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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y 20. 2023

쥐의 흔적

필라델피아 생활

지겹게 비가 와서 장화를 샀더니 비가 딱 그쳤다.

경량 패딩을 빨아 넣었더니 날씨가 쌀쌀해졌다.

아이가 덥다며 졸라 인견 이불을 꺼내 주고 겨울 이불을 빨아 넣었더니 날이 다시 추워져서 도로 꺼냈다.

우리 집에는 쥐가 없을 줄 알았는데, 쥐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침이었다.


어제 수박을 썰다가 몇 조각 떨어뜨린 게 끈적해져서 오래간만에 주방 바닥을 닦았다.

그런데 주방 냄비 선반 아래에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왜 헬로판다 과자가 흩어져 있지? 애들이 먹다가 흘렸나?'

마음에 떠오르는 한 가지 단어가 있었지만 애써 부정하며 과자 부스러기를 쓰레기 통에 버렸다.

선반 아래까지 닦으려고 손을 깊이 넣었다. 

걸레에 과자 가루가 가득 묻어 나왔다.

고개를 숙여 선반 아래를 봤다.

큰 덩어리, 작은 덩어리, 과자 가루가 가득했다. 

그것도 초콜릿이 들어 있는 헬로판다만. 


"여보!"

출근 준비인 남편을 불렀지만 들리지 않는지 오지도 않았다.

과자를 담아둔 상자를 다 뒤집었다.

헬로판다, 빼빼로, 팝코너스, 라이스크리스피, 시리얼.

봉지 하나하나를 살폈다.

모두 멀쩡했는데 헬로판다 봉지는 몇 개나 갉은 구멍이 나 있었다.

'과자를 모두 버려야 할까?'

고민하다 싱크대에 물을 틀고 식초를 넣고 과자 봉지를 몽땅 쏟아 넣었다.

작은 구멍이라도 있는 과자는 처분하고 멀쩡한 과자봉지는 깨끗이 닦아서 플라스틱 통에 넣어둘 계획이었다.


주방에는 피칸도 있었고, 해바라기씨, 땅콩도 있었는데, 쥐는 정확히 초콜릿 과자만 공략했다.

그것도 과자는 남기고 초콜릿만 쏙쏙 다 빼먹었다.

'미국 쥐는 초콜릿 맛도 아는가 보다.'

다른 집에 쥐가 돌아다닌다는 말이 있었는데 우리 집은 예외인 줄 알았다.

아직 쥐랑 눈이 마주친 적은 없는데, 눈이 마주치기 전에 쥐가 좋아할 만한 음식은 플라스틱 용기 안에 넣고 꽁꽁 밀봉해 둬야겠다.


덕분에 주방은 깨끗해졌다만.

이걸 좋아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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