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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Feb 28. 2023

요세미티- 투오룸 그루브

미국서부여행 - 필라델피아 일상

우리는 왜 겨울에 요세미티에 간 걸까?

 <Your Guide to the National Park>에서 읽었을 때 요세미티의 겨울은 ‘눈 덮인 풍경, 여름과는 다른 한적한 매력’이 있다고 했는데.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갈 수 없는 곳이 80 퍼센트이고 허락된 곳은 남은 20퍼센트 정도랄까? 자동차 체인이 필수라는 안내를 보고 무거운 체인을 캐리어에 넣어 필라델피아에서부터 짊어지고 왔지만 쓸 일도 없었다. 애초에 길 자체가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차만 타면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어서 단체 관광객들은 필수로 가는 글레시어 포인트도 갈 수 없었다.   

  



첫 번째 날은 요세미티 폴, 둘째 날은 포마일 트레일을 트레킹 하고 글레시어 포인트, 터널뷰를 쉬엄쉬엄 다니려고 했다. 그런데 포마일 트레일도 폐쇄. 우리는 갈 수 있는 곳을 애써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요세미티까지 와서 삼일 내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만 하다가 갈 순 없지 않나. 그러다 발견한 곳이 투오룸 그루브다.     

투오룸 그루브로 가려면 빅 오크 플랫 로드 (Big Oak Flat Road)를 차로 한참 올라야 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다 보니 불에 탄 나무가 많이 보였다.


“엄마, 여기 불났나 봐.”

“그러네. 캘리포니아가 가뭄이라더니, 설마 여기까지?”

“엄마, 여기도 불났나 봐.”

“그러네? 이것도 최근에 난 불같은데.”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 여기저기서 거뭇거뭇 불에 그을린 나무 무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캘리포니아 산불이 요세미티까지 번졌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엔 국립공원 내 롯지나 야영장과 화장실 등 다른 시설들이 멀쩡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산 절반은 홀랑 타버렸고 나머지 절반은 나무가 남아있어 중국식 변발 같은 모양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요세미티에서 불에 그을린 흔적은 그렇게 홀랑 타버린 모습은 아니었다. 아래 둥치는 검게 불에 그을린 모양, 군데군데 나무가 쓰러진 모양이었다.      


구글을 검색해 보니 가을이 되어 날씨가 선선해지고 비가 올 예보가 있고 기타 다른 상황들이 갖추어지면 요세미티의 소방관리자들은 나무들 일부를 인위적으로 태워 없앤다고 한다. 나무를 태우는 것은 번개나 불씨로 인해 산불이 났을 때 큰 불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불은 더 이상 태울 장작이 없는 공간 앞에서 자연히 꺼진다.     


잣나무와 소나무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끝없이 오르다 보니 드디어 투오룸 그루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도는 1860미터. 차가 막히는 길도 아니었는데 숙소에서 한 시간은 넘게 걸렸다.     


주차장에 쌓인 눈을 치우면서 트레일 입구에 쌓아뒀다. 눈을 뛰어넘을 방법도 없어 밟았더니 무릎까지 빠졌다. 부츠 속에 들어간 눈을 털며 길을 걸었다.     

전날, 나름 관광객들이 보이던 곳과는 달리 조용한 산길이었다. 주차장에는 우리보다 앞서 온 차와 우리 차 두 대가 전부였다. 숲은 너무 조용해서 처음에는 가도 될까 무서울 정도였다. 


“곰 나오는 거 아니야?”

아이들은 틈만 나면 곰이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

“곰이 나오면 어리고 포동포동한 너희들 잡아먹을까 봐?”

“하지 마! 나 맛없을걸!”

“맞아. 엄마랑 아빠가 제일 맛있을걸.”     


우리는 누가 누가 맛없나 경쟁을 하며 길을 걸었다. 눈에 발이 푹푹 빠져서 걷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런, 눈 때문에 곰이 와도 도망도 빨리 못 치겠다.”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얼마쯤 걸었을까. 어른 열 명이 손을 맞잡아도 나무 둘레를 다 이을 수 없을 만큼 큰 나무가 보였다. 적갈색 나무는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 자이언트 세콰이어였다. "1864년 링컨 대통령은 자이언트 세콰이어를 보호하기 위해 요세미티 밸리와 마리포사 그루브를 캘리포니아 주로 병합시키는 것에 사인했다."  투오룸 그루브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서 읽었다. 

"이게 자이언트 세콰이어인가 봐!"


투오룸 그루브에는 자이언트 세콰이어가 스무그루 정도 서식하고 있다.  자이언트 세콰이어는 100m까지 자란다. 영화에 나오는 절대 강자처럼 숲이 불에 타도 이 나무는 불속에 살아남는다. 나무 표피는 꽃꽂이용 오아시스처럼 물을 머금을 수 있어서 산불이 나도 조금 그을릴 뿐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그리즐리 자이언트 세콰이어의 수명은 2700살. 하지만 모든 자이언트 세콰이어가 3000살 정도까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숲의 최강자인 이 나무는 자신의 무게 때문에 쓰러져 죽는 경우가 많다. 무게가 코끼리 460마리에 달하는 자이언트 세콰이어가 쓰러지면 산맥이 울릴 정도라고 한다. 1990년대 말에 한 그루가 넘어졌다고 하니 산맥이 울리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있겠지.


선조들은 오래 살았던 거대한 나무를 신이 깃든 나무라고 여겨 섬기기도 했다. 자이언트 세콰이어를 보니 그런 선조들이 이해가 됐다. 우리는 넋을 놓고 나무를 한참을 바라봤다. 요세미티에는 그런 나무가 몇 백 그루나 있는 셈이었다. 




요세미티를 트레킹 하며 우리나라 산들을 떠올렸다. 케이블카를 주렁주렁 달아놓은 산들. 천천히 걷고, 야영하는 곳이 아니라, 케이블카를 타고 휙 올라갔다가 휙 내려오면 끝인 공간. 심지어 우리나라 산에는 코요테나 여우, 곰도 없는데 말이다. 미국은 요세미티를 1890년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애써 보호하고 있는데, 우리는 뭘 하고 있나. 물론 국토의 70 퍼센트가 산이라 케이블카를 달아도 남는 산이야 많다는 건가? 우리는 산을 '소비'하고 있다. 단 3일의 스키경기를 위해 500년 원시림 가리왕산을 벌목했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고 자원은 부족한 나라인 것은 알지만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지자체는 무조건 케이블카를 만들어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최선일까? 원시림을 보존하고 케이블카 없이 산을 그냥 두면 아마 30년 후쯤 지자체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요세미티를 보며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투오룸 그루브 숲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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