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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외로움_03

_정 수연

by 윤늘

정 수연


그녀는 2년제 영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첫 회사로 여행사를 선택했다. 작은 지역의 국내여행사여서 영어를 쓸 일은 딱히 없었다. 기껏해야 제주도, 일본, 대만 정도의 여행상품을 내놓는 곳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8년을 일했다. 22살에 사원으로 입사해 30살 팀장 직급까지 올라간 그녀는 나름 자신의 일에 자부심도 있었다. 여행사의 직원으로 일을 하는 8년 동안 그녀는 딱 한번 제주도 여행을 홀로 떠났다. 4년 동안 사귀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단 몇 줄의 문자메시지로 이별을 고했다. 그녀는 그 충격을 잊을 만한 무언가가 당장 필요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이었다. 그녀는 헤어지고 1주일 뒤 4년 동안 자신이 찾았던 맛집리스트. 좋은 여행지들을 고르고 골라 자신만을 위한 여행상품을 만들었다.

홀로 하는 여행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여유로웠고 풍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 하루 만에 그 생각은 사라졌다.


제주도 여행은 3박 4일에 일정이었지만 항상 함께였던 남자친구의 빈자리가 느껴졌고, 빈자리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즐겁지 않았다. 계획했던 오름과 맛집투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종일 바다가 보이는 게스트 하우스의 벤치에 앉아 파도가 출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저물어 가고, 푸르렇던 하늘이 주황빛의 노을이 될 때쯤. 게스트 하우스의 여행자들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누군가 그녀의 벤치 옆에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까부터 계속 혼자 아무것도 안 하시고 앉아만 계시던데... 배 안 고프세요?"


훤칠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가 돋보이는 젊은 남성이었다. 초록색 캡모자를 거꾸로 돌려쓴 모습이 개구쟁이 같은데 또 하늘색의 셔츠를 입은 몸을 보니 반듯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 괜찮습니다."


꼬르륵- 그녀의 대답이 무색할 정도로 배에서는 배고프다고 울어댔다. 남자는 그 소리에 살짝 미소 지었고 그녀의 얼굴은 주황빛의 노을처럼 붉어졌다. 그와 그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이름은 박 하준이었다. 나이는 그녀보다 2살 많았고, 그녀처럼 서울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온 여행자였다. 그녀와 달리 그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온 것이었고 그녀의 남은 여행 이틀동안 함께해주었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그녀는 이별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어버렸다.


"서울가서 연락할게."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날, 그녀에게 그가 했던 말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너무나 당연한 결말처럼 둘은 4년의 연애를 했다.


그와 그녀는 마치 천생연분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늘 행복했다. 둘의 행복의 종착점은 결혼이었다.

그녀 나이 30세, 그의 나이 32세. 둘은 내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릴 예비 신혼부부가 되었다.


그렇게 되야만 했다.

그가 파혼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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