던 남편이 경찰 때문인지 규정 속도를 지켰다. 

35마일을 유지하며 몇 미터를 달렸을까.


‘이오이오’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냈다.

“설마. 우리 따라오는 건가?”

“몰라. 얼른 갓길에 멈춰 봐.”

경찰차가 우리 차 뒤에 섰다. 

“우리 차 맞나 봐”


경찰차에서 경찰이 내렸다. 170 센티미터 정도 키에 군살 없는 몸, 갈색 콧수염을 길렀고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억지로 사납게 눈을 뜨고 있었다. 

경찰은 조수석 창 옆에 서서 창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나는 미국 영화에서 본 것처럼 두 손을 들어 아무 무기가 없다고 보여줬다. 

그리고 창문을 내렸다. 


“너희 과속 운전을 했어.” 경찰은 딱딱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규정 속도는 35마일인데 너네는 50마일로 달렸어. 면허증 줘. 이거 렌트카니? 렌트카 영수증도 같이 줘.”


면허증은 자동차 뒤 트렁크에 둔 남편의 가방 안에 있었다. 딸아이가 안전벨트를 풀고 트렁크에 있는 가방을 꺼내더니 지퍼를 열었다.

“세희야! 하지 마! 그러면 경찰이 총 꺼낸다고 오해할 수도 있어.”

이미 긴장해 있던 아이들이 바싹 얼었다. 

“면허증은 가방 안에 있어. 꺼내도 될까?” 

남편이 경찰에게 말했다.

남편을 가방을 속을 경찰에게 보여주며 아무 무기도 없다고 확인시켰다. 경찰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다음 가방 속에서 지갑을 찾아 면허증을 꺼냈다. 


“너네는 두 가지 규정을 어겼어. 첫 번째, 속도위반. 둘째, 난폭 운전. 좌회전을 하려고 기다리는 차 뒤에서 기다리지 않고 갓길로 달려 계속 운전했어. 여기는 마을도 있고 주유소도 있으니 위험하잖아.” 

아까보다 나긋해진 목소리였다. 

학창 시절 선생님 잔소리 같은 목소리로 경찰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경찰이 말하는 동안 나는 속으로 벌금이 얼마나 나올까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내 얼굴은 분명 울 것 같은 표정이었을 거다.

“너네 두 가지 잘못이 있었던 거 인정하지?”

“오케이.”

“너네는 아이들도 있잖아. 그리니 안전하게 운전해야지.”

“오케이.” 달리 할 말도 없었다.

“그럼 이제 규정 속도 지키고 난폭 운전도 하지 마. 알았지?”


경찰은 면허증과 영수증을 돌려준 다음 경찰차에 올라타 다음 속도위반차량을 잡으러 갔다. 

경찰이 우리를 훈계하는 동안 우리를 지나쳐 간 차들은, 분명 과속을 하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속도를 줄였을 거다. 


“벌금 얼마나 나올까? 미국은 벌금이 세서 과속운전도 벌금이 300만 원 넘을지도 모른데.”

“누구는 국제 면허증 보여주면 귀찮아서 봐준다는 말 듣고 국제 면허증 줬다가 거의 천만 원 정도 되는 벌금 고지서 날아왔다더라.”

“이제 더 아끼자. 여행하는 동안 밥도 사 먹지 말까?”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벌금 얼마나 되는데?” 딸아이가 물었다.

“모르지. 지역마다 다르대. 그건 너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내가 천천히 달리랬잖아. 그리고 여긴 편도니까 앞차가 좌회전 깜빡이 넣었으니까 기다리랬잖아. 속도보다 빨리 달리니 못 서고 그냥 갓길로 달린 거잖아.” 

“미안해.” 남편이 순순히 미안하다고 했다.     


차 안 공기가 무거웠다. 아이들도 하루종일 차를 타고 뜨거운 햇볕 아래를 걷느라 피곤했는데 울기까지 했으니 진이 빠진 것 같았다. 아이들은 곧 잠이 들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한국에 있었다면 케이크에 촛불도 붙이고 맛있는 것도 먹었을 텐데. 우리는 경찰에 잡히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면 식당 근처에 주차하는 주차비도 비싸고 음식도 비쌀 텐데.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라 식당은 예약도 다 찼을 것 같아. 호텔에 도착하면 햇반에 건조국이나 먹을까? 아니면 인도 음식 먹을래?” 외식을 하지 않기로 했던 한 시간 전의 결심을 돌이켰다.

“여보, 여기 인도 음식점 괜찮은데 여기서 저녁 먹자.”     


데스밸리 국립공원에 갈 때 점심을 먹었던 도시 패럼프에서 저녁도 먹기로 했다.

패럼프 식당을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니 물가가 싼 편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경찰에게 잡히고 많은 일이 있었으니 저녁이라도 든든히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식당 이름은 Pour House. 아이들을 깨웠다.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계속 자고 싶어 했다. 

