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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r 29. 2023

빙글빙글 시나몬 롤

필라델피아 일상

책을 읽고 있는데 둘째가 거실에서 옆 구르기를 했다.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왼쪽으로 빙글빙글.

애써 책을 다시 읽어보려 했지만 좁은 거실에서 옆 구르기를 하다 물구나무를 서다 난리법성인 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저녁을 만들어야 할 시간도 됐다.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며 유튜브를 검색하는데 페스츄리 만드는 영상이 나왔다.

페스츄리는 내가 만들 수 있는 빵이 아니라는 생각에 지금껏 만든 적이 없었는데

영상 제목이 "나는 왜 이 새로운 방법을 전에는 몰랐을까?"였다.

이게 제목의 힘인가! '새로운 방법'이 있다고?

페이스트리를 새로운 방법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일을 벌이려니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호기심이 피곤함을 이겼다.


버터를 꺼내 실온화 시키는 동안 휘리릭 잡채를 만들어 저녁을 해결했다.

미국에 와서 도시락까지 싸고 삼시 세 끼를 집에서 먹으니 손만 빨라졌다.

이제 저녁도 먹었겠다. 일을 벌일 시간.


레시피를 보니 밀가루, 물, 버터, 소금이 끝.

버터를 계량하고 밀가루와 소금까지 넣어 반죽하고 있는데, 의구심이 들었다.

'뭐야, 이스트도 베이킹파우더도 없다고? 이상한걸?'

이미 손은 버터로 엉망이어서 다른 레시피를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왠지 이스트나 베이킹파우더 중 하나는 넣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유튜버가 실수로 안 적은 걸지도 몰라. 강력분 레시피니까 이스트만 3그램 넣어봐야지.'


사실 이스트를 넣으면서도 좀 이상했다.

반죽한 후 30분만 기다리고 바로 나머지 버터를 반죽 속에 넣고 밀대로 민다는데, 발효빵은 30분 만에 발효가 되지 않으니까.

'뭐, 발효빵이 아닌 거면 그냥 아닌 거지. 30분 만에 3그램 이스트가 뭘 하겠어. 이스트는 그냥 보험이야. 보험.'

자기 합리화까지 했다.


영상 속 반죽은 매끈하고 밀대로 잘 밀어지는데, 내 반죽은 영 이상하다.

딱딱하고 밀대로 잘 밀어지지도 않는다.

반죽 속에 억지로 버터를 넣고 밀대로 밀었더니 반죽 옆구리가 터지면서 버터가 줄줄 새어 나왔다.

'이건 아닌데.'

손도 밀대도 엉망이 됐다.

"밀가루 좀 뿌려 줘."

밀가루를 뿌려가며 밀대로 억지로 밀었다.

'엄마손 파이처럼 384겹을 만들고 싶었는데 힘들겠는걸.'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었다.


'역시 일을 벌이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레시피를 믿어야 했다.' 

이미 알고 있는 교훈을 또 되새길 뿐.


반죽을 억지로 4개의 원통모양으로 만들어 냉장고에 넣었다.

'이스트 넣은 반죽이니 밤새 어떻게든 되겠지. 이스트야, 난 널 믿어.'

이제 이 반죽은 더 이상 페스츄리가 아니다.

뭔지 모르겠는 그냥 반죽일 뿐.


아침에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찬 반죽을 꺼내 실온에 좀 뒀다.

반죽을 노려보다가 시나몬을 뿌렸다.

설탕도 들어가지 않은 빵이니 설탕도 조금 뿌렸다.

200도에서 18분을 구으니 그럭저럭 그럴싸했다.


빙글빙글 롤 모양이고, 시나몬 가루를 뿌렸으니

내 맘대로 '시나몬 롤'이라고 부를 거다.


둘째는 오늘도 빙글빙글 옆 구르기를 하고 그 옆에서 나는 시나몬 롤을 먹는다.

아이고, 정신 사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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