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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pr 06. 2024

가족희생양

아무도 모르는 사실

네이버사전


중학교 시절의 왕따, 가족들 사이에서 나의 역할을 한 것은 가족희생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교육받고 자랐기에 가족을 위한다면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나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했고, 화목했다. 그러나 나는 불행했고, 불쌍했고 아팠다.


여태까지 글을 읽은 분들이라면 나의 가족들을 보고 "인간들이 어떻게 저렇게 못됐어? 사람이야? 이기적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좋은 어른이었고, 좋은 부모의 역할을 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가족들은 희생양을 만들어서 우리 가족의 화목을 도모해야 해. 저 녀석을 이용하자!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약해 보이는 애, 말 잘 듣는 애를 조금 덜 신경 썼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경 쓰지 않아도 편했을 것이고, 그것이 당연하게 습관처럼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의 잘못인가? 말을 잘 듣지 말고, 나도 내 목소리를 내고 싸우고 생떼 피우는 어린아이였다면 달라졌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였다. 이미 나는 자랐고, 과거는 과거이니까 현재를 바꿔야 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사랑했기에 아프면서도 고통받으면서도 그 원인이 가족일 것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사랑받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


 사랑받지도 못하면서 사랑을 주는 행위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멀리서 지켜만 보는 짝사랑이 아닌 가족에게 퍼주는 사랑, 연인과의 관계에서 홀로 사랑을 퍼주는 그런 관계에 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희생받았던 과거에 내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랑 같은 거 다 때려치우고, 너 먼저 챙겨. 제발."



 아빠가 내 뺨을 때리고 다음날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 들은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또 처맞고 싶으면 그렇게 해


아빠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다. 때린 것에 대한 조금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말했다. 아빠가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라 했다.


엄마는 얌전히 지내다 보면 잊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지나가라는 말이었다.  그 후 생에 처음으로 트라우마라는 것을 겪었다.


어른남자에 대한 '공포심'

드라마, 영화에서만 보았던 일이 내게 일어났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때 어른 남성이 서서 손잡이를 잡으면 앉아있던 나는 움찔하고 놀라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식은땀과 함께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괜찮아. 저 사람은 아빠가 아니야. 제발 빨리 내려주세요. 제발.


배 나온 40,50대 아저씨들만 봐도 흠칫하고 놀랬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또래 남자아이가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모습은 나를 긴장시켰다. 내게 화를 내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 하는 장난스러운 욕설에도 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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