심지어 “벌금도 내야 한다며. 그냥 호텔 가면 안 돼?” 짜증도 냈다.

“너네 좋아하는 난이랑 치킨 카레 먹자.” 꾀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치킨 망고 카레 하나, 양고기 카레 하나, 난 두 개, 새우 브리야니(biryyani) 하나를 시켰다. 

아이들은 언제 돈 걱정을 했냐는 듯이 음식에 달려들어 밥을 싹싹 비웠다. 

60달러 나왔다. 카레가 생각보다 많았고 밥이 함께 나와서 브리야니와 난 2개가 남았다. 

남은 것은 포장해서 다음날 아침에 먹기로 했다. 저녁식사 팁은 20%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팁까지 주고 나니 72달러였다. ‘이렇게 돈 쓸 때마다 살 떨리는 여행 괜찮을까?’ 생각했다.

      

패럼프에서 라스베가스까지 가는 길은 미국의 다른 작은 도로들처럼 가로등 하나 없었다. 자동차 전조등과 가끔 맞은편에서 오는 차의 불빛이 전부였다. 차창 밖으로 별이 보였다. 

“별이 보이네?” 내가 말했다.

“별 엄청 많은데.” 남편이 말했다.

“그래? 나는 별로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자동차 전조등 때문인가?”

“자세히 봐. 엄청 많이 보이는데.”


남편이 차를 갓길에 세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패딩을 벗고 긴소매도 팔뚝까지 걷어 올려야 했던 낮과는 달리 꽤나 쌀쌀했다. 

하늘에는 정말 별이 가득했다. 

그믐이라 달빛의 방해도 없었다. 

희미하게 은하수도 보였다. 

도시의 불빛이 없는 밤하늘은 이렇구나. 


고등학생 때 천체관측동아리에서 활동했다던 남편은 큰아이에게 별자리를 알려줬다. 

나도 남편에게 별자리 찾는 법을 듣곤 했지만 늘 잊어버렸다. 

별을 더 많이 눈에 박히도록 봐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홀린 듯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던 대로 사막의 부드러운 모래에 누워서 별을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사막에 있었다. 

모하비 사막에서 자동차 갓길의 거친 모래 위에 서서 별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20대 때와는 다르게 내 뭔가가 부서지는 느낌은 없었다. 

아마도 20대 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속물적이고,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어있어서일까. 

아니면 지금의 내 삶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어서일까.          


우리는 완전 녹초가 돼서 라스베가스 트럼프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지 않아 배까지 고팠다면 비참한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긴장했던 마음을 달랠 겸 욕조에 몸을 담갔다. 


내가 욕조 안에 있는 동안 남편은 소파에 앉아 구글과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하고 있었다.

“여보, 원래 경찰이 벌금 물릴 때는 무슨 딱지 같은 걸 준대. 그리고 거기 사인하라고 한대.” 

“그래?”

“그리고 난폭 운전은 벌금이 아니라 그냥 잡아간대.”

“뭐야, 당신 감옥 갈 뻔한 거야?”

“내 생각에는 애들도 있고 해서 그냥 봐준 것 같아. 그래서 나중에 아이들도 있고 하니 조심하라고 훈계 정도 한 것 같아. 그 경찰이 마음 약하고 착한 경찰이었나 봐.”


그게 맞다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미국 경찰한테 걸린 건 처음이라 봐준 건지 딱지를 받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여행 후 필라델피아 집에 돌아간 지 한참이 지나도 벌금이 적힌 편지는 받지 못했다. 

아마도 아이들을 본 경찰이 마음이 약해져서 그냥 면허증을 되돌려준 것 같았다.    

 

경찰에게 걸린 이후 12일의 여행 기간 동안 우리는 자동차 크루즈 기능을 규정 속도에 맞게 지정해서 속도를 완벽히 지켰다. 

우리를 뒤따라 오던 차들은 짜증을 내며 우리 차를 추월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를 추월했던 많은 차들 중에 흰색 SUV 한 대가 경찰에게 잡힌 것도 봤다. 

그제야 미국 경찰차는 평소에는 일반 차량처럼 다니다가 문제 차량을 적발했을 때만 사이렌을 켜고 달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의 하루는 사실 내가 바라던 사막 여행은 아니었다. 

나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뭔가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섬광처럼 내가 찾고 있는 것이 이거였다고 알아차릴 수 있는 뭔가를 기다렸다. 


조금은 힘든 여행을 하길 바랐다. 

목이 마르고, 무언가가 모자라고 갈망이 깊어지기를 바랐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최대한 부족하지 않게 모든 것을 준비해 가서 그런 일은 없었지만. 


나는 사막을 더 갈망하게 됐다. 

언젠가 다시 사막을 밟고 사막의 하늘을 볼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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