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
“성숙이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성장해서 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죽고 어른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살아남아 어른이 되는 것이다. - 에슐러 르 권 《밤의 언어》
1928년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노는 대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생물 선생님의 책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는 자기 안의 어린이를 끄집어내 머릿속에 숨어 있는 소리, 감정, 이미지들을 수채물감과 잉크로 끝없이 낙서하듯 그렸다고 한다. 모리스 샌닥이다. 나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모리스 샌닥을 처음 만났다. 수채 위에 거친 잉크선으로 그린 그림에서 원제 “where the wild things are”의 야생성이 생생히 느껴진다.
2011년 교보문고에서 이 책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책표지를 빛내던 황금빛 칼데콧 메달에 홀린 듯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다. 아이보다 내가 더 몰입해서 읽었다. 책을 덮으며 해방감과 통쾌함, 안도감을 느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맥스는 하얀 늑대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고 금지된 장난을 친다. 엄마가 맥스에게“이 괴물 딱지 같은 녀석” 소리 지르자 맥스는“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하고 도리어 크게 소리친다. 엄마가 저녁밥도 안 주고 방에 가둔 그날 밤, 맥스의 방에선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한다. 맥스는 배를 타고 괴물 나라로 항해한다. 괴물들의 왕이 된 맥스가 괴물 소동을 벌이는 세 장면은 텍스트 없이 그림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그 장면들에서 축축한 숲 냄새가 난다. 맥스와 괴물이 달을 보며 부르는 노랫소리와 흥겨운 리듬이 들려온다. 금지된 장난을 마음껏 하는 해방감이 느껴지고 맥스가 올라탄 괴물의 털 감촉도 느껴진다. 한참 괴물 소동을 벌이던 맥스는 이제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그리워진다. 맥스는 가지 말라고 울부짖는 괴물들을 뒤로하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맥스는 그제서야 늑대 옷 머리 모자를 벗는다.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완성하기까지 모리스 샌닥은 수많은 더미북을 만들었다. 맥스가 포크를 들고 강아지를 쫓는 장면의 초기 스케치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손으로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이었다. 샌닥은 결핍이 없다면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가는 동력과 집으로 돌아올 동력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려면 결핍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결핍이 있다. 또 그 결핍을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내 방법은 엄마가 사주신 메르헨 전집을 읽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엄마의 가게에 붙어 있는 셋방이었다. 가게를 하는 집이라 늘 온갖 물건을 팔려는 상인이며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중이 드나들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더니 쉰다섯 권이나 되는 양장책이 좁은 방 텔레비전 받침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메르헨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엄마가 머리를 묶어줄 때, 속상할 때, 그냥 심심할 때 나는 옆에 메르헨을 쌓아두고 읽었다. 때로는 처음부터, 때로는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책을 읽으며 나는 마녀도 산적도 물요정도 됐다. 때론 외계인을 만나기도 했다. 먹어본 적도 없는 간유는 세상에서 가장 먹기 싫은 음식이 되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날 때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아니면 그냥 따분하고 심심할 때, 나는 메르헨 전집 기대어 판타지 세계로 갔다.
대학생 시절 방학에 본가에 갔더니 메르헨이 보이지 않았다.“엄마 메르헨 어디 갔어?”“상백이 줬지. 고모가 애들 읽힐 책 달라고 와서 줬어.”“나한테 묻지도 않고 주는 게 어디 있어.”눈물이 찔끔 났었다. 얼마 전부터 메르헨을 한 권 한 권 다시 모으고 있다. 한 권씩 구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내가“《꼬마 물 요정》 백 번도 넘게 읽었을걸. 방학 때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집 앞 냇가에 진짜 꼬마 물 요정이 있는지 살펴봤었다니까. 혹시 모르지 어딘가에는 있을 지도.”하면 큰 아이는“엄마, 13층 나무집 읽어 봐.”, 둘째는“토드 선장이 최고거든.”한다. 어린 시절에는 야생의 공간에 쉽게 드나들 수 있다. 그렇다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으며 야생으로의 그리움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내 안에는 아이가 살아있다. 내가 타닥타닥 칼질을 할 때마다 티스푼 아주머니는 나에게 말을 건다. 청소기를 돌릴 때는 하늘을 나는 코끼리가 옆에서 날아다닌다. 초콜릿을 먹을 때는 윌리 웡카 씨가 새 발명품을 자랑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을 때마다 나는 내 안의 아이에게 다시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