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일상
"미국 갔다 오면 5킬로 쪄있겠네."
미국에 가기 전 각자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다.
미국에 가는 것과 살이 찌는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나는 늘 44~46kg인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15년 전 중국에서 2년 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음식은 향신료 향만 극복하면 신세계다.
땅이 넓어서인지 식재료도 다양했다.
또 내가 살던 상하이는 온갖 나라 음식점이 다 있었다.
인도, 포르투갈, 태국음식 등등. 미각의 새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중국 서민음식을 가장 좋아했다.
가장 즐겨 먹던 중국식 교자는 당시 10개 한 판에 50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체중은 항상 45킬로그램 정도였다.
미국에 온 지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아직 체중계를 사지 않아 몸무게는 모르지만 대충 옷이 다 들어간다.
딱 맞는, 신축성이 거의 없는 코르덴 바지도 들어간다.
남편은 "맨날 장을 비워대니 살이 안 찌지."라고 한다.
일리는 있다.
나는 항상 일어나서 물 한잔만 마셔도 화장실에 가니까.
"넌 그냥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야."
남편이 늘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 음식을 조절하고 있다.
1. 나는 음료는 먹지 않는다.
원래 음료는 커피 외에는 즐기지 않는 편이다.
2. 나는 운동을 즐기는 편이다. 운동을 일상화 한지 십 년이 넘었다.
매일 둘째까지 학교에 가자마자 30분 이상 운동을 한다.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그래서 아마 기초대사량도 높은 편일 것 같다.
3. 아침을 많이 먹지 않는다.
십 년째 아침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운동을 하려면 속을 비워두는 편이 좋다.
대신 저녁은 양껏 먹는 편이다.
나는 프로 취미러다.
남편이 붙여준 별명인데, 두 가지 취미를 십 년 동안 지속해서이기도 하다.
취미 중 하나는 운동이다.
십 년 전 허리가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갔다.
둘째가 두 돌 때쯤 되었을 때였다.
두 살 터울의 아이들을 안고 업고 키우다 보니 허리는 항상 아팠다.
그러다 기침을 콜록했는데, 그대로 주저앉았다.
식은땀이 났고 움직일 수 없었다.
남편이 운전해서 병원으로 가려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날카롭게 아프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 할 수 없이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갔다.
삼일 동안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고 누워만 있다가 화장실은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퇴원했다.
퇴원한 후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냈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거의 누워있었다.
통증이 없어지면 운동을 해서 근육을 기르라는 의사의 말대로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고 한 달이 지난 후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운동할 곳이 있는지 찾아봤다.
한 요가원이 가장 가까웠다는 이유로 내가 시작한 운동은 요가가 됐다.
요가를 꽤나 오래 했다. 6년 가까이.
요가 자격증을 따려고 했지만 강사반 시간이 내가 원하는 시간이 아니어서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땄다.
토, 일 8시간씩 6개월간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매일 4시간씩 필라테스 센터가 비어있는 오전시간에 가서 운동을 했다.
낯선 근육이름도 열심히 외웠다.
취미 중 하나였던 운동이 파트타임 직업이 됐다.
물론 다른 직업도 있다.
나는 '프로' 취미러니까.
여긴 미국.
내 회원은 '나'다.
기구는 없지만 매트 위에서 매일 오전 땀을 흘린다.
매일 땀 흘리는 시간은 정직하다.
영어도 아이들도 뜻대로 되지 않고 내가 어디쯤 있는 건지 알기 힘들지만 매일의 운동은 그만큼의 성취감을 준다.
매일 약간의 근육통이 있다.
그 근육통이 고맙다. 내가 제대로 운동하고 있구나 알게해주니까.
10년 전에는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내가 어떤 근육을 느껴야 하는지 몰랐지만,
이제 세심하게 근육이 느껴진다.
10년 전 한 다리로 서서 상체와 다른 다리를 바닥과 평행하게 해서 팔다리를 앞 뒤로 멀어지게 늘이며 균형을 잡는 자세를 할 때면 바로 쿵 떨어지던 내가, 이제는 1분은 버텨낸다.
그 자세였을 때 버티던 다리의 정강이만 아팠던 내가 이제는 버티는 다리 엉덩이 근육을 느낀다.
프로취미러인 덕분에 미국에 와서 햄버거를 자주 먹어도 살이 찌지 않습니다!
오늘도 햄버거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