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 May 17. 2023

균형잡기 - 서커스

필라델피아 생활

     

“엄마, 오늘 서커스 연습했거든. 내가 하는 건 스틸트야.”

“뭐라고? 스틱스?”

“아니. 스틸트. 스티 해봐. 그다음에 스티~일트.”

“그런 말도 있어?”

“스틸트는 이렇게 손을 뒤로 해서 잡아야 하거든. 그래서 팔이 엄청 아파.”

하고 아이는 거실에 벌렁 누웠다.

“아~ 나 시원한 거 먹고 싶어.”     






일주일 동안 아이는 스틸트를 연습했다. 스틀트는 서커스에서 장대에 올라가 균형을 잡으면서 걷는 묘기다. 금요일 오후에 열릴 서커스 공연을 위해서 4학년 전체 아이들은 하나씩 묘기를 연습했다. 스틸트, 저글링, 쟁반 돌리기, 중국 요요, 체조, 곤봉 돌리기 그런 묘기들 말이다. 5월에 아이들 서커스 공연이 있을 거라는 학부모회의 메일에 ‘웬 서커스인가.’ 했다. 알고 보니 지금 펜실베니아 주를 투어 하는 서커스단에 학부모 한 분이 연락해서 끝없이 학교와 서커스단의 시간을 조율해 결국 이 일을 성사시켰단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이 학교는 참 유별나다. 원래 서커스도 하고 그러나?’ 생각했는데, 올해 4학년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던 거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또 가방을 휙 던지고 거실에 드러누웠다.

“엄마, 나 스틸트에서 점프도 할 수 있다. 서커스 선생님이 할 수 있는 학생 나밖에 못 봤데. 그리고 케빈은 넘어져서 선생님 죽일 뻔했다니까.”

“그래? 균형 잘 잡혀? 전에 민속촌에서 해본 적 있잖아. 그때 진짜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균형을 놓쳐서 흔들릴 땐 잠시 멈추고 흔들리다 보면 균형이 잡혀. 그리고 잡는 법이 따로 있어. 다음에 또 민속촌 가면 내가 스틸트 잡는 법 가르쳐줄게.”      



‘잠시 멈추고 흔들리도록 둔다.’라니. 그건 요가 선생님이 늘 하는 말이었다. 그건 서커스나 요가 같은 세계의 공통 언어인가? 요가를 시작했을 때 나에게 제일 싫어하는 동작이 뭔지 물었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균형 잡는 자세하고 대답했을 거다. 한 다리로 서서 두 팔과 남은 다리를 바닥과 수평으로 쭉 뻗는 자세를 할 때면 정강이 앞이 뻐근하게 아파서 선생님이 5, 4, 3, 2, 1 구령하는 동안 포기하고 싶어지곤 했다. 한 다리로 균형을 잡고 같은 쪽 팔을 발 30센티미터 앞에 두고 나머지 다리를 골반 높이로, 남은 팔을 천장으로 찌르는 반달자세를 할 때는 올린 다리가 뒤로 쿵 떨어지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흔들리고 쿵 떨어지는 걸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사실 맘이 상했다. 다들 숨도 가쁜하게 쉬며 해내는데 왜 나만 떨어지는 거지? 그야말로 ‘말 시키지 말아 줘.’ 기분이었다. 지금은 매일 다른 동작들을 연습하다 보면 안 되던 동작들도 자연스럽게 되는 날이 온다는 걸 알지만 그땐 몰랐으니까. 그래, 균형을 잡다가 넘어지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면 된다. 흔들릴 때는 흔들리도록 두면 된다. 그게 요가를 하면서 익힌 방법이었다.      

너, 뭐 하고 있니?

나? 균형을 잡고 있어.

힘들지 않니?

말 시키지 말아 줘. 지금 집중해야 해.     

잠깐만 너, 너무 서두르고 있잖아!     



그림책 유준재의 <균형>에는 서커스 하는 아이가 나온다. 아이는 머리에 원뿔 모양 모자를 쓰고 아슬아슬하게 뽀족한 지렛대에 걸쳐진 가느다란 줄 위에서 애써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집중하느라 그런 건지, 아니면 즐겁지 않은 건지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러다 친구가 나타나 함께 하자고 한다. 아이는 결국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균형을 잡는 법을 익힌다.    


 

아! 그림책에서도 볼 수 있고, 요가에서도 서커스에서도 볼 수 있는 함께 균형 잡는 법을 삶에 적용하기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심지어 미국에 온 지금은 ‘영어를 포기하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평생의 숙제 같았던 영어가 말이다. 왜 중간이 없는 거지? 이런 일들 뿐 아니라 ‘오늘 저녁엔 뭐 먹을까?’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결정도 만만찮다. ‘비빔면이냐! 스파게티냐! 라면이냐!’ 이런 결정들 말이다. 평생 제일 자주, 많이 하는 고민 같기도 하다. 스파게티를 먹자니 점심에 피자를 먹었고, 비빔면을 먹자니 너무 고탄수화물 음식인 것 같고. 이런 일들조차 역시 균형인 건가?     


 

모든 결정들 앞에서 온탕과 냉탕을 들락거린다. 일상의 삶은 나랑 딱 붙어 있어서 멀리 내다보는 게 힘들다. 매일 ‘지금 뭘 할지.’ 결정하는 것이 삶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일주일, 일 년, 혹은 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럭저럭 균형을 잘 잡아 왔군!’ 알게 된다. 가끔 이렇게 ‘함께 균형을 잘 잡아왔는지’ 돌아보게 되는 그림책을 만나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게 그림책의 힘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균형을 잘 잡고 살고 있냐고? 그건 좀 더 살아봐야 할 것 같아요. 뭐, 밥은 그럭저럭 균형 잡힌 식단으로 먹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꽈배기가 먹고 싶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