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 May 29. 2023

매트를 펼치는 시간, 치유의 시간

필라델피아 생활

오후 2시 보이스톡이 왔다.

"오후 2시면 한국 시간으론 새벽 3신데 안 자고 뭐 해?"

"자다 깼어." 쉰 목소리였다.


"나 조깅 시작했어. 네가 몇 년 전부터 나한테 운동하라고 했잖아. 어느 날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매일 한강에 가서 달려. 아주 대단하게는 아니고 아주 조금."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어때? 엄청 좋지?" 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눈을 번쩍 뜨였다. 목소리도 아마 '솔'톤이었을 거다.


"어. 네가 생각이 많을 땐 몸을 쓰면 생각이 정리된다고 했잖아. 무슨 말인지 이제 좀 알겠어."

"앉아서 생각만 하다 보면 생각에 휩쓸려가니까. 나는 사실 매트를 펼치는 그때부터 치유가 시작되는 것 같아."


"나도야. 운동화 끈을 묶을 때부터 마음이 새로워져. 그리고 내가 달리는 길에 버드나무가 하나 있거든. 그 머리를 풀어헤친 것 같은 버드나무를 볼 때마다 온갖 괴물 같은 생각들이 다 뻥 날아가는 것 같아. 왜 이제야 운동을 시작했지?"

"지금이 딱 맞는 시기였을 거야."


"그지?"

"그러다 현관을 나가기 싫어지면 그땐 조깅화를 사. 형광색에 아주 화려한 걸로. 템빨로 버티는 거지."


"하하! 그러게! 분명 나가기 싫어질 때가 오긴 할 것 같아."

"템빨로 버티다 보면 또 지나가더라. 그래서 나도 요가복이 많은가 봐."


운동이야기,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국은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단다.

"조금이라도 더 자고 출근해야겠다. 끊을게."

"잘 자."


"좌라락"

매일 아침 8시 반 말아 세워둔 매트 끝을 잡아 펼친다.

내 검은색 매트는 각이 딱 맞게 펼쳐진다.

누웠을 때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매트 위에 앉아 숨을 크게 마시고 크게 내쉰다.

마실 때 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 홀쭉해진다.


가끔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나 혼자 뒤처지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 살면서 언어 스트레스 끝에 영어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스몰토크도 해보고 애써 누군가를 만나려고 했지만 그것도 피곤해진 지 오래다. 하긴, 나라도 한국어가 안 되는 외국인이 지속적으로 말을 걸면 피곤할 거다. 서로 언어교환하는 사이라면 모를까.



다들 눈에 보이는 자격증과 학위를 갖고 있는데, 나는 손에 잡을 수 없는 일들만 벌이고 있다.


매일의 일정에 따라 어떤 날은 20분, 어떤 날은 30분, 어떤 날은 한 시간.

요가를 혹은 필라테스를 한다고 상황은 변하지 않아 나는 그냥 제자리에 있다. 하지만 확실히 날숨과 함께 찌꺼기들을 내쉰다. 내가 앉은자리에는 일 년 전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내가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매트를 펴는 순간이 이제는 일상이다. 그 루틴이 나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그래서 오늘도 매트를 편다.




작가의 이전글 신념이란? - 아미쉬마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