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일상
집에 빵이 똑 떨어졌다.
만들기는 귀찮고.
그럴 때는 오버나이트 반죽을 하면 딱이다.
최대한 반죽을 안 만지고 그냥 기다리는 게 다인 빵.
한동안 부드러운 식빵을 먹었더니 이제 거친 빵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통밀가루 두 봉지를 꺼냈다.
하나는 스켈트 통밀, 하나는 킹아서 오가닉 통밀.
냄새를 맡아보니 스켈트 통밀에서 더 구수한 냄새가 났다.
스켈트 통밀은 회색을 띠고, 킹아서 밀가루는 조금 누런빛을 띤다.
150그램씩 두 종류 밀가루를 섞어 밤 8시에 반죽을 시작했다.
40분 휴지 시키고 접기, 30분 간격으로 3번 더 반죽 접기를 하고 반죽을 냉장고에 넣었다.
일어나 보니 반죽이 빵실빵실 잘 부풀어 있었다.
오븐에서 빵이 거의 구워질 때면 온 집 안에 빵냄새가 솔솔 풍긴다.
사자 입이 다 다른 건, 조각한 사람이 그걸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었지.
그 사람은 사자 입을 조각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그 삶의 일부가 거기에 있는 거야.
오래전에 죽었더라도 그 사람은 거기에 있는 거지. 월귤 잼도 그렇단다.
네 할머니는 월귤을 따서, 꺠끗이 씻고, 졸였어.
너무 시지도 달지도 않을 만큼 설탕을 알맞게 넣고 휘저은 다음 이 단지에 따랐단다.
네 할머니는 잼에 시간을 들였지.
그리고 생각들도.
그러니 이 잼에는 네 할머니의 일부가 있는 거야. 이해하겠니?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험 / 울프 스타르크 글, 키티 크라우더 그림, 이유진 옮김, 살림출판사>
사실 빵은 마트나 빵집에 가서 그냥 휙 바구니에 담아 사 오면 그만이다.
빵을 만드는 것은 재료를 사야 하고,
재료를 개량하고,
적당한 시간에 반죽을 다루고,
적당한 온도로 구워낸 후,
적당히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
그 전체다.
이 통밀빵 하나에 내 삶의 일부가 들어있다.
그리고 내 일부가 이렇게 구수하고 쓸모 있다니.
최소의 시간을 들여 최대 생산을 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집에서 빵을 굽는 일은 참 쓸데없는 일이다.
4시간을 들여 만든 빵은 순식간에 입 속으로 사라지니까.
그래도 이렇게 맛있는 빵을 가족들과 함께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내 삶의 일부를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