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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r 04. 2023

후버댐 - 그랜드 캐니언 가는 길

미국서부여행 - 필라델피아 일상

아침이 되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날이 갰다.      

그날은 그랜드 캐니언에 가는 날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시내에서 후버댐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그래서인지 라스베이거스에 온 관광객 절반은 후버댐에 온 것 같았다.      

미국에서 그렇게 차가 막힌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차가 막히는 원인 중 하나는 후버댐이 국가 시설이라 입구 앞에서 느릿느릿 신원확인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관총을 어깨에 사선으로 맨 군인이 입구마다 서 있었다.     

하지만 신원 확인을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차 유리를 내려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끝이었다.     

위험한 얼굴과 안전한 얼굴을 보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 걸까?     

아니면 허튼짓하지 말라는 경고 차원의 무장일까?     

이런 엄청난 정체를 유발할 정도의 신원확인 치고 너무 엉성해 보였다.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는 콜로라도강을 경계로 나뉜다.      

후버댐은 미국에서 멕시코까지 2천330km를 흐르는 콜로라도강의 하류 블랙 협곡을 막아 건설한 댐이다. 1936년에 완공됐는데 그 시절 그렇게 큰 댐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가졌다는 것이 놀라웠다.      

1930년대 초반 미국 대공황을 타개하려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는데, 후버댐은 그중 하나다.      

후버댐은 높이 221m 길이 411m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데, 완공된 당시 불가사의에 오르기도 했단다.           

후버댐에는 두 개의 시계가 걸려 있었다.      

네바다주 시계탑에는 태평양 표준시 시계가, 애리조나 쪽 시계탑에는 산악 표준시 시계가 걸려있었다.      

네바다주는 서머타임을 시행하는 주라 4월부터 10월까지는 두 주의 시간이 같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여행했던 12월에는 네바다 쪽 시계는 1시, 애리조나 쪽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네바다에서 건너가 한 시간 후버댐을 둘러보고 애리조나로 가도 여전히 시간은 오후 1시였다.      

한국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도 같은 시간을 쓰는데.                


영화 <워크 투 리멤버>가 떠올랐다.      

“동시에 두 곳에 서 있기”는 여자주인공 제이미(맨디 무어)의 버킷리스트였다.      

상대역인 랜든(쉐인 웨스트)은 제이미를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 경계로 데려간다.      

랜든은 '너를 위해 준비한 게 있어.' 하는 눈빛으로 제이미가 기뻐할 모습이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랜든은 제이미의 한 발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한 발은 버지니아에 디디게 한다.     

"지금 동시에 두 곳에 서 있는 거야."     

제이미는 랜든이 버킷리스트를 기억해 준 것에, 버킷리스트를 하나 달성한 것에, 랜든의 마음에 한껏 기뻐한다.               


후버댐에서는 두 공간은 물론 두 시간대를 경험할 수 있다.      

팔과 다리를 자유자재로 늘일 수 있는 가제트 형사가 아니라 강 이쪽에서 저쪽을 한 번에 디딜 수는 없었지만.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콜로라도 강이 말라가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왔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콜로라도, 뉴멕시코, 유타, 와이오밍 7개 주는 콜로라도 강의 수자원에 의지해 살고 있다. 후버댐을 만들며 생긴 미드 호 덕분에 미국 서남부는 사막 기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되었다나도 미드호 덕을 봤다.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있는 트럼프 호텔에서 호사스럽게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서 목욕을 했으니까.      

하지만 댐으로 가로막혔기 때문에 이제 콜로라도 강은 더 이상 블랙 캐니언을 깎을 수 없을 거다.                    

우리는 차로 후버댐의 정상, 그러니까 블랙 캐년을 끝까지 올랐다.      

아치 모양의 거대한 콘크리트 댐이 보였다.      

예전에는 멕시코까지 유유히 흘렀을 콜로라도강은 이제 댐에 막혀있었다.                

스페인어로 콜로라도는 “빨갛게 물든”이라는 뜻한다고 한다.      

댐이 생기기 전 이곳은 로키 산맥에서 빙하가 녹으며 흘러내리는 물이 붉은 흙을 깎으며 붉게 흘러내렸나 보다.          

뉴스에서 보던 것처럼 댐은 수위가 위태해 보였다.      

협곡의 검붉은 경계가 아마 댐의 수위였을 것이다.      

경계 아래로는 흰 바위가 드러나 있었고 경계 위로는 풀이 자라 있었다.                

연방정부 내무부 산하 간척국은 각 주정부에 물 제한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와 라스베이거스는 강력하게 강의했다고 한다.      

라스베이거스는 관광객들이 대부분인 도시인데 비싼 숙박비를 내고 온 관광객들에게 ‘목욕을 금지입니다.’ 라거나 ‘샤워는 5분 안에 끝내시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캘리포니아 정부가 오렌지나 포도에게 ‘너희 물 좀 그만 먹어.’ 할 수도 없다.                

그렇게 비가 오지 않았던 서부인데 우리가 여행을 가니 비가 내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1월의 뉴스는 이랬다.      

“캘리포니아 물난리” 비가 와도 너무 온단다.      

이제 물절약 이슈는 쑥 들어갔을 것 같다.      

비가 안 와서 문제였는데 비가 너무 오는 것도 문제다.                    


후버댐을 지나 애리조나주에 진입하자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캠핑카가 보였다.      

이런 곳에 물이 나오나 싶은 사막 한가운데에.     

여행을 하러 온 캠핑족은 아닐 것이다.      

혹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쫓겨난 노숙자들이 이곳에 사는 건 아닐까 추측해 봤다.      

캠핑카는 주가 지원해 줬을까?      

일할 수 있는 곳도 없고, 경작지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장을 보려고 해도 차로 한 시간은 가야 할 텐데 갈 수 있는 이동수단은 있을까?      

근처에는 학교도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아이들도 있는 건 아니겠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우리는 그랜드 캐니언으로 향했다.      

붉은 모래를 끝없이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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