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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필라델피아 연수 준비

by 니나

남편이 직장을 옮기면서 타국으로 일 이년 연수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시기는 모든 상황이 적절할 때. 그때가 벌써 5년도 더 전의 일이다. 나는 원해 아이들이 언어는 천천히 배워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 하는 3학년에 배워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배짱 좋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큰 아이가 7살이었을 때 어느 날 남편과 남편 해외연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애들이 5학년쯤 가면 시기가 좋을까? 언제가 좋을까? 영국으로 갈까 미국이 좋을까?' 이런 종류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아이가 울면서 잠에서 깼다. 너무 울어서 안 좋은 꿈이라도 꾼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자기는 미국에 가는 게 너무 싫어서 그런다고 한다.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했더니 "나는 미국에 가도 학교도 안 다닐 거고 미국 가기도 싫어." 하며 울기만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한 달 후에야 말해줬다. "엄마, 난 영어를 못하잖아. 그래서 미국에 가기 싫어." 그 순간 결심했다. 그럼 함께 영어공부를 하자!


아이가 나보다 먼저 낳아 키운 친구나 언니들에게 물었더니 책을 읽으며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가뜩이나 그림책 덕후인 나는 그림책을 원서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겠다며 아이와 영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는 처음에는 영어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엄청 거부했다. 친구의 권유에 그 비싼 옥스퍼드 리딩트리도 샀다! (160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 책 덕을 정말 많이 봤다. 초등 저학년 시절을 영국에서 보낸 친구가 영국 학교에서도 이 책으로 공부했다고 했다.)


영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베스트 영어 dvd를 뒤졌다. 일단 유튜브로 반응을 보고 구매할 생각이었다. 다들 극찬하던 맥스 앤 루비는 우리 아이들에겐 실패였다. 페파 피그는 좋아했다. 하지만 원래 집에 TV도 없고 영상을 딱히 즐기지 않던 아이라 5분짜리 영상 한 편이면 나 이제 그만 봐도 되지? 하면서 도망가기 일쑤 었다. 그렇게 5분이던 영상을 10분으로 늘이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30분이 되는데 3달이 걸렸다.


그렇게 3달을 지속하자 나름 아이들도 좋아하는 책이 생겼다. 아직 어린 나이였을까. 음원이 재미있는 monkey and me, Ten fat sausage, Five little monkeys 시리즈, Owl babies를 듣고 또 듣기도 했다. 좋아하는 책이 생기니 다음에는 지속하기가 조금 수월해졌다. Ten fat sausage는 끊임없이 틀어달라고 해서 귀에 딱지 생길 만큼 듣고 또 듣고 했던 책이었다.


그때는 큰 아이가 8살 작은 아이는 6살이었다. 지금은 6학년, 4학년이 되니 우리는 5년을 꽉 채워서 원서를 어떻게든 읽고 있다. 처음에는 언제 챕터 북도 읽는가 했는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챕터 북도 읽고 있다. Horrid Henry에게 무한한 감사를! Horrid Henry는 제목만큼이나 개구쟁이인 아이다. 하는 짓을 보면 정말 나쁘고 밉기 그지없는데, 미워만은 할 수 없다. 매일 나쁜 짓을 하다가도 동생을 구해주기도 하다. 그러다 또 장난을 치긴 하지만. 그 책을 아이들은 6개월을 반복해서 읽었다.

너덜너덜한 호리드헨리 책



그리고 로알드 달에게도 감사를! 로알드 달은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는 작가다. 나도 어릴 적에 지금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번역된, 그때는 메르헨 전집에 있던 <초콜릿 공장의 비밀>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는데 역시 아이들도 로알드 달의 모든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그러고 보니 Horrid Henry도 로알드 달도 뻔뻔하고 대담한 이야기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던 걸까?


로알드 달은 찐이지.jpg 로알드 달은 찐이지!


지금은 정말 미국 연수를 준비하고 있다. 올 8월에 미국으로 가려고 한다. 그때 큰 아이는 미국 7학년, 작은 아이는 4학년에다. 큰 아이는 타고나게 언어를 싫어하는 기질이라 이만큼 원서를 읽어 준 것 만으로 감사하다. 나는 원서를 읽으며 즐거웠지만 아이들은 가끔은 짜증도 나고 가끔은 재미도 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래도 엄마표 원서 읽기 영어 공부의 단점을 돌이켜 보면 쓰기는 빵점에 스피킹은 해본 적도 없는 것.

미국에서 수업은 따라갈 수는 있을까 적잖이 걱정이 된다.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때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를 읽는다. 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존감이 넘치고 교만해져서 목이 하늘을 찌를 듯 길어졌던 피튜니아를 보면서 나의 모습도 반성하게 된다. 책 욕심은 가득해 책상 가득 책은 널브러져 있지만 정작 제대로 읽고 있는 책은 있는가? 매일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그렇다 핑계를 대 보지만 그럴 거면 책을 애초에 쌓아두질 말지. 생각도 한다. 무언가를 배울 때 내가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알면 그때가 제대로 아는 거라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겨우 이 정도 영어 공부해서 미국 학교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는 아마도 올해 말이 돼야 알 수 있겠지. 엄마의 사심 가득한 원서 그림책 읽기에 동참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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