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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Feb 16. 2023

라스베가스에서 요세미티로

미국서부여행-필라델피아 일상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필라델피아 시간은 7시 반이니 원래는 일어났을 시간이었다. 

호텔 방안에는 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렸다. 

다시 자려고 애썼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모두 자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틀 수도, 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쓸 수도 없었다. 

독립된 공간은 화장실 뿐이었다. 

다행히 트럼프 호텔의 침대는 너무 푹신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았다.

미국 호텔 침대는 지나치게 푹신한 편인데 이 호텔은 딱 내 기호에 맞았다.

 

하지만 방 하나에 네 사람이 함께 있으니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 

특히 밤에 혼자 깼을 때는. 

다른 식구들의 단잠을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침대에서 최대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날씨도 검색했다. 

라스베이거스 최저 온도는 6도, 낮 최고 기온은 13도. 요세미티는 최저 온도 2도, 낮 최고 온도는 16도. 온도 변화가 꽤나 컸다. 


7시가 됐다. 

이제는 일어나 움직여도 될 것 같았다. 

커튼 살짝 열어보니 이미 해가 나와 있었다. 

몸이 찌뿌둥했다. 

늘 몸 어딘가에는 미세한 근육통이 있는데 며칠간 근육에 어떤 자극도 없었다. 


나는 8년 넘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행 이틀 전부터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행을 하면 일상의 규칙이 흐트러진다. 

나는 여행 중에도 균형을 맞추려 애쓰는 편이다. 


아직 모두 잠을 자고 있어 조용히 화장실에 갔다.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벽을 잡고 다리를 손으로 발등을 잡고 양쪽 앞허벅지를 스트레칭했다.

한 발씩 한 발 앞으로 딛고 고관절을 접어 햄스트링도 스트레칭했다.

와이드 스쾃에서 시작해 보폭을 줄여가며 스쿼트를 했다. 

'조금 살 것 같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한걸.' 생각이 들었다.

"운동중독자야." 남편은 가끔 나더러 운동중독자라고 놀린다.

"나는 그냥 내 몸에 긴장감이 있는 게 좋거든?"

"그게 운동중독자인 거야."

나는 프로 N잡러인데 N 중 하나가 필라테스 강사다.


우리가 라스베가스에서 요세미티로 이동하는 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차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라스베가스에서 요세미티까지는 규정속도로 운전했을 때 8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요세미티에 가려는 사람은 대체로 요세미티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이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요세미티와 그랜드 투어를 모두 할 작정이었다. 

여행 기간도 12박이라 시간도 나름 넉넉했다. 

겨울이라 그랜드 캐니언이나 다른 캐니언도, 요세미티도 눈 때문에 폐쇄된 곳도 많았다. 

그러니 갈 수 있는 곳도 한정적이었다.

겨울은 비수기라 그리 붐비지 않는다고 한다. 

국립공원에서 주차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라스베가스에 숙소를 잡고 서북쪽 캘리포니아 방향으로 8시간이 걸리는 요세미티에 갔다가 라스베가스로 돌아온 후 동쪽으로 4시간 반이 걸리는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네바다주에서 차의 연료통을 가득 채우고 캘리포니아 주로 들어갔다. 

캘리포니아 주는 기름이 비싸기 때문이다.

데스밸리에서 캘리포니아 기름값을 확인한 터였다.

 

나는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 오렌지를 처음 먹어봤다. 

오렌지가 너무 맛있어서 ‘캘리포니아에서 마당 딸린 주택에 살아야지. 마당에는 오렌지 나무를 심을 거야.’ 

다짐하기도 했다. 

도로 옆으로 끝도 없는 오렌지 농장이 보였다. 

나무마다 오렌지가 마음이 설렐 만큼 달려 있었다. 

“떨어진 오렌지라도 먹고 싶다.” 

“갓 딴 오렌지는 더 맛있나?” 

나만큼 오렌지를 좋아하는 큰 아이도 오렌지 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렌지밭을 지나자 이제는 포도나무 밭이 끝도 없이 나왔다. 

포도나무 밭을 지나니 매화꽃 같은 꽃이 핀 아몬드 나무가 나왔다. 

오렌지, 포도, 아몬드 밭의 반복이었다. 

내 어릴 적 소망처럼 마당에 오렌지 나무를 심은 주택도 보였다. 

   

엉덩이가 아파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을 때쯤 베이커즈필드라는 도시가 나왔다. 

우리는 인 앤 아웃버거를 먹었다. 

인 앤 아웃버거는 서부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부에는 없다. 

동부에는 쉑쉑버거가, 서부에는 인 앤 아웃버거가 터줏대감인 듯했다.

 

인 앤 아웃버거는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다른 버거집보다 번이나 야채가 정량이었다. 

단, 프렌치 프라이를 레인지에 데워 주는 걸 보고 좀 놀랐다.

그런데 레인지에 데운 것 치고 꽤나 바삭해서 더 놀랐다.




요세미티가 가까워질수록 엉덩이도 허리도 아파왔다. 

아이들도 더 이상 “얼마나 더 가야 해?” 묻지도 않았다. 

물어볼 기운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먹거리를 사러 마리포사에 들렀다.  

아이들이 마트에 들어가기 싫어해서 남편 혼자 장을 보고 우리는 주차장에서 걸었다.

마리포사는 꽤 단정한 도시였다.

마트 바깥 풍경을 본 것이 다였지만 그곳이 풍기는 인상이 그랬다.

낮에 갔던 베이커스필드가 어서 버거를 다 먹고 차에 올라타 떠나고 싶은 인상이었던 것에 비해 

이곳은 더 작고 단단해 보였다.

어쩌면 관광도시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목적지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마냥 행복한 걸지도.


이제 차 트렁크에는 빵, 계란, 쨈, 기름, 물, 소고기, 오렌지, 사과가 추가됐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먹을 작은 케이크 한 조각도.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예약했던 요세미티 뷰 롯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찬 공기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하늘을 보니 별이 가득했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미리 알아봤던 대로 롯지에는 스토브가 있었다. 

우리는 햇반을 데우고 소고기를 굽고 케이크를 먹으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집에 있는 트리 밑에 두실까? 아니면 여기다 두실까?"

"집일 거야."


서부에서 맞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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