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11살 때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타할아버지께 받아서 믿는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다.
동요의 가사에는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라는 것이 있다. 나는 어릴 때 늘 울보였고, 어른이 된 지금도 눈물이 많다. 그랬기에 나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 25일까지 근 1년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산타할아버지가 내게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납득했다. 어린 나이에도 합리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생각도 8살 무렵 사라졌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친구들이 내게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산타할아버지는 없어. 엄마나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야.
진실을 듣고 충격을 받았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매번 크리스마스 때마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고 만나기를 소망했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는지 부모님이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들었던 감정은 왜일까? 왜 부모님은 내게 산타할아버지가 되어주지 않으셨을까? 였다.
머릿속에는 가족앨범 속 언니의 어린 시절 산타할아버지에게 안겨 선물을 받고 웃고 있는 사진이 생각났다. 사진 속 산타할아버지가 부모님이었구나를 깨달았다.
산타할아버지가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11살이 될 때까지 여전히 산타할아버지가 있음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11살 때까지 큰 양말을 접어 방에 걸어두거나,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적어 트리에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산타할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나름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산산이 부서 주었다.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산타할아버지 타령이야, 산타는 없어.” 엄마의 말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외면했다. “아니, 산타할아버지는 분명히 있어.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 게임 cd를 받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런 내 말에 엄마는 깔깔거리며 웃어넘겼다.
8살 어린 남동생의 산타할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게 어떤 선물이 동생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지 물었다. 엄마는 나의 손을 잡고 대형마트에 갔고 고심하여 뽀로로 장난감을 골랐다. 동생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동생은 그다음 날 아침 배게 위에 놓아진 뽀로로 장난감을 보고 좋아했던 것 같다.
내가 12살이 될 때까지 오지 않았던 산타할아버지는 내 동생 4살 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