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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n 20. 2023

쿠키도 먹고 싶고 빵도 먹고 싶을 땐? 소보로 빵

필라델피아 일상

사립초등학교는 이미 6월 초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됐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는 6월 중순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7월 중순쯤 여름방학을 시작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여름방학이 이르다.

6월, 놀기 딱 좋은 때다.

아직 찔 듯이 덥지 않아 여행하기도 좋고, 곧 7월이 돼서 더워지면 물놀이하기도 좋으니까.       


“방학에 어디 여행 가세요?”혹은 “아이들 방학에 어떤 캠프하나요?”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는 인사다.      


방학 후 첫 토요일 아침. ‘버터에 식빵 구워 먹어야지.’ 하면서 냉동실을 열었는데.

이런, 빵이 하나도 없다.

비스코티와 초콜릿쿠키가 들어있던 쿠키통도 텅 비었다.

어떻게 한 번에 다 없는 거지?

늘 아침으로 빵 한 조각을 먹는 나에게 냉동실에 빵이 없다는 건 밥이 없는 것과 같다.

단, 밥은 쌀을 씻고 밥솥 버튼을 누르면 “삐리릭,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소리와 함께 30분만 기다리면 되지만 빵은 3시간 30분이 걸린다는 것.

그건 그렇고 마지막 빵은 나 몰래 누가 먹은 거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팬케이크라도 구워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데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달콤한 소보로 빵이 생각났다.

빵 반죽과 쿠키 반죽, 두 가지 반죽을 해야 하는 게 귀찮아서 먹고 싶어도 미루던 빵이다.

40분 거리 파리바게트에 소보로 빵을 팔긴 한다.

자세히 가격은 안 봤는데 3.5달러 미만 빵은 못 봤던 걸로 봐서 40분을 운전해서 3.5 달러를 내면 소보로 빵을 살 수 있단 말이다.


‘에잇, 차라리 만들고 말지. 만들어도 3시간 반. 한인마트까지 오가고 장을 봐도 3시간 반이잖아!’     


나는 또 강력분을 탁탁 꺼내서 우유, 설탕, 소금, 이스트, 버터를 넣고 반죽기로 윙윙 돌렸다.

이제는 소보로를 만들 시간.

어라, 땅콩버터가 없네? 아몬드 버터뿐이다. 어쩔 수 없지.

아몬드 버터랑 무염버터를 휘휘 젓다가 설탕을 넣고 휘휘 젓고 계란을 넣어 또 젓다 보면 팔이 아파온다.

오늘치 팔운동은 끝내도 될까 싶다.

박력분과 아몬드가루 베이킹파우더를 채에 쳐서 넣고 섞어 냉장고 속으로 쏙.     


1차 발효가 끝나고 휴지가 끝난 반죽을 8개로 나눴다.

소보로 빵이 8개나 생기는 거다.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

소보로 빵을 만들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빵 반죽과 쿠키 반죽을 합체할 시간이다.

둥근 빵 반죽 한 면에 물을 묻혀 소보로에 꾹 누르면 빵에 소보로 쿠키가 잔뜩 묻는다.

욕심껏 소보로를 묻힐 수 있어서 좋다.


그 상태로 2차 발효를 하면 빵 반죽이 부풀면서 소보로 쿠키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다.

그러면 갈라진 소보로 틈새로 빵 반죽이 살짝 살짝 보인다.

그럴 때면 ‘빵 반죽을 더 꾹 눌러서 소보로를 더 많이 얹었어야 했나?’ 하곤 한다.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은 소보로 빵 반죽이 부풀다 보면 소보로 쿠키가 바삭하게 갈라진다.

'역시 소보로를 더 얹었어야했어.'


이미 집은 아몬드버터와 빵 냄새로 가득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던 남편과 아이들이 식탁으로 모였다.

컵 가득 찰방찰방 우유를 따르고 따뜻한 소보로 빵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나는 소보로 빵을 먹을 땐 소보로부터 떼어먹는다.

그래서 쿠키도 먹고 싶고 빵도 먹고 싶을 때는 소보로 빵을 먹으면 된다.     


어릴 적 학교 간식으로 소보로 빵, 단팥빵, 크림빵이 나오면 나는 늘 소보로 빵을 골랐다.

달콤한 소보로를 뜯어먹느라 끈적해진 검지와 엄지를 쪽쪽 빨아먹고 남은 빵을 앙 먹고 시원한 흰 우유를 들이켜면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지경이었다.      


“뭐야, 소보로가 덜 단데! 소보로 빵은 원래 더 달아야 하는 거 아냐?” 남편의 불만 섞인 목소리.

“뭐? 이 정도면 단데.” 내 빵에 적응된 아이들은 이 정도도 달다고 생각한다.

사실, 소보로 쿠키에 넣어야 하는 설탕 양을 평소보다 10g 줄였는데, 남편 입은 참 정직하다.     


긴 여름방학도 소보로 빵처럼 각자도 즐겁게, 함께도 즐겁게 보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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