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색깔 사고 모자라는 창의적 사고기법이 있습니다. 여섯 색깔 사고 모자는 여섯 가지 색 중 사회자가 지정하는 모자를 쓰고 그 모자가 의미하는 유형의 사고를 하는 기법입니다.
흰색은 어떤 비판도 해석도 덧붙이지 않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고.
노란색은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시각.
빨간색은 감정이나 영감에만 의지하는 사고. 초록색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창조적인 사고.
검은색은 논리적으로 비판하거나 부정적인 사고.
파란색은 조절 및 통제의 이미지로 다른 모자의 사용법을 조절하는 역할로 사회자 역할을 맡습니다.
읽으면서 ‘나는 이런 유형의 사고를 주로 하는 것 같아’하는 생각이 색깔 모자가 있나요? 저는 주로 검은색에 초록색을 한 방울 떨어뜨려 놓은 것 같은 유형인 것 같습니다. 뭔가를 하려고 해도 이미 계산이 앞서고 해야 할 일정들이 줄줄이 생각납니다. 크게 부담감을 느끼고 밤을 새우면서 일하는 것을 즐기지 않고 일상의 패턴들이 유지되는 선에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해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기질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도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성향인 것 같아요.
사노 요코의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는 아이들과 자주 크게 웃으며 읽던 책입니다. 아흔여덟 살인 할머니는 씩씩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아흔아홉 번째 생일날이었습니다. 고양이가 할머니 생일 초를 사러 갔다가 그만 초를 냇물에 빠뜨려버렸어요. 그러는 바람에 초는 5개만 남았지요. 할 수 없이 할머니는 케이크에 초를 5개만 꽂았어요. 할머니와 고양이는 초를 셉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런데 할머니 진짜 다섯 살이 된 거예요?”
“이제 나 다섯 살이 된 거야.”
5살이 된 할머니는 고양이와 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꽃향기를 맡으니 할머니는 어쩐지 새가 된 것 같아요. 냇물을 뛰어넘으니 어쩐지 나비가 된 것 같지요. 냇물에서 고기도 많이 잡았습니다. 할머니는 어쩐지 고양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고양이의 실수가 할머니에게 최고의 선물이었을까요? 할머니는 고양이를 보면서 그동안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흔여덟 살 할머니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런 일들은 할머니가 만들어 왔던 울타리였을까요? 분명 전과 같은 몸인데 이렇게 가뿐하다니요!
할머니가 다섯 살이 된 것처럼 우리도 다른 색의 모자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해온 사고의 틀을 깨고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는 거죠. 그러면 우리도 할머니가 5살이 된 것처럼 용기 낼 수 있을까요? 할머니는 고기를 많이 잡고 ‘어머나 어머나’ 기뻐합니다. 우리도 의외의 ‘나’를 발견하게 될까요?
올해 마흔한 살이 되었습니다. 만으로 39살이라 박박 우길 수도 있지만요. 주부로 살았던 10여 년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내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겹쳤습니다. 가정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내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어려서, 오랫동안 수련했던 요가를 더 깊이 하고 싶어도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하며 거기에 쓸 돈은 아이들에게 양보하지요. 그렇게 ‘하지만 하지만’하며 망설이기만 했어요. 그러다 40이란 숫자 앞에 조급해진 것이지요.
이 책의 저자 사노 요코는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삶을 연장하는 대신 재규어를 사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녀는 죽는다는 건 자유를 획득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남은 사람들에겐 책임질 것이 많기에 이런 자유를 누리기는 힘들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온갖 책임들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일상에 함몰되었나요? 너무 먼 미래를 준비하느라 지금은 놓치고 있는 즐거움이 있나요? 주변에서 기대하는 역할을 해내느라 내 안의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마음속 ‘하지만’이 더 큰가요? 그림책 수업에서 만난 선생님 한 분이 3년 전쯤 저에게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림을 그리라고. 의사도 될 수 있는 나이야’ 하셨지요. 그때는 하지만 내가 작가가 될 수 있겠어? 나는 그림도 잘 못 그리는데. 그림 잘 그리는 전공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생각했어요. ‘글을 쓰라니! 일기 쓰는 것도 즐겨하지 않고 평생 글쓰기 상은 근처에도 못 가 봤는걸’ 했지요. 그런 제가 서평을 쓰고 있다니요. 저에게 씩씩한 고양이라도 다녀간 걸까요?
이 책을 아이들과 웃으며 읽다 보면 아흔여덟 살 할머니 같던 나도 다섯 살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생일에는 초를 다섯 개만 꽂고 다섯 살로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