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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r 31. 2023

생존도시락

필라델피아 일상

"필라델피아 물 오염됐다는 거 들었어?" 같은 아파트 중국인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그 중국인 엄마는 미국에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엄마가 수돗물이 못 미더워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여기 수돗물 원래 맛이 이상해. 그냥 미네랄이랑 석회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생수 사 먹어."

라고 답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아이를 오케스트라에 데려다주고 빈 시간에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때와 다름없이 물을 사려고 생수코너에 갔다.

코스트코물, 디어워터. 할 것 없이 생수 코너가 텅 비었다.


"문 닫을 시간은 원래 이런가?"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찜찜했다.

그때 남편 휴대폰에서 카톡이 울리기 시작했다.


"라텍스 공장 배수관이 터져서 델라웨어 강으로 흘러들었대요."

그래서 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거다.

먹는 물도 문제지만 씻는 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앞섰다.


필라델피아는 델라웨어 강과 스쿨길 강이 만나는 곳이다.

델라웨어 강은 미국 대서양 연안을 따라 흐른다.

스쿨길 강은 펜실베니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른다.

다행히 우리 집은 델라웨어 강이 아닌 스쿨길 강이 치수원이다.

그래도 모두 찜찜한 건 한 마음인지 마트마다 " No Water"라고 붙여뒀다.

물을 사재기한 거다.


중국인 엄마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나 이제야 뉴스 봤어! 이런 일이!"




나야 괜찮지만 필라델피아 시내로 출퇴근하는 남편이 문제였다.

매일 싸는 도시락은 이제 생존 도시락이 됐다.

남편은 가방에 도시락과 생수 한 병, 전자레인지로 물을 데일 수 있는 머그컵과 맥심모카골드까지 넣어 일터로 갔다. 평소보다 훨씬 무거운 가방을 "끙" 짊어지고선.


"오늘 교수도 안 왔어." 퇴근한 남편이 말했다.

"왜?"

"아이들 학교가 휴교했대. 사흘간 휴교라나."

"다른 사람들은 다 왔어?"

"어, 그리고 유펜 쪽은 델라웨어 강이랑 상관없데. 여기도 스쿨길 강 물 쓴다네."


다행히 물 사재기는 며칠 가지 않았다.

수요일에 마트에 갔더니 물이 남아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일 인 2묶음 한정이었지만.

사람들의 공포와 패닉이 진정된 것 같았다.


물이 오염되는 생각에 삶은 '생존'이 됐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동안 마실 물을 살 수 없다는 불안감도 느꼈다.


깨끗한 물로 통밀과 플래시드를 넣어 통밀식빵을 만들고

그 식빵으로 도시락을 쌀 수 있는 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오늘도 생수 한 병을 따서 식빵을 만들었다.

오늘의 식빵은 '생존빵'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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