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일상
냉장고 과일칸을 열 때마다 레몬이 눈이 밟혔다.
3주 전에 산 레몬이다.
'한 봉지에 2달러도 안된다! 득템이다!' 하고 한 봉지 집어 왔는데 아직도 2개나 남았다.
냉장고에 레몬이 떨어진 적이 없다.
레몬은 나에게 '상비약' 같은 거라, 꼭 없을 때는 급히 쓸 일이 있다.
이를테면 평소에는 잘 만들지도 않는 샐러드드레싱을 만 들일이 있다던가,
유튜브를 보고 요리를 하고 있는데 '레몬즙을 넣으세요.'라는 멘트를 요리사가 한다던가.
한국처럼 좀 비싸도 집 앞에 있는 마트에 가서 사면 되는데 여긴 제일 가까운 마트도 차를 가지고 가야 하니
귀차니즘인 나는 레몬을 쟁여두고 있다.
심지어 나는 빵을 사러 나가는 게 귀찮아서 그냥 빵을 만들어 먹는다.
좀 이상한 귀차니즘이지만 빵을 사러 나가는 과정.
그러니까 옷을 입고, 차키를 챙기고, 시동을 걸고, 주차하고, 다시 역순으로 시동을 걸고 집에 돌아와 장을 본 물건을 내려놓고 손을 씻고, 다시 말도 안 되는 집 안에서만 입는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이 귀찮다.
'레몬청은 이미 냉장고 한편에 가득 있고, 이 레몬으로 뭘 하지?' 생각하며 레몬을 노려봤다.
'아! 레몬 스콘!' 무릎을 탁 쳤다.
스콘은 찬 버터와 찬 우유, 계란으로 만들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쿠키나 케이크처럼 미리 버터와 계란을 꺼내둬야 하는 제과류와는 달리.
먼저 레몬 껍질을 갈아서 레몬 제스트를 만들었다.
레몬 껍질을 갈면 집 안에 레몬 향이 가득 찬다.
레몬 즙도 짠다.
레몬 하나에는 대략 레몬즙이 40m 정도 나온다.
다음엔 계란과 우유를 잘 풀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차갑게 차갑게!
밀가루를 300그램 계량했다.
'집에 통밀 박력분 밖에 남은 게 없네? 그럼 그냥 100% 통밀로!'
버터를 70그램 잘라서 밀가루랑 커트커트.
떡지지 않게 커트커트 하면 알맞게 잘린다.
베이킹파우더랑 설탕이랑 소금을 넣고,
계란 우유물 넣고, 레몬 제스트 넣고, 레몬즙 한 스푼 넣고.
설렁설렁 저어서 한 덩어리로 뭉쳐서 냉장고에 한 시간 정도 넣어준다.
그 한 시간이 성질 급한 나에겐 제일 힘든 시간이다.
"레몬 스콘까지 먹고 양치를 할까. 지금 양치를 해버릴까?" 세상 쓸데없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15분을 기다리다 그냥 반죽을 냉동실에 휙 넣었다. '냉동실에 넣고 10분만 더 기다릴래!'
어차피 내 맘대로 스콘이니까.
10분 동안 오븐을 180도로 예열했다.
'오늘은 네모로 잘라야지.'
반죽을 8조각 냈다.
조금 남겨둔 계란우유물을 스콘 반죽에 발라 18분 정도 구우면!
집 안에 레몬과 스콘 향으로 가득하다.
이런 귀차니즘이라면 좀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