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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

소설

by 윤늘

행복한 장소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아 둔 이곳.

정작 주인공인 두 사람은 정말로 행복할까? 아니 행복한 척을 하는 걸까?

둘을 축복하는 노래와 박수소리가 이 행복한 장소를 가득 메운다.


넌 결혼 언제 할래?


나를 툭 하니 건드는 엄마의 짜증 섞인 말에 내 얼굴이 찌그러졌다. 그렇다.

결혼 안 한 노처녀가 엄마 손 잡고 사촌의 결혼을 축하해 주러 온 것이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다.


“할 때 되면 하겠지.”


옆에 있던 아빠가 나를 감싸준다. 엄마는 아빠를 째려보며 한마디 더 하려다가 신부와 신랑이 하객 쪽으로 걸어오자 말을 멈춘다. 두 사람만을 위한 자리에서 왜 불똥이 나한테 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염병. 하나밖에 없는 사촌동생인데 안 올 수도 없었다. 38세 2년 뒤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남자친구도 없는 신세인 내가 누굴 축복해 주냐.라고 한탄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신부 측 친인척 가족분들 나와서 사진촬영 있습니다.”

“나가자.”


주섬주섬 가방과 스카프를 챙기며 일어서는 엄마를 뒤쫓아 아빠가 일어선다. 가고 싶지 않다. 몸이 쉽사리 이 불편한 하얀 의자에서 떼어지지 않는다.


“나와. 딸.”

“가.”


후, 가야지. 가서 사진 찍어야지. 곧 마흔을 바라보는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진을 많이 찍어둬야지. 남들 신경 쓴다고 가지고 있는 가방 중에서 가장 비싼 명품백을 들고 왔기에 누가 스크래치라도 내면 안되니까 챙겨야 한다. 애지중지 가방을 한 손에 들고 사진촬영을 하러 나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부른다.


“연희야.”


누구지? 웬 남자가 나를 부르지. 둘째 삼촌이다.


“어, 둘이 삼촌! 삼촌도 왔구나. 애들은요?”

“애들 다 집에 있지. 나만 왔어. 멀잖애.”


삼촌은 멀리 남해 바다에 살고 있다. 서울의 결혼식장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머리가 잔뜩 빠져서 예전의 풍성했던 머리칼은 온대 간대 없는 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정장을 빼입고 와서인지 바닷가에서 배를 타는 선장처럼은 안 보인다.


“근디, 니는 결혼 안하냐? 내가 니 꼬꼬마일 때 사탕 가꼬 마이 놀렸는디”

“결혼은…무슨, 만나는 사람도 없어요.”


나의 힘없는 목소리에 삼촌은 눈알을 굴린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


“거, 일단 한 명 생각나는데…어휴 사진부터 찍으러 가자. 네 엄마 째려본다.”


둘이 삼촌의 말처럼 엄마가 맨 앞줄에 서서 우리를 째려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빨리 와라고 입모양으로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 촬영합니다.”


사진기사의 말에 정면을 바라보고 굳은 표정으로 삼촌과 나란히 섰다. 정면에는 사람들이 식이 끝나자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한 사람만 촬영하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키가 크네.’


키가 190은 돼 보이는 것 같다. 농구선수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큰 키를 가진 남자는 아무 표정 없이 사진촬영을 구경한다. 지인일까?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는데 점점 그가 그냥 사진기사의 보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희야? 뭔 생각을 해. 내리 와라.”

“어?? 어..”


키 큰 남자에게 묘하게 빨려 들어가서 내려오는 타이밍도 혼자 놓쳤다. 다들 뷔페를 먹으러 가자며 식당으로 나를 끌고 간다. 엄마는 옆에서 삼촌과 인사를 나누고 계속해서 내가 결혼을 못한 이슈에 대해 조잘조잘 얘기한다. 문 앞에 서있던 남자를 지나쳐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남자는 우리가 지나치는 동안 내내 촬영하는 사람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삼촌 아까 한 명 생각난다고 한건 무슨 말이야?”

“아! 맞다. 얘 봐라. 니 얘 어떻노”


삼촌은 핸드폰 케이스를 주섬주섬 열더니 사진첩을 뒤진다. 그리고 자신과 낚시를 한듯한 세명의 남자가 찍힌 사진을 보여준다. 뭐야, 누구 말하는 거야?


“누구? 다 아저씬데?”

“뭐라노!! 요기 요기 안 보이나?”


삼촌의 손가락이 다급하게 화면을 확대한다. 그리고 세명인 줄 알았던 사진 속에는 한 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낚시를 하며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이걸로 어떻게 알아봐. 그리고 얼굴도 다 가렸네!”

“흠.. 흠! 그런가? 얘가 그래도 참 착하고 성실한디…여자도 없어. 올해 마흔이랜다.”


마흔? 뭐야. 두 살밖에 차이안나잖아. 괜찮은데? 의외로 삼촌이 적당한 나이의 남성을 소개해주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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