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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y 09. 2023

주말에는 팬케이크!

필라델피아 생활

어릴 적 엄마의 찬장에는 늘 오뚜기 팬케이크 가루가 있었다.

일요일 오전이면 엄마는 찬장에서 팬케이크 가루를 꺼내 팬케이크를 만들어주셨다.

엄마는 팬케이크를 한 번 구우면 한 사람에 한 두장이 아니라 몇 장을 먹고도 남을 만큼 구웠다.

심지어 크기도 얼마나 큰지!

손바닥 크기가 아니라 22센티 프라이팬 크기였다.

따뜻하고 달콤한 팬케이크에 엄마가 만든 딸기잼이나 포도잼을 얹어서 우유랑 같이 먹으면 어찌나 술술 넘어가던지.


외할머니가 아프셔서 엄마가 집을 며칠 비웠던 적이 있다.

외갓집은 부산 부천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조치원역에서 내린 다음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가야 나오는 소백산 아래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니 엄마는 아무리 서둘러 돌아오려 해도 사흘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작은엄마가 나랑 남동생을 돌봐주려고 오셨다.애도 아니고 초등학생이었으면서 나는 작은 엄마한테 팬케이크를 만들어달라고 졸랐다.

지금 돌이켜보니 얼마나 버릇없는 행동인지.

아마도 나는 엄마 빈자리를 팬케이크로 달래고 싶었나보다.


주말아침에 팬케이크를 먹는 건 내 로망이기도 했다.

삐삐롱스타킹을 읽으며 나도 삐삐처럼 팬케이크를 척척 구워내고 싶었다.

미드 가십걸에서 남주인 댄 햄프리의 아빠가 팬케이크를 멋있게 구워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팬케이크를 잘 굽는 남자랑 결혼해야지’ 했다.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나는 삐삐처럼 프라이팬을 손목 스냅으로 조절해 팬케이크를 뒤집고 싶었지만, 아이 둘을 낳고 키우고 나니 무리다.

심지어 나는 무쇠팬을 쓰니까 그건 패스다.


그렇다면 이제 달콤하고 멋지게 만드는 일만 남았는데.

우리 가족 최애 팬케이크는 수플레 팬케이크였다.

그런데 이번 주말 순위 변경이 있었다.

처음으로 밀가루 대신 아몬드 가루를 넣고 팬케이크를 만들었다.

남편과 아들이 늦잠을 자고 있어 딸과 나 각각 두 개씩 먹으려고 네 개.  


동그란 계란프라이를 만들 수 있게 모양이 나있는 프라이팬에 네 개 구웠다.

딱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팬케이크를 이 층으로 쌓고 슈거파우더를 뿌리고 블루베리를 얹었다.


아몬드 팬케이크는 묵직하고 고소해고 든든했다.

"엄마, 이 팬케이크 고소하고 맛있다."

역시 딸은 맛 차이를 느꼈다.

"무슨 가루로 만들었게?"

"음... 몰라."

"아몬드 가루."

"진짜? 맛있어. 이제 이렇게 먹을래."

손바닥만 한 팬케이크를 한 개씩 먹었는데 배가 불렀다.

역시 견과류라 든든하구나.

자고 있는 남편과 아들도 깨워 같이 먹었다.

늦잠도 깨우는 팬케이크다.

달콤하고 고소한 팬케이크.


주말 아침에는 역시 팬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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