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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y 31. 2023

미국 주유소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필라델피아 생활

왜 아이들은 휴게소가 지나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걸까? 피츠버그에서 9시에 출발해서 게티스버그에 가는 길이었다. 2시간 반 동안 작은 도시를 몇 개 지나쳤고 휴게소도 여러 개 지났다. 이제 조금 출출하기도 해서 “점심은 먹고 갈까?” 했더니 아이들은 “괜찮아!” 했다.


그래서 버거킹, 맥도널드, 서브웨이 기타 프랜차이즈 식당이 있는 휴게소를 지나쳤다.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왜 진작 말하지 않고 이제야?’ 구글맵으로 지도를 확인했지만 다음 휴게소는 적어도 30분은 더 가야 했다.

“30분 참을 수 있어?”

“30분은 힘든데.”

“아니, 왜 터질 것 같을 때 말하냐? 마렵기 시작할 때 말하라고!”

“이제부터는 그럴게.” 화장실을 찾는 건 내 몫. 남편은 운전대를 잡고 있어서 지도를 확인하기 힘드니까.     

“일단 옆 길로 빠질까?” 남편이 말했다.

“옆 길로 빠졌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려고?” 옆 길로 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10분만 더 가면 전망대 있는데 거기 화장실도 있을까?” 나는 구글맵을 확인하며 말했다.

“10분 참는 거 가능해?” 아들에게 물었다

“어떻게든 참아볼게.”


이런, 전망대에서는 정말 전망만 볼 수 있었다. 간이 화장실도 없었다.

“옆 길로 가보자.”

마을이나 식당이 나오길 기대하며 들어간 길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길 끝에는 차가 15대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주차장에 차가 반쯤 채워졌다. 주차장 앞에는 철제 펜스가 둘러져있었고 펜스 안에는 컨테이너 숙소가 몇 개 보였다. 큰 모래운동장에서는 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축구공을 차고 있었다. 모두 아래 위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이 동네 축구 유니폼은 흰 색인가?' 의아했다. 11시, 그늘 하나 없는 운동장이라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날테지만 아이들은 땀 한방울도 흘리지 않는 듯했다. 그만큼 대충 공을 툭툭 차고 있었다.


‘들어가서 아이들한테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근육질 백인 남자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물었다.

“여기 화장실 있나요? 아이들이 좀 급해서요.”

“여기 화장실을 쓸 수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여기는 청소년 감옥이라서요.”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아저씨가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미국인들의 화법은 항상 이런 식이다. ‘저도 정말 그러고 싶지만...’ 이건 듣기 좋아서 배울 부분!

“많이 급하면 제일 가까운 화장실을 알려줄게요. 도로를 따라가면 68번 출구가 나와요. 출구로 나가서 왼쪽 길로 가면 다리가 있을 거예요.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주유소가 있는데 거기가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에요.”

어떻게 근처 화장실까지 줄줄 꿰고 있는 건지 신기할 뿐이었다. 그것도 지도를 펴고 말하는 것처럼 길을 안내하다니. 내비게이션이 따로 없다.      


백인 아저씨 덕분에 늦지 않게 주유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주유소는 우리랑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남자 한 칸, 여자 한 칸이 전부였는데 특히 남자 화장실 줄이 어찌나 길던지.     


화장실을 늦지 않게 쓸 수 있어서 그 주차장에서 주유라도 하고 싶었지만 하필 경유만 취급하는 주유소였다. 뭐라도 요기를 할까 해서 주유소를 둘러봤다. 주유소에서는 핫도그와 햄버거, 토스트 같은 간단한 식사를 팔았다.


우리는 햄버거를 주문했다.

"양상추 넣나요? 토마토 넣나요? 케첩은요? 머스터드 넣나요? 피클은요?" 주문을 받는 직원은 재료 하나하나를 넣을지 뺄지 계속 물었다. '뭔가 꾀죄죄하고 조명도 칙칙해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꽤나 세심한걸?' 생각했다. 패티도 괜찮았고 토마토까지 그릴에 구워서 토마토를 베어 먹어도 물이 줄줄 흐르지 않는 꽤나 괜찮은 햄버거였다. 의외의 소득!      


휴게소를 놓친 덕분에 이상한 청소년 감옥까지 갔다가 간수에게 길을 물어 이상한 주유소에 갔고 덕분에 쉑쉑버거나 파이브가이즈나 인 앤 아웃보다 맛있는 햄버거까지 먹었으니. 이거 꽤 괜찮은걸? 게다가 베이컨치즈버거가 6달러 밖에 안 했다.


"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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