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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21. 2023

아무튼, 식빵

필라델피아 생활

아무튼, 나는 식빵을 굽는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아침에 일어나 눈을 제대로 뜨지도 않고 밥을 먹어도 술술 넘어갔는데 이제는 목이 막힌다. 삼십 대 중반부터는 아침밥이 부담스럽다. 아침은 대체로 사과 몇 조각과 커피, 아니면 식빵 한 조각이다.




평생 아침마다 먹어온 밥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지다니.

원래 시리얼이나 빵을 먹어온 것도 아닌데.


친정과 시댁이 차로 5시간 거리에 있던 나는 양가 도움 없이 아이를 키웠다.

둘째를 키울 때는 힘이 부쳐 음식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뼈만 남아서 몸무게가 43킬로까지 빠졌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는 걸 그 시절 절실하게 체감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푸는 줄 알았는데 너무 힘이 드니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만약 아침을 먹는다면 밥이었다. 조금만 먹을지언정.


그런데 30대 중반부터 갑자기 빵이라니. 

사실 아침밥이 부담스러워진 것은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새벽반은 6시부터라 아이들이 유치원생이던 내가 갈 수 있는 반이 아니었고,

내가 가능했던 시간 중 가장 빠른 시간은 9시 반이었다.


처음 요가원에 가던 날이 떠오른다. 

어떤 옷을 사야 할지 몰라 트레이닝복과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어디 앉아야 할지 몰라 입구 쪽 뒷 줄에 요가매트를 폈다.

허리가 아파 'ㄴ'으로 앉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요가원에 있는 사람들은 보지 않으려 해도 눈이 저절로 갔다.

현란한 요가복을 빼입고 매트를 들고 들어오는 아주머니, 다리를 쫙 찢으며 스트레칭하는 사람,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고수.

'나는 잘못된 곳에 발을 디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3개월을 선불로 결제한 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한 시간의 수련시간동안 제대로 따라 했던 동작도 없었다.

그런데 뭘 했다고 아침에 먹은 음식들이 식도를 타고 거북하게 올라올 것만 같았다.

아침을 먹고 한 시간은 지나서 운동하는 게 좋다는데, 아침을 먹은지는 한 시간도 넘었는데.

가능하면 먹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았다.

아니면 빨리 소화되는 음식을 조금만 먹던지.


결제했던 3개월만 다니려고 했다. 너무 지겨웠다.

하지만 요가를 쉬니 또 허리가 아팠다.

3개월에서 1년까지는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지겹기도 했던 것 같다.

지겨웠던 1년을 어떻게 채웠냐면, 안 하면 허리가 아프니까. 

아프지 않으려고 버티며 1년을 채웠다.

그 이후로는 운동이 습관이 됐다.


'밥' 

점심과 저녁에 먹기에는 든든하고 정말 고마운 밥.

하지만 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든든해서 피하는 음식이 됐다.

'밥' 자리는 식빵 한 조각이 대신한다.

아니면 우유를 넣은 커피랑 사과 한 조각.


나는 먹는 걸 꽤나 좋아한다.  

하지만 오전에는 배가 고픈 상태를 즐기는 편이다.

공복 운동이 해롭다던가 공복 운동이 좋다던가 하는 뉴스 기사들을 가끔 보게 된다.

자기 몸을 가장 잘 느끼는 건 자기가 아닐까.

어쨌든 밥을 먹고 운동을 하면 음식이 넘어오려고 하니, 먹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나는 내가 먹으려고 식빵을 굽는다.

대체로 통밀을 30프로, 기분에 따라 건포도나 플래시드나 깨를 넣을 때도 있다.

오늘은 백밀만 100 넣고 식빵을 구웠다.

역시, 백밀 100프로의 힘은 대단했다.

저렇게 부풀다니.

통밀 30프로 빵은 외면하던 가족들이 굽자마자 빵에 달려들었다.


"저 빵, 내 아침인데. 다 먹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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