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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니앤이코노미 Sep 01. 2020

우리의 경제생활을 바꿔놓은 신용카드 역사

한 달에 1번, 인간은 자신이 쌓은 ‘돈의 업보’를 치른다. 신용카드 결제일은 미룰 순 있어도, 피할 순 없다. 그렇다고 신용카드를 안 쓸 수도 없다. 밥값, 술값, 물건값, 심지어 월세까지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이니까. 인간이 본격적으로 신용카드를 쓴 것은 60년이 채 안 된다. 하지만 신용카드는 짧은 시간 인간의 경제생활을 완전히 바꿔놨다. 우리가 신용카드의 역사를 한 번쯤 훑어봐야 하는 이유다.





신용의 탄생

일상에서 신용은 ‘믿음’과 같은 말로 쓰인다. 그러나 금융에서 신용(信用, Credit)은 이런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금융용어로서 신용은 쉽게 말해 ‘남에게 돈을 빌리는 능력’이다. “신용이 좋다 or 높다”는 것은 이 능력이 높아 남들보다 더 쉽게 큰돈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신용은 등급으로 표시되는데 보통 연체 이력이 없고, 수입이 일정하며, 직업이 확실할수록 올라간다.





신용카드는 ‘신용의 발명’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다. 신용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4000여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남긴 점토판들에서 확인된다. 당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보리, 양모, 은 등을 거래한 기록을 점토판에 남겼는데, 이 판에는 거래한 상품 종류와 양 등이 적혀 있었다. 판을 가진 사람은 구매자를 찾아가 판을 보여주고 돈(은화)이나 물건을 요구할 권리가 주어졌다. 지금으로 따지면, 판 소유자는 ‘카드사’, 구매자는 ‘카드 이용자’ 같은 관계였다.





신용카드의 원산지, 미국

신용카드(Credit card)라는 말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벨라미의 SF 소설 ‘뒤돌아보며 – 2000년에 1887년을(1887)’에 처음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신용카드의 특징이 자세하게 묘사되는데, 현재 신용카드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신기하게 느껴진다.





신용카드는 미국이 원산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1894년 미국의 ‘호텔 크레디트 레터’라는 회사가 호텔 숙박이 잦은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발행한 편지 형식의 신용보증문서(신용장)는 신용카드의 효시로 평가된다. 1914년 미국 석유회사 ‘제너럴 페트롤륨’은 단골에게 외상 판매를 위한 카드를 발급했고, 1920년엔 미국의 일부 상점은 ‘지금 사고, 나중에 갚는(Buy now, Pay later)’ 결제 방식을 도입했다. 1928년 미국 백화점들은 군대 인식표와 비슷하게 생긴 ‘차저 플레이트(Charga-plates)’를 발행해 신용 결제의 기반을 쌓았다. 차저 플레이트를 가진 고객은 물건값을 치르지 않아도 먼저 물건을 들고 백화점을 나갈 수 있었다.





최초의 현대적 신용카드, 다이너스 클럽

우리가 아는 현대적 신용카드는 1950년에 처음 등장했다.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는 뉴욕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친구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계산할 때쯤 호텔에 지갑을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아내 도움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은 면했지만, 이때 경험은 맥나마라에게 중요한 사업적 영감을 줬다. ‘현찰처럼 결제가 가능한 카드를 만들자’는 것. 맥나마라는 곧장 친구와 의기투합해 뉴욕 27개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종이 재질 카드 200장을 고객들에게 배포했다.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 ‘다이너스 클럽(Diner’s Club)’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단, 이에 대해선 반론도 존재한다. 나중에 꾸며진 일화라는 것이다.)





다이너스 카드의 결제 수수료는 7%로 꽤 높았다. 연회비는 3달러. 그러나 현금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 하나로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다이너스 클럽 가입자는 출시 이듬해 4만 명을 돌파했고, 1958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비자(VISA)카드의 전신인 ‘뱅크 아메리카드’가 카드 사업에 뛰어들며 플라스틱 머니 시대가 개막됐다.





마그네틱 띠, 혁명을 이끌다

초창기 신용카드 결제 방식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가맹점 점원이 전표에 카드번호를 기록한 뒤 고객의 서명을 받고, 나중에 이 전표들을 수거해 카드사에 제출하는 식이었다. 또는 점원이 직접 은행에 전화를 걸어 거래 승인을 요청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신용카드가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답은 당시 최첨단 정보 기록 수단으로 각광받던 ‘마그네틱(자석) 띠’였다. 1971년 IBM은 마그네틱 띠를 입힌 카드와 카드조회단말기 ‘IBM2730-1’ 상품화에 성공했다. 카드를 단말기에 긁으면 카드 정보가 은행과 카드사로 전송돼 몇십 초 만에 결제 승인이 떨어졌다. 보통 4분 넘게 걸렸던 결제 과정이 1/10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가히 ‘혁명’이라 부를 수 있었다. 마그네틱 띠는 신용카드가 대중화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1970년까지 9.2%에 불과했던 미국 국민의 신용카드 보유율은 1~2년 만에 약 2배(16%)로 치솟았다.





국내 최초 신용카드는 ‘백화점 카드’

우리나라 최초의 신용카드는 1969년 7월 신세계백화점이 자사의 제품 판매 증진을 위해 발급한 고객 카드다. 신세계 카드가 좋은 반응을 얻자 미도파(훗날 롯데백화점에 흡수), 현대, 롯데 등 다른 백화점들도 앞다퉈 카드 발행에 나섰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해당 카드들은 해당 백화점에서만 결제 가능한 전용 카드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신용카드 모습은 아니었다.





결제처와 관계 없이 쓸 수 있는 범용 신용카드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78년이었다. 당시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은 미국 VISA에 정회원으로 가입하고 신용카드 전표 매입 업무를 시작했다. 외환은행이 스타트를 끊자 금융권은 경쟁적으로 카드 산업에 뛰어들었다. 1982년 상업, 조흥은행 등 시중은행이 참여하는 은행신용카드협회(현 BC카드)가 만들어졌고, 신용카드업법이 개정된 1987년 이후 국민카드, LG카드, 삼성카드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카드사들이 우후죽순 설립됐다.





신용카드는 변신 중

신용카드는 진화하고 있다. 50년 가까이 입었던 ‘마그네틱 띠’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집적 회로(IC)’라는 새로운 옷에 적응 중이다. IC칩은 일종의 ‘초소형 컴퓨터’다. IC 카드란 신용카드에 마그네틱 띠 대신 IC칩을 심은 것이다. IC칩은 마그네틱 띠보다 저장 용량이 크고, 보안 및 내구성이 우수한 게 장점이다. 기존 마그네틱 띠는 자석과 만나면 쉽게 성질이 변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IC칩은 자석은 물론 휘어짐에도 강해 데이터 변조가 쉽지 않다. 현재 국내에선 마그네틱과 IC 방식이 혼용되고 있다.





근거리 무선통신(NFC),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 같은 무선 결제 방식도 차세대 결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흔히 ‘앱카드’ 또는 ‘○○페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결제 때마다 일회용 카드번호를 생성하기 때문에 보안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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