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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pr 07. 2024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왕따 탈출

 나를 왕따 시키던 참새(전학생)와 비둘기(동급생)와 정면승부를 한 날이 있다. 참새양의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난 후 반아이들의 괴롭힘은 조금 사라졌다. 정확히는 뒤에서 욕하는 것이 덜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거나 같이 밥을 먹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참새가 다시 전학을 가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전학 온 지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또 전학을 간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생각은 "이렇게 가면 어떡해?"였다. 내가 왕따가 된 이유이자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참새가 전학을 가버린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상처받을 만큼 받았는데, 괴롭힘 당했는데, 너는 그냥 떠나가버리면 끝인 거야? 사과라도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억울했다.


"참새야. 너 내일 전학가? 진짜?"

"어. 그렇게 됐어."

"아,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때, 비둘기가 나타났다. 참새와 내 사이를 갈라놓으면서 왜 말을 거냐고 짜증을 냈다. 가슴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듯했다. 욕이 나오려는 것을 꾹꾹 눌렀다.


"왜? 말도 걸면 안 돼?"

"네가 뭔데 참새한테 말을 걸어."

"전학 간다길래 그냥 못 보낼 것 같아서."

"무슨 말이야?"

"아, 아니다. 그냥 네가 따라와."


비둘기를 데리고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왔던 것 같다. 여태까지 설움이 폭발했다. 비둘기의 머리채를 잡고, 할 수 있는 모든 분노를 담아 비둘기를 때렸다. 비둘기도 저항했고, 둘의 개싸움이 시작되었다. 반아이들, 옆반아이들까지 모두 둥글게 서서 우리의 싸움을 구경했다.


"아아아악!! 놔놔!!"


비둘기의 비명소리와 쿵쾅 이는 내 심장소리, 아이들의 환호소리가 엉망진창 섞였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고 즐기고, 웃어댔다. 얼마나 싸웠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와서 싸움이 끝이 났다.


발버둥 치는 비둘기의 손톱에 얼굴이 찢기고, 피가 난 것도 몰랐다. 손톱자국이 얼굴에 잔뜩 생겨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에 나를 따로 불렀다.


"왜 때렸니?"

"왕따 시켰어요 걔네가."

"그렇다고 때리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어땠어 기분이?"

"더 못 때린 게 아쉬워요."


나의 말에 선생님은 기가 막히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화를 내셨다.


"너 선생님한테 말하는 말버릇이 그게 뭐야?"

"부모님한테 전화하실 거죠?"

"그게 중요하니?"

"전화하실 거잖아요."

"안 할 거야. 아니 내가 왜 그걸 말해줘야 하는데?"


담임선생님은 울그락불그락 해지더니, 씩씩거리며 나가셨다. 아빠가 알면 혼날 텐데,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아무도 내편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몇 달의 거쳐 겪었기에 충격도 아니었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리 왕따를 시킨 가해자들이었어도 폭력을 썼다는 것은 완벽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 좋은 선택과 방안이 찾아보면 있었을 텐데, 어린 시절의 내 눈에 보인 선택지는 몇 가지 없었다.

어른, 선생님, 스스로해결하는 방법 3가지뿐이었다.  어른과 선생님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고, 선택받지 못했다.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선택한 것은 잘못이었다.


이후에 엄마는 참새와 비둘기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피자를 사주었고, 그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 제발 나와 놀아주지 않겠냐고 빌었다고 했다. 그리도 돌아온 대답은 "싫어요."


그 이야기를 전 듣는 순간 때린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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