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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n 03. 2023

미국에서도 소풍엔 역시 김밥인가.

필라델피아 생활

"엄마, 내일 도시락 뭐 싸줄 거야?"

"내일 도시락 싸가려고?"

"나 내일 필드트립이잖아!"

달력에 표시해 두는 걸 깜빡해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1번 샌드위치, 2번 샐러드, 3번 파스타 셋 중에 골라봐."

"다른 건 없어?"

"어떤 거?"

"김밥 같은 거."

'김밥을 싸기 싫어서 일부러 선택지를 세 개만 준 건데. 꼭 김밥이어야 하나?'


한국인의 소풍 DNA에는 김밥이 필수인지 같은 아파트 같은 학년 엄마 4명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도 불이 났다.

"내일 날씨 30도까지 올라간다는데, 김밥 괜찮을까요?"

"시금치만 넣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혹시 모르니 소금, 식초랑 설탕 넣어서 단촛물로 간하면 좀 오래간다는데..."

"내일 새벽에 다들 수고하세요!"


하나같이 아이들이 '김밥'을 싸달라고 주문했단다.

이건 DNA인가, 아니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내 맘대로 편한 도시락을 싸려고 했던 마음을 접고 냉장고를 열었다.

재료는 몇 주 전에 만들어 놓은 단무지. 정말 다행이었다. 단무지라도 있어서. 계란, 당근, 오이.

김밥에 넣을만한 재료는 그게 전부였다.

한인마트에 가려니 40분이나 가야 하고. 그냥 있는 걸로만 만들어야지 했다.

새벽이 당근을 채 써는 수고를 덜려고 저녁에 채 썰어두고 오이도 절여뒀다.


두둥

드디어 아침.

7시 10분이 학교에 가는 아들은 김밥 구경도 못하고 학교로 갔다.


일어나 옷을 입고 머리를 묶고 부산을 떠는 딸에게 물었다.

"김밥 몇 개 넣어줄까? 10개면 되겠지?"

"뭐? 나 다 못 먹어. 시간 없단 말이야. 8개."

"8개 먹으려고 김밥 싸달라고 했어? 16개는 먹어야지!"

"8개만 먹으면 안 돼?"


아침 1시간 노동의 결과가 김밥 8개인가? 포일에 넣고 보니 정말 한 줌이었다.


아침으로 김밥 먹었더니 뭔가 밍밍했다.

김밥에는 햄이나 어묵이나 우엉이 들어가서 맛이 어우러져야 맛있는데.

우리 엄마 김밥은 뭐 별로 안 넣어도 맛있는데 내 김밥은 밍밍하지? 나름 간도 미원으로 했는데.


"맞다! 내가 왜 다진 소고기 넣을 생각을 못했지?"

엄마는 김밥에 늘 다진 소고기를 볶아 넣으셨다. 내가 햄을 싫어했기 때문에.

우엉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소고기라도 넣었어야 했는데. 왜 한 발 늦게 생각이 났는지.

소풍 가던 날이면 늘 집에서 참기름냄새가 진동을 했는데.

그리고 아침도 김밥, 점심도시락도 김밥. 그러고도 저녁까지 김밥이 남아있었는데.

나는 겨우 7줄 만들었을 뿐인데 이렇게 피곤한데.

엄마는 도대체 몇 줄을 만드셨던 거지? 30줄?


점심은 남은 컵라면과 남은 김밥이었다.

김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내년 필드트립 때 또 김밥을 싸달라고 하면 이제는 꼭 단서를 붙어야지.

16개 이하는 주문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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