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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추억을 싣고

<천둥 케이크> 페트리샤 폴라코

by 니나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애 음식이 있는가? 나에게는 역시 떡볶이다. 매콤 달콤, 짭짜름한 떡볶이. 촉촉하게 간이 밴 어묵도 맛있고, 가끔 라면사리도 넣어먹는 라볶이도 꿀맛이다. 가끔 평소보다 매운 고추장을 넣었을 때는 ‘씁~ 씁~’ 하고 부채질을 해가며 쿨피스랑 먹는다. 떡볶이는 나를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 만나 떡볶이로 데려간다. 주인이 교회를 다니던 사람이었나? ‘만나’라니. 출애굽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만 40년을 먹고살았듯, 만나 떡볶이만 먹으라는 것인가?






어쨌든 그때 친구들 10명이 가도 배부르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먹을 수 있었던 만나 떡볶이는 우리의 만나이긴 했다. 내가 만든 떡볶이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만나 떡볶이를 지금 먹을 수 있다면! 구포 시장 입구에 있던 만나 떡볶이는 이제 없어졌다. 차라리 없어진 것이 나을까? “그때 그 맛이 아니야.”하고 실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추억의 맛으로 간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페트리샤 폴라코의 책을 읽으면 그녀의 전 생애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천둥 케이크>에서 나는 페트리샤의 할머니를 만난다. 페트리샤의 할머니와 엄마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 가족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옷에서는 러시아 색채가 가득하다. 천둥을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천둥과 번개의 거리를 어림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폭풍이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진짜 천둥 케이크’를 함께 굽자고 한다. 그렇게 폭풍이 오기 전 케이크를 굽는 미션이 시작된다. 요즘이야 냉장고와 펜트리에서 찾지만 페트리샤 폴라코는 할머니와 닭장에 가서 달걀을 가져오고, 젖소의 젖을 짜고, 오솔길을 따라 광에 가서 설탕과 밀가루를 가져온다. 그리고 마지막 특별 재료 토마토 세 개와 딸기 조금을 따서 집 안으로 돌아온다. 오솔길에서도 토마토와 딸기를 딸 때도 천둥은 계속 내리쳤지만 처음처럼 침대 아래에 숨어버릴 만큼의 두려움은 아니었다.



둘은 그렇게 찾아낸 재료들로 케이크 반죽을 만든다. 먼저 버터와 초콜릿을 녹인다. 거부할 수 없는 향. 아마 바닥의 남은 초콜릿을 손가락으로 긁어먹지 않았을까. 반죽을 완성해 오븐에 넣는다. 케이크가 구워지는 향은 온 집에 가득했겠지. 그 향을 맡으며 식탁보를 깔며 포크와 숟가락을 놓는다. 주방 선반 위 러시아식 차 끓이는 도구 사모바르 위 주전자를 보니 차도 준비 중이다. 할머니와 페트리샤 둘이니 찻잔도 두 개. 주전자와 찻잔이 세트다. 할머니가 페트리샤를 정중히 어른을 대하듯 좋은 것들로 대접한다. 천둥과 번개를 이겨낸 마음에 박수를 보내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천둥이 내리치기 직전 둘은 케이크 위에 마지막 딸기를 올린다. 미션 대성공.



할머니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케이크를 구웠기에 시간을 그렇게 척척 계산해서 딱 맞는 시간에 구워낼 수 있었을까. 페트리샤가 올 때마다 딸과 아들을 위해, 찾아오는 이웃을 위해 그동안 구웠을 케이크들을 떠올려본다. 사실 이 천둥 케이크는 페트리샤가 가장 좋아했던 케이크는 아니었을까?



떡볶이를 좋아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다행히 떡볶이를 좋아하는 10대가 되었다. 아주 어릴 때는 기름에 구운 떡볶이를 좋아했고,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먹던 궁중떡볶이를 좋아했다. 이제는 매콤하고 달콤한 고추장 떡볶이도 즐기는 어린이가 되었다. “오늘 점심은 떡볶이 어때?” 하면 아이들의 대답은 늘 “좋아!”다. 라면도 넣어 라볶이를 먹을 때는 치열한 면 쟁탈전이 벌어진다. 네가 면을 더 많이 먹었다는 둥 아니라는 둥, 얼마 남지 않은 떡은 어떻게 공평하게 나눌지 치열한 설전이 오고 간다. 이런 게 떡볶이 먹는 재미일까.






페트리샤의 할머니는 그녀가 6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음식은 그런 것일까. 어떤 경험보다 몸이 기억하는 것. 그날의 날씨, 음식이 익어가는 냄새와 달그락 그릇 소리, 그날 함께 나눴던 대화들이, 그날의 감정이 덩어리로 밀려온다. 그래서 어떤 날 비슷한 날씨에 비슷한 소리와 냄새에 잠시 추억에 젖어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 만나 떡볶이를 생각하면서 15살의 나로 돌아간다. 늘 시키는 떡볶이, 라볶이, 쫄면. 어떤 때는 5명, 어떤 때는 7명, 10명이 가도 늘 넉넉했던 공간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신없이 깔깔거리든 기억. 가던 길에 어떤 남자애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 일부러 말 걸었던 기억들. 떡볶이 먹을 때는 절대 빠지지 않았던 멤버 몇몇. 지금 아이들과 함께 먹는 떡볶이는 나에게 또 어떤 추억을 남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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