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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n 29. 2023

비가 와도 운동은 계속된다

필라델피아 방학 생활

여름이라기엔 시원한 날들이 이어졌다.

원래 펜실베니아주도 한국처럼 장마철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체류하는 동안에는 매일같이 비가 내리니 ‘여기는 비가 많이 오는 곳이구나.’ 생각할 수밖에.


그런데 오늘 중국인 친구랑 이야기해 보니 올해 날씨가 이상한 거라고 한다.

원래는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다가 갑자기 맑아지지 않았다고.

이상기온이란다.


다른 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요즘 펜실베니아는 비가 올 때마다 천둥 번개가 친다.

쏴아아, 우르릉 쾅쾅, 번쩍번쩍.

세상 요란하다.

밤이면 아이들과 그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방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번개구경을 하곤 한다.


그래,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면 그럭저럭 괜찮다.

하지만 딸아이 소프트볼 시합이 있을 때 꼭 비가 오는 게 문제다.

미국사람들은 비에 젖는 걸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비에 머리랑 옷이 비에 젖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아기 캐리어도 비닐차양막으로 덮거나 하지 않는 걸 보곤 깜짝 놀랐다.

심지어 손에 우산을 들고 있는데도!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강하게 키우는구나!' 싶다.


딸은 야구랑 비슷한 소프트볼을 한다.

원래 야구를 하고 싶었는데 야구팀에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자 아이들은 야구와 비슷한 소프트볼을 한다.


방학 전 학군 내에서만 하던 경기가 끝나고 방학에는 학군 별로 한 팀씩 선발해서 주변 학군들과 토너먼트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가 있는 날마다 비가 온다는 것!

운동장은 예정되어 있고, 심판도 그 시간에 맞게 예정되어 있는데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라면 그냥 맞고 진행한다.

아기 때부터 우산 없이 강하게 큰 미국인들이 아닌가!

그런데 비가 쏟아지는 날이 많으니 문제다.


역시 지난 주말에도 경기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비를 맞으며 타석에서 배트를 들고 섰다.

투 스트라이크.

딸아이는 긴장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때 '우르르 쾅쾅'

딸아이는 얼른 배트를 내렸다.


내가 사는 곳은 고층건물도 없고, 여기는 운동장이라 근처에 높은 나무도 없고.

알루미늄 배트를 들고 있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모두 홈으로"

심판이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은 다급하게 홈으로 들어가 비를 멈추길 기다렸다.

아이들은 그새를 못 참고 비를 맞으며 술래잡기를 하고 놀긴 했지만.


비가 핑계가 되지 않는 곳이다.

비가 오는데도 경기를 진행한다고 화를 내는 부모도 없다.

왜 비를 맞고 있냐고 뭐라도 입거나 우산을 쓰라고 채근하는 부모도 없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고 협박하지도 않는다.


참 비에 강한 사람들이다.


덕분에 젖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나도 비에 태연해지고 있다.

비 때문에 시합이 한 시간씩 지연돼도 태연하게 '그럴 수 있지' 하고 기다리는 걸 보면, 성질 급한 나도 변해가는구나 싶다.


한국에 돌아가도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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