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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08. 2023

컨베이어벨트같았던 디즈니월드

필라델피아 일상

“디즈니월드 가고 싶어"

한국에 있을 때는 틈만 나면 에버랜드에 가자고 노래를 부르던 딸이 이제는 디즈니월드에 가고 싶단다.

놀이기구 3분짜리 하나 타는데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줄을 서야 하는 곳이 왜 좋은 걸까?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만 해도 힘든데." 내가 말하자

"그럼 가지 말던지!" 빽 소리를 질렀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당신은 놀이공원 안 좋아했어?” 남편이 물었다.

“당연히 좋아했지”

“애도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나는 연간회원권으로 다녀본 적은 없거든.”




우리 가족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 일 학년일 때 일 년 동안 에버랜드 연간회원권을 사서 매달 방문했다.

연간회원권을 사기 전, 몇 년에 한 번 갈까 했던 놀이공원은 다 큰 나에게도 설레는 곳이었다.

하지만 연간회원이 된 이후로 설렘은 싹 사라졌다.

꿈과 환상의 세계로 가던 입구 같았던 놀이공원은 줄과 기다림의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되었다.


그런데 디즈니월드라니.

4명 하루 입장료는 에버랜드 연간회원권의 두 배.

우리가 방문할 4월 초는 성수기 가격이다.

그래서 입장권은 하루에 거의 백만 원.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루 종일 줄을 서서 놀이기구 5개만 타도 많이 탄 거라고 악명 높은 곳.

가기 전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우리는 숙제처럼 비행기 표와 디즈니월드 입장권을 샀다.

서부여행을 다녀오자마자 1월에.

"3월이나 5월 어때? 학교 빠지고 갈까?" 남편의 물음에

"학교 빠지는 건 절대 안 돼!" 아이들이 절대 싫단다.

그래서 4월 봄방학 기간에 가는 걸로 결정!


미국 초중고등학교는 8월 말부터 6월까지 방학 없이 학년이 이어지는데,

크리스마스 연휴 때 주말 포함 열흘 정도, 4월에 주말포함 열흘 정도 봄방학이라고 쉰다.

우리가 사는 곳은 올해는 4월 초가 봄방학 기간이었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나라, 디즈니월드는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다.

디즈니월드 주차장은 유료다.

디즈니월드 입구에서 가까운 주차장일수록 가격이 비싸다.

제일 저렴한 스탠더드도 25달러나 된다.

아니! 놀이공원 입장료를 그렇게 받았으면 됐지 주차장까지 돈을 받다니!

그리고 디즈니월드 안에 있는 리조트에 투숙해야 30분 일찍 입장할 수 있다.

그런데 리조트는 4인 가족이 이용하기에 좁고 침대 수도 적어보였다.

(물론 돈을 많이 주고 비싼 방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놀이공원에 입장해도 '지니플러스'를 사야 조금은 편하게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

'지니플러스'는 2시간에 한 번 놀이기구 줄을 빨리 탈 수 있게 줄을 서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인기 있는 기구는 이미 매진. 줄을 설 수도 없다.

그래도 지니플러스를 사는 게 좋다. 

4인 가족 하루 백만 원을 들여왔는데 줄만 서다가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리조트 투숙객은 지니플러스로 예약할 수 있는 시간도 빠르다.

디즈니 애니매이션 왕 팬이라면 모든 서비스를 비싼 가격으로 이용하면 된다.



디즈니월드에 도착했더니 공항검색대를 방불케하는 보안검사대가 있었다.

한 명씩 검사대를 통과해야했다.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나도 검사대를 통과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저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직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가방 열어보세요."

가방안에는 점심으로 먹을 호일에 싼 햄버거 4개가 들어있었다.

아마도 호일 때문에 걸린 것 같다.

디즈니월드 내 음식은 비싸고 맛도 없기로 악명높아서 점심도 숙소에서 싸왔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위험한 물건'이 없는 것을 확인한 직원이 디즈니월드 출입을 허락했다.


다음 코스는 입장권과 지문찍기.

아무래도 지문검사는 입장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까봐 하는 것 같다.

들어가는 절차가 조금 피곤하지만 그래도 총기걱정을 안해도 되니 다행이랄까.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니플러스로 롤러코스터를 예약했다. 

이제 '첫번째 놀이기구 예약 시간까지 뭘 할까.'가 고민이었다.

한 시간 반이나 남았다.

이래서 디즈니월드에 가기 전에 다들 공부를 하고 가는구나.

다들 디즈니월드에 오면 '효율적'으로 뽕뽑을 계획을 짠다.

정말 계획적이지 않으면 고생하는 곳이다.

나같이 무계획인 사람은 디즈니월드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오전인데 아이들은 벌써 더위에 지쳐서 흐물흐물거렸다.

'디즈니월드에 놀려고 온 것인가 벌을 서려고 온 것인가.' 

놀이공원 4개 중에 두 군데만 가는 일정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이틀만 고생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예약했던 롤러코스터를 탔다.

나는 눈이 똥그래졌다.

여긴 미국, 역시 컨베이어벨트의 나라인가!

롤러코스터 한 대가 출발하자 바로 기다리던 롤러코스터가 왔다.

트랙 안에 한 대가 아닌 여러 대의 열차가 돌아가는 시스템.

효율성의 극치였다.

열차가 한 대여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데 시간을 다 써버리던 에버랜드와는 달리

기구가 트랙을 다 돌고 사람들이 내리면 그 빈 열차가 승강장으로 가서 사람들을 태우고 그렇게 착착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돌려도 지니플러스가 없으면 2시간씩 줄을 서야 했다.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컨베이어 벨트 안에 문이 수없이 걸려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몬스터들은 그 문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겁주는데 아이들이 '꺅' 소리를 질러야 몬스터 나라 에너지가 충전된다. 어쩌면 디즈니월드도?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좀 이상한 광경이다.

더위에 늘어진 사람들이 착착 도착하는 기구에 타서 3분 정도 '와~'하다가 기구에서 내려 다시 땡볕으로 걸어간다.

그러곤 다음 놀이기구 줄을 서거나,

아니면 그늘진 곳에 털썩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지쳐서 유모차 안에서 늘어져 있다.




어른이고 아이고 오후가 되니 다들 눈이 풀려있었다.

"오늘 즐거운 시간 보냈나요?"

나가는 길에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

피곤한 웃음만 보였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지치셨군요."

직원이 통쾌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 더위에 찌들어 있다가 슬러시를 먹을 때,

땡볕에 줄을 서 있다가 줄이 줄어서 그늘 안으로 들어갔을 때,

놀이기구를 타던 짧은 시간

그때만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꿈과 환상의 공간이겠지만 나에게는 자본주의의 공간이었던 디즈니월드.

"어른이 되면 다시 와야지." 딸이 말했다.

내년이 아니라 어른이 되면 온다고?

그래, 참 다행이다.

숙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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