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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11. 2023

불꽃놀이-디즈니월드에서 꼭 봐야 할 단 한 가지

필라델피아 일상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정말 다행이야, 그지?”

“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대답했다.

“그지?” 딸을 보며 물었다.

“음, 어.” 딸은 먼 산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디즈니월드는 매직킹덤, 애니멀킹덤, 엡콧, 할리우드 스튜디오 이렇게 네 개의 놀이공원이 있다.

4박 5일간의 플로리다 여행 중 이틀은 디즈니월드를 가기로 했다.

첫날은 애니멀킹덤, 둘째 날은 매직킹덤. 나머지 두 개 놀이공원은 과감히 포기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아이들 둘 다 디즈니 캐릭터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나와 아들은 놀이공원 무능력자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에너지가 쪽 빠진다.      



 

우리가 플로리다 올랜도에 갔을 때는 4월 초였다. 

평년 기후로는 5월 말만큼 더운 날씨였단다. 낮에 30도가 넘는 날씨. 

플로리다는 아열대 기후이지만 4월 초부터 30도를 웃돌진 않는다고 한다. 

올해 높은 기온은 기상이변 때문인 것 같다나.     


원래 비가 오락가락한다더니 비도 오지 않는 쨍한 맑은 날씨였다.

맑은 건 좋은데, 그렇게 구름 한 점 없이 맑을 필요까진 없을 텐데. 

매일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맑았다.

한 시간에 한 번 슬러시를 찾아 헤맬 만큼.

챙겨간 생수 세 통을 오전에 다 마셔버릴 만큼.



‘놀이가 아니라 고행이다.’


예약해 둔 놀이기구를 타러 가거나, 예약한 놀이기구를 타기까지 시간이 비어 줄을 서려고 땡볕에서 기다릴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놀이기구를 9개 탔으니 3분 곱하기 9는 27분. 

시원한 상영관에서 3D 영상을 봤던 30분. 

땡볕을 걸어 다니다 줄을 서서 산 슬러시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3분.

합하면 한 시간이다. 

하루에 열 시간씩 놀이공원 안에 있었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건 한 시간뿐인가!


우리는 제일 더운 2시부터 5시까지는 숙소에 돌아가 재충전을 하고 오는 것도 좋다던 디즈니월드 선배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가 디즈니월드 안에 있는 리조트가 아니라 밖에 있는 숙소를 예약해서였다. 

그래서 숙소를 오가는 일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다행히 25불 주차요금을 다시 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다시 줄줄이 비엔나 기차를 타고 모노레일을 탄 후 입장권 검사대에서 입장권을 찍고, 지문검사와 짐 검사를 하는 게 효율적인 일일까 의문이었다.

나는 저녁 7시쯤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저녁 5시 반에 우리 넷은 녹초가 됐다.

더 이상 걷고 싶은 마음도,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제 리조트로 돌아갈까?” 내가 말했다.

“그래도 불꽃놀이는 봐야지. 너 친구가 디즈니에서 불꽃놀이 안 보고 왔다고 하면 진심으로 화낸다며?” 남편이 말했다.

“꼭 봐야 할까?” 나는 그늘진 길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그래도 매직킹덤에 왔으면 불꽃놀이는 봐야지.” 남편이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꼭 그래야 할까?” 이제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났다. 목소리도 갈라졌다.

“그럼 숙소에 돌아가서 좀 쉬다가 저녁 먹고 불꽃놀이 보고 싶은 사람만 다시 오는 거 어때?”    


하필이면 얼마 전까지 8시에 진행되는 불꽃놀이가 9시로 미뤄졌단다.

해가 길어져서인 것 같았다.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9시까지 땅바닥에 죽치고 있을 힘은 없었다.

“리조트로 돌아 가자!” 가족을 재촉해 디즈니월드를 탈출했다.


우리는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불꽃놀이 보러 가는 거지?" 남편이 말했다.

"그러든지." 대충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리조트를 나섰다.


남편이 불꽃놀이에 열의를 보여 다행이었다.

불꽃놀이를 보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거다. 

사실, 안 봤으면 후회할 일도 없었겠지만.    


주황색으로 펑. 펑펑. 펑펑펑

무지개색으로 펑펑펑 펑펑 펑펑

펑 터지고 다시 펑 연달아 터지는 불꽃.

펑펑펑 세 번 연달아 터지는 불꽃.

민들레처럼 퍼지는 불꽃.

방울꽃처럼 길쭉한 불꽃.

디즈니 만화가 시작될 때 늘 등장하는 성을 배경으로 불꽃을 18분 동안 쏘아 올렸다.     


사람들은 서로 불꽃을 보려고 아이들을 무등 태우고, 좋은 자리로 옮기고.

인파로 메워진 거리에서 상점들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전등으로 치장하고,

하늘로 레이저를 쏘고 불꽃도 쉬지 않고 쏘아 올렸다.     


'와! 저 불꽃 얼마나치나 쏜 거냐! 몇 억은 쏘아 올린 듯! 하긴 일인당 30만 원 정도씩 뜯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가!'

철저한 자본주의였던 디즈니월드라 그런지 나도 돈생각을 하게 됐네!




불꽃놀이가 제일 좋았던 건 선선했던 저녁바람 때문이었을 거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서 즐거움이 보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고행 같았던 디즈니월드 마지막 날이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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