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by 윤늘
영하의 날씨에 몇십 년 만의 폭설이 내린 날이란다.

도시의 높은 빌딩들은 밤이 되어도 반짝이고, 눈이 와도 코트를 포기하지 않은 길쭉한 청춘들은 거리에 나와 울긋불긋 연말을 즐긴다. 다들 신이 났고, 손에는 선물과 케이크가 들려있다.


크리스마스이브란다. 저렇게 양손 가득 걷기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넘어질 수도 있는데 참, 걱정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찰나 어두운 곳에 눈이 갔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서서 담배를 피우던 아가씨가 나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피던 담배를 탁하고 바닥에 던져 짓이겨 밟았다.


반쯤 타버린 담배꽁초를 검은색 높은 구두로 짓이기는 것이 일그러진 그녀의 표정 같다. 그녀는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보통 이런 경우 쉽게 넘어가지 않았고, 이건 시비를 걸러 오는 발걸음이다.


“뭘 봐? 저거 나 치우지. 씨발.”


안전모와 형광 근무복을 입고, 도시의 한복판을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인 내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익숙해지려고 해도 참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추위에 견디기 위해 온몸에 핫팩을 잔뜩 붙여도 빗자루를 든 손은 얼어붙어버렸으니 말이다. 일하고 있으니 참아야지. 뭐.


어떨 때는 구걸하는 거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 때가 있다. 거지는 불쌍하다는 생각이라도 하지, 환경미화원은 세금 낸 본인들이 누리는 청소부라고 마치 노예 취급을 하니 말이다.


“아저씨, 저거.”


이 근처 상가주인이 자기가 내놓고 아무렇게나 던져둔 상자를 가리키며 손가락질한다. 저거 뭐 어쩌라고- 눈은 계속 내렸고, 상자는 차갑고 축축하게 늘어졌으며, 하얀 눈으로 반쯤 덮여있다. 이런 날에는 상자 줍는 할머니도 안 나와서 수거해 주는 사람도 없다.


인도에 쓰레기와 눈을 쓸고 있어서 살짝 내려온 안전모를 올리고 고개를 들었다.

나는 상가주인에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뭐?”


잔뜩 목소리를 낮추고, 상가주인을 째려보며 말했다. 나의 행동에 상가주인이 당황하며 쳐다본다.


“뭐? 뭐라고 했어?”


당황하고 떨리면서도 아닌척하는 목소리로 말하지만, 벌레라고 생각한 청소부가 반말하니 퍽 놀랐겠지. 지난여름 청소하는 나를 보고 세금 먹는 벌레들이라며 뒤에서 욕하던 전적이 있으니까 말이야. 한 번은 들이받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오늘인 것 같다.


“저거 뭐 어쩌라고 나보고.”


“저거 치우라고요, 뭔데 반말해요? 내가 저런 거 치우라고 세금 내는 거 아니에요?”


“반말은 네가 먼저 했고, 네 똥 치우라고 내가 월급 받는 거 아니고.”


“ 똥? 똥이라 했어? 벌레 새끼가 말하는 꼬락서니는.”


아, 저놈의 벌레 소리. 누가 누구한테 벌레라고 하는지 통 모르겠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괜히 시비를 걸었다. 평소처럼 무시하고 지나갈걸 그랬는데. 왜 오늘은, 왜 오늘은 참지 못했을까. 나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 초록색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상가주인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됐다, 꺼지세요. 청소나 하고.”


점점 다가서자 뒷걸음질 치더니, 상가 유리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젊은 새끼가 반말을 한 두 번 했나, 이 거리를 올 때마다 저 새끼가 시비를 걸었던 과거가 생각났다.


더럽고, 치사해도 밥 벌어먹고살려면 저런 돼지 새끼들한테도 굽신거려야 하는 직업인가. 몇십 년째 이 초록색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적응이 안 된다. 몇 번이나 몇십 번이나 저 도로로 나가버리면 금방인데,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눈은 내렸고, 사람들은 행복하게 웃으며 걸어 다닌다.


크리스마스이브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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