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의 정원>을 읽으며
굼벵책방에 갔다. 그녀의 별명은 ‘굼벵’인데 책방은 역시 그녀와도 별명과도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큰 창 너머로 보이는 눈 덮인 산과 들판은 고요했고, 허공의 구름조차 느림이 허락된 듯 천천히 흘렀다.
그녀는 아버지의 승마장 안에 책방을 열었다. 내가 도착한 오후 다섯 시 즈음엔 승마장에 있는 말들이 마구간 밖의 울타리 안으로 나와 있었다. 그때가 말들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인지 건초를 실은 트랙터는 일 이미터 간격으로 트랙터를 멈춰 섰고 그때마다 한 아저씨가 내려서 말들에게 건초를 주었다. 책방지기 선생님의 아버지일까?
느리다고 굼벵이란 별명 붙었다고 그녀는 서평단 모임에서 가끔 말했다. 그녀가 운영하는 굼벵책방에 가니 나도 왠지 느리게 걷기 되었다. 걸으면서 ‘내가 언제 느려 본 적이 있나?’ 생각해봤다. ‘발 빠른 말들이 있는 승마장 옆에 있는 한없이 느린 굼벵이라 이름 붙은 공간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영문도 모르게 웃는 나를 남편은 또 저러네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고, 아이들은 왜? 뭐가 웃긴데? 꼬치꼬치 캐물었다.
시간은 참 이상하다.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 광고를 틀어줄 때는 그렇게 한없이 길었던 시간이 그 영화가 재미있을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잠들지 못해 침대에 파묻혀 있을 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 고단한 날에는 눈을 감았다 뜨면 시간이 훅 멀리뛰기해버려 금세 아침이다. 어린 날에는 그렇게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지금은 하루가, 한 달, 일 년이 돌아서면 지나가 버린다. 정신없는 일상에 쉽게 함몰되곤 하는 나에게 그곳은 일상에서 흐르는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그녀와 대면해서 만난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그림책 서평단을 하며 글로 먼저 만났다. 타지에서 원주로 이사 온 나는 원주에 친척도 친구도 없었다. 큰 아이가 유치원 다녔을 때만 해도 나의 인간관계는 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들이 전부였다. 아이가 좀 더 자란 후에는 그림책을 공부하며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처음으로 서평단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2주에 한 번씩 서평을 써서 줌에서 만났다. 저녁 8시, 일을 마친 고단한 몸으로 저녁식사를 마쳐 반쯤 감긴 눈으로. 어떤 날은 옆에 맥주 한 캔을 두고.
그때까지 누군가를 글로 만나는 건 어떤 작가의 작품을 혼자 읽고 팬이 되곤 했던 일방향적 관계가 전부였다. 사실 서평단을 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글을 써본 적은 대학교 논술 시험 이후로는 없었고, 지금까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냥 서평을 쓰고 싶으면 쓰고 일기를 쓰고 싶으면 쓰면 될 일인데 왠지 나는 독자이기만 하고 뭔가를 쓴다는 것은 못하겠지 생각해왔다. 그래서 누군가와 대면해 만나기 전에 글부터 공유하며 알게 되는 관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말로 하기 힘든 내면의 이야기와 자신의 소중했던 존재와의 이별, 소중한 추억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하게 되게 되었다. 나이가 어렸을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와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서평 덕분에 서로의 슬픔과 용기와, 도전과, 취향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녀의 책방은 연천에 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연천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북한이 가깝다는 것뿐이다. 연천이 어디 있는지 검색해보았다. 개성보다 더 북쪽이다. 옆으로는 포천과 파주가 접해있다. 그래 파주 임진강은 가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옆이 연천이었다는 사실을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3시간 거리다. 당일 여행은 힘들 것 같아 숙소를 예약하고 연천에 있는 여행지를 검색해보았다. 한탄 세계 지질공원, 재인폭포, 승마공원.
연천 숙소를 예약하고 굼벵책방 오픈 기념 선물을 고르면서 느림 하면 떠오르는 그림책도 골라봤다. 마땅히 생각나지 않아 책장 앞에 섰다. 그러다 눈길이 멈춘 그림책은 바로 <리디아의 정원>이다. 이 그림책은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 시기가 배경이다. 리디아는 아빠가 실직하게 되자 무뚝뚝한 외삼촌 빵집에 살게 된다. 그곳에서 리디아는 고향에서처럼 꽃을 가꾸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고 외삼촌을 도와 빵 만드는 법도 배운다. 리디아가 주는 온기 덕인지 무뚝뚝하기만 했던 외삼촌도 리디아가 떠날 때는 진심으로 섭섭해하고 따뜻하게 포옹도 해줄 수 있는 온기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성실한 온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읽히던 책을 이번에는 ‘느림’으로 읽었다. 이 책의 글이 편지 형식이기 때문이다. 리디아가 엄마, 아빠, 할머니, 외삼촌에게 쓰는 편지. 작년 말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손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야지.’ 했다. 언제부터인가 손편지를 쓰지 않는다. 연말이면 남편에게 편지를 쓰곤 했는데 그것도 십 년도 더 전의 일인 것 같다. 카톡이 보편화되면서 카톡으로 편하고 빠르게 송년인사와 새해인사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쓰고 싶었다. 손으로 글을 쓰고,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고, 편지를 부치는 이 시간을, 그리고 받는 사람에게 가기까지의 이틀이나 삼일 동안 편지가 어디쯤 있을까 상상하며 느리고 즐거운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주 즐거웠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편지를 받은 내 친구는 기뻐하며 전화를 했다. 우표를 붙여 우편함에 들어있는 편지를 받은 적이 기억나지 않는 옛날이라고.
연천에 다녀와 굼벵책방지기에게 카톡을 했다. ‘선생님의 느림 그림책은 뭔지 궁금해요.’
‘카톡!’ 소리와 함께 아주 빠른 답이 왔다. <부엉이와 보름달> 서평을 쓴 자신의 블로그 링크를 보내주었다. 한 자 한 자 눌러쓴 글이었다. 느리게 쓴 글을 빠르게 받아 읽을 수 있는 것도 참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