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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n 22. 2023

방학의 시작 - 레몬쿠키

필라델피아 생활

사실 쿠키는 그저 밀가루, 버터, 설탕, 계란 덩어리를 구운 것에 불과하다.

그 덩어리에 레몬을 넣냐, 초콜릿을 넣냐, 견과류를 넣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반죽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을 비롯해서 온 동네 친구집을 통틀어서도 '오븐'이라는 기계가 있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엄마가 어디선가 배워오셔서 자주 만들어주셨던 '빵'도 오븐이 아닌 프라이팬에 구운 빵이었다.

중력분과 베이킹소다, 설탕과 우유로 반죽을 직접 하시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핫케이크 가루를 약불로 천천히 구운 것과 맛이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부산에서 그'빵'을 먹고 자랐는데 대학생 때 서울에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전라도에서 자랐던 친구도 똑같은 빵을, 서울에서 자랐던 친구도 엄마가 그 빵을 해주셨단다.

"우리 엄마는 몇 쟁반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두고두고 먹었다니까."

"우리 엄마도! 나중에는 제발 새로운 거 배워오지 말라고 사정했어."

그 당시 엄마들 사이에 전국적으로 공유되는 레시피가 텔레비전에서 나왔던 건지.


그 빵도 역시 밀가루, 설탕, 계란과 버터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얼마만큼의 양을 넣느냐, 어떻게 반죽하냐, 버터를 실온상태로 넣는지, 아니면 녹여서 넣는지, 차가운 상태로 쓰는지에 따라 빵이 되기도 쿠키가 되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 집에 쌓여 있던 '빵'에 대해선 딱히 추억이랄 것도 없다.

하지만 쿠키는 다르다.


엄마가 쿠키를 구워 주셨던 적도 없는데 쿠키를 굽는 냄새는 향수를 불러온다.

이제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나는 상상 속에서 다시 교복을 입은 아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현실의 나는 처음 쿠키를 굽는 사람처럼 오븐 앞에 서서 쿠키가 익어가는 걸 지켜본다.


쿠키가 오븐에서 나오면 식어야 맛있는 쿠키든 말든 입으로 직행이다.

어차피 트레이로 하나 가득 구웠으니 식으면 또 먹으면 되는걸!

나는 쿠키가 떨어지기 무섭게 늘 쿠키통을 채워야 마음이 편하다.


오늘의 쿠키는 내 맘대로 레몬 납작 쿠키라고 이름 붙였다.

그동안 초콜릿이 듬뿍 들어갔거나 촉촉한 느낌이 나는 쿠키를 구웠는데 오늘은 얇고 바삭한 쿠키를 굽기로 했다.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서 핸드 믹서를 건넸다.

다 큰 아이들인데도 쿠키를 구울 때면 나처럼 설레어한다.

아이들이 버터를 마요네즈처럼 될 때까지 믹서를 돌리고, 설탕을 넣고, 계란을 넣고 알맞게 될 때까지 믹서질을 했다.

엄청난 조수들이다.


나머지는 내 몫.

반죽을 45그램으로 나눠서 레몬제스트와 설탕을 섞은 가루에 굴려 밥그릇으로 납작하게 눌러 오븐에 넣었다.


12분을 기다리고 쿠키가 나왔다.

레몬향이 잔뜩 나는 쿠키다.


아이들은 한국 공부거리를 식탁에 가져와 쿠키를 하나씩 입에 물고 연필을 들었다.

하기 싫어서 잔뜩 골이 난 표정이지만 쿠키로 입막음을 했다.

이렇게 방학이 시작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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