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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20. 2023

소금 2g - 레몬파운드케이크

필라델피아 생활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amonade.

레몬이 영어로는 안 좋은 뜻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레몬은 너무 셔서 레몬만 먹기는 힘들어서 시련이나 힘든 일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 시련을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만들라는 말이다.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드는 일은 인내보다는 창의성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나에게 레몬은 늘 옳다.

내 취향은 늘 레몬이다. 

어릴 적부터 새콤달콤, 실비아, 아이셔를 입에 달고 살던 어린이는 커서 레몬 덕후가 됐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 한 켠에는 항상 레몬이 있다.

그리고 레몬청이 담긴 큰 유리병 하나도. 


레몬이 똑 떨어지면 이상하게 레몬이 들어간 케이크, 레몬이 들어간 스콘, 레몬 쿠키가 생각난다. 

그래서 레몬이 떨어지기 무섭게 레몬을 채운다.

넉넉하게 한 망씩 산다.


어제 갔던 알디 레몬은 특히 실했다.

레몬을 짜면 레몬즙이 40그램 정도 나오는데 이 레몬은 60그램이 넘게 나왔으니.


레몬 소비를 핑계로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유튜버 하다 앳홈 레시피를 참고했다. 리츠칼튼 호텔 레시피란다. 

리츠칼튼에서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먹어본 적은 없어서 비교 불가능 하겠지만, 호텔 레시피라니 왠지 신뢰가 갔다.

일단 버터 170그램을 계량해서 국그릇에 담아두고, 계란도 세 개 꺼내 실온에 뒀다.

요즘같이 낮에 섭씨 20도까지 올라가는 날씨에는 한 시간 정도 실온에 두면 버터가 풀리는 것 같다.

이때가 새벽 6시.


큰 아이를 7시 10분에 학교로 보내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핸드믹서로 버터를 마요네즈가 될 때까지 휘핑하고 설탕을 넣어 계속 휘핑.

5분 정도 휘핑하다 보니 믹서를 든 팔이 아파왔다.

팔에 근육이 없는 사람은 케이크도 못 만들겠다 싶었다. 어째 운동할 때 보다 팔이 더 아팠다.

'맛있는 케이크를 위해 조금만 더 참자.' 하며 계란을 하나씩 넣고 계속 휘핑.

이제 너무 팔이 아파 왼손으로 핸드믹서를 옮겨 들고 휘핑했다.

반죽이 사방으로 튀고 난리도 아니어서 다시 오른손으로. 

도대체 왜 또 일을 벌인 걸까. 

매일 이렇게 일을 벌이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밀가루랑 우유를 넣고 휘핑했다.

이제 휘핑 끝!

반죽을 틀에 담고 구울 시간!


반죽을 17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으려는데 번뜩 생각났다.


"맞다! 소금!"


어쩌지? 다 된 반죽에 소금을 넣어서 대충 섞을까?

그냥 소금을 포기할까?


오븐 앞에서 몇 초 고민하다 소금을 포기했다.


45분 뒤, 케이크가 나오긴 했는데. 

케이크 같은데 뭔가 덜 부푼 케이크네?

더 뽀송뽀송 해야 하는데.

좀 더 부풀어야 하는데.


소금 탓은 아니고 내가 반죽을 잘 못한 탓인 것 같긴 하지만 왠지 억울했다.

무서운 핸드믹서를 십분 정도 들고 있느라 팔이 얼마나 아팠는데.

싱크대에는 버터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국그릇과, 휘핑기, 스텐볼, 계랑 숟가락.

설거지가 얼마나 쌓였는데.

하다 앳홈의 결과물을 바랐지만 현실은 애매한 파운드케이크라니.


모양도 모양이지만 소금 2g이 빠지니 맛도 애매했다.

전에도 같은 레시피로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단맛도 신맛도 애매했다.

너무 존재감 없는, 겨우 몇 꼬집의 소금이었는데.

뭔가 억울해서 소금을 넣고 다시 만들까 생각했다.

그런데 실온 버터랑 계란이 없네. 한 시간 기다릴 시간도 없고.

다행인건가?


다행히 이틀 만에 싹 먹었지만, 맛도 모양도 남에게 권하기는 애매한 케이크였다.

언제쯤 리츠칼튼 레시피다운 케이크를 만들게 될지.

냉장고 속 레몬이 기다리고 있으니 다음주에 다시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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