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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01. 2023

난 사실 닭가슴살을 싫어하는데

필라델피아 일상

난 사실 닭가슴살을 싫어하는데,

쫄깃한 닭다리가 좋은데,

세일의 유혹에 넘어갔다.


주말에 코스트코에 갔더니 닭가슴살 한 팩을 사면 5달러를 할인해 준단다.

양도 엄청 많았다.

2킬로는 넘는 닭가슴살이 할인하면 13달러 정도.

닭가슴살을 앞에 들었다 내려놨다 고민하다 카트에 담았다.

"닭가슴살 냉채 해 먹거나, 카레에 넣어먹으면 되니까."

사실 닭가슴살 냉채는 아이들이 싫어하고, 카레에 넣는 고기는 돼지고기가 더 좋은데.


좋아하지도 않는 걸 할인한다고 사면 후회한단건 경험상 알고 있는데.

그런데 왜 닭가슴살을 사버린 걸까.

단 5달러 때문에.


집에 돌아와 닭가슴살을 소분했다.

밑간 한 닭가슴살을 한 번 먹을 분량씩 진공팩에 넣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었다.

두 끼 분량은 냉동실에 넣지 않고 냉장고에 넣었다.


월요일, 남편과 둘째 도시락 반찬은 닭가슴살 간장 조림이었다.

"오늘 반찬 퍽퍽했어. 그런데 다 먹었어." 

학교에 다녀온 둘째가 현관문에서 들어오며 가방도 벗지 않고 말했다.

"다음부터는 닭다리살 사자."

퇴근한 남편도 한마디 했다.


아침에 도시락에 넣고 남은 닭가슴살을 저녁반찬인 카레에 넣었다.

"닭가슴살 카레도 생각보다 괜찮은걸." 저녁을 먹으면서 괜히 한마디 했다.

사실 돼지고기 카레가 더 맛있지만.


아직 냉장고에는 한 끼 분량의 닭가슴살이 남아있었다.

닭다리살이었다면 찜닭을 하거나 닭볶음탕을 할 텐데.

우리 가족은 모두 닭다리 파라서 닭가슴살 요리는 몇 조각 깨작거리기만 할 텐데.

'에라, 모르겠다. 튀기면 다 맛있어.'


닭가슴살에 전분을 묻혀서 튀겼다.

튀기면서 유튜브로 '닭가슴살 요리'를 검색했더니 '유린기' 영상이 나왔다.

소스도 생각보다 간단했다.

설탕, 식초, 간장, 물을 동량으로 넣으면 끝!

마침 집에 파프리카랑 양배추, 양파를 볶다가 소스를 넣으면 된단다.

마침 야채도 집에 다 있었다.


닭고기를 튀기니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손목에 튀고, 주방 바닥에 튀고, 가스레인지에 튀고.

'역시 경험을 무시하면 안 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어쨌거나, 닭을 다 튀겼다.

소스가 없어도 튀기니 맛있었다.

나는 얇게 채 썬 양배추를 깔고 닭가슴살 요리를 얹었다.

"더 맛있어!"

"다들 와서 이것 좀 먹어봐!"

아이들이 코를 벌름거리면서 다가왔다.

"많이 맡아본 냄샌데?"

"엄마는 미국 와서 이제 중화요리사까지 됐다."

"음~"

순식간에 유린기가 사라졌다.


저녁 반찬은 유린기 하나뿐, 사실 밥도 없이 유린기 하나를 네 식구가 나눠먹고

조금 느끼한 속은 신라면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냉동실에는 아직도 진공포장된 닭가슴살이 5팩 남아있다.

남은 닭가슴살은 어쩌지?


할인에 꼬인 덕분에 중화요리까지 섭렵한 거, 좋은 건지 어떤지.

그래도 이제는 아무리 할인해도 닭가슴살은 사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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