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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Jun 01. 2024

불편한 상황 발생

카페에서

회의 내내 진혁의 머릿속에는 불편 선물함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한번 이용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다 달았으니 말이다. 아침에 그 아주머니와 여자의 행동을 되새기며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회의가 끝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회사 1층의 카페로 향했다. 진혁이 좋아하는 루틴이었다. 회의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


“진..”

“진혁 씨!”


뒤에서 누군가 급하게 진혁을 부르며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네?”

“무슨 생각을 하시는데 세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으세요!”


쫓아온 사람은 동기로 입사했던 같은 과장급 여직원 최수연이다.


“아, 별것 아닙니다.”


가볍게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를 하며 별것 아니라고 대답하는 진혁. 수연은 동기로 입사했지만 나이는 진혁보다 2살 어리다. 진혁과는 부서가 달라 겹칠 일이 거의 없지만 이렇게 가끔 복도에서 마주친다.


“어디 가세요? 1층 카페? 나도 가는데.”

“네.”

“여전해. 정말.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무뚝뚝하고, 딱딱할 말 만하는 게 똑같아. 사람이 안 변해서 좋네요. ”

“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최수연, 말은 많아도 똑똑한 여자 직원으로 동기 중에 제일 먼저 팀장을 달았던 사람.

그런 그녀가 이렇게 귀찮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은 하고 싶은 진짜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눈치 빠른 것도 여전하네요. 이번 주 목요일에 뭐해요? 동기들 회식한다는데, 이번에는 참석해 주시면 안 되나요? ”

수연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 어디서 하나요?”


어디서 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갈 생각은 없지만 물어봐준다라는 질문이지.'


“요 앞에 또 와유 호프집 알죠? 거기서 간단하게 맥주나 마시자는 거예요. 거기 치킨이 진짜 엄청 맛있거든요.

안 오면 후회해요! 그리고 엄청난 사실을 그때 발표할 거거든요! ”


“결혼해요?”


뻔하지 않나? 결혼기가 가득 찬 여자가 발표할 것이 결혼밖에 더 있지 않나? 

‘흠 근데 누구랑 결혼할지는 궁금하긴 하다.’라고 생각하는 진혁이었다


“비. 밀”


쉿 하는 표시로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말하는 그녀는 카페로 먼저 가버렸다. 카페에 들어가니 아침부터 손님이 많았다. 빨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들고 사무실로 올라갈 계획이었는데,

이번에도 계획에 차질이 생긴듯했다. 카페에 주문을 받는 사람은 없다. 


 아예 없어진 지 10년도 더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인사도 해주고, 주문도 받아줬었는데' 하는 라테는 같은 생각을 하는 진혁이었다.


어쨌든 요즘은 핸드폰으로 주문을 하거나 키오스크를 하거나 사내 인트라넷에서 미리 주문을 하고 와야 했다. 그래야만 바로 받을 수 있다. 진혁도 핸드폰으로 미리 주문을 해 놨어야 했는데, 오는 동안에 수연을 만나 주문하는 것을 까먹었다. 젠장.

핸드폰으로 주문을 하려다가 비어있는 키오스크를 보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퍽-하고 진혁의 가슴팍에 무언가 부딪혔다.


“아.. 씨.. 발”


진혁이 키오스크로 걸어가던 중 어떤 남자와 부딪히게 된 것이었다. 그 남자는 다짜고짜 욕을 하며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진혁의 키는 187로 제법 키가 큰 편이고, 매일 아침 헬스를 하기에 몸이 탄탄했다.


그런 그와 부딪힌 남성은 170 초반의 작은 키의 왜소한 50대 아저씨였다.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못 보고 부딪혔으니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죄송? 아오, 아침부터 기분 좆같네. 야 꺼져.”


50대 아저씨는 골프웨어를 입고 있었다. 회사를 온 것은 아닌 듯했다. 근처 골프장을 다니는 회원이겠지.

골프 치러 나온 김에 커피 한잔 하러 온 듯 한 50대 아저씨는 계속해서 짜증을 내며 욕을 했고, 진혁은 그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다.


“왜 자꾸 욕을 하십니까? 사과했잖습니까.”


진혁도 아침부터 꼬인 이 상황에 욱하고 화가 올라왔다.

평소라면 조용히 넘어갔을 일이었는데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 하고 한마디 해버렸다.


“뭐? 네몇 살이야? M소프트? 여기 다녀? 대기업 다닌다고 아주 우쭐대는 거야 뭐야?”


진혁의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을 잡아당겨 진혁의 이름과 신상을 훑어 보더니 휙 하고 집어던졌다.


“뭐 하시는 겁니까! 사과하세요.”


아저씨의 행동에 한번 더 화가 난 진혁의 목소리가 커졌다. 커진 목소리에 카페에 있던 손님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해서 커피를 받고 있던 최수연도 그 상황을 목격했다.


“무슨 일이에요? 진혁 씨?”


수연이 진혁에게 와서 물었다. 50대 아저씨는 씩씩거리며 진혁을 노려보고, 진혁 또한 성질을 내기 직전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갑시다.”


최수연의 말에 정신이 돌아온 진혁은 이 상황이 얼마나 불편한 상황인지 깨닫고, 빨리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도 깨달았다.


“어딜 가, 이 새끼야!”


그렇게 등을 돌려 카페 출입문 방향으로 진혁과 수연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씩씩거리던 아저씨는 옆에 남자 손님이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뺏어 진혁의 머리 통을 향해 던졌다.


퍽- 촤악-


머리를 향해 던졌지만 커피는 진혁의 등을 맞고 떨어지며 흰색 셔츠를 갈색의 물로 적셨다.

얼음은 바닥에 와장창 떨어지고, 힘없는 플라스틱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몇 초간의 정적.


진혁은 살면서 이렇게 분노해 본 적이 있던가? 생각했다. 등은 차갑고 축축했지만 머리는 불같이 불타올랐다.

당장에 저 새끼를 잡아 족치고 싶었다.


“씨발. 그니까 왜 사람을 쳐 무시해 개새끼가.”

50대 아저씨는 모두가 들으라는 식으로 큰소리로 말했다.


진혁은 뒤를 돌았고, 긴 다리로 그에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진혁이 아저씨 앞에 도착하자 아저씨는 움찔하고 놀라 한 발짝 뒷걸음쳤다.


“뭐 씨발.”

“가세요. 그만 소란 일으키시고. ”


진혁은 이를 꽉 물고, 가시라고 말했다. 축축하게 젖은 셔츠가 진혁의 몸에 촉하고 달라붙어서 그의 몸매가 다

드러났다. 근육질의 그의 몸이 보이자 아저씨는 움찔하고 놀랐고, 마지막 자존심으로 씨발이라고 욕을 하며 카페를 나갔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되었다. 진혁은 엎어져 있는 커피를 보고 한숨을 쉬며 카페를 나왔다.


"오늘 일진 진짜 더럽네."


진혁은 젖은 셔츠를 입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진한 커피 향을 흘리며 들어오는 진혁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옆자리 김대리였다.


“과장님? 무슨 일입니까?”

"카페에서 일이 좀 있었습니다. "

"카페에서 커피를 등으로 드시는 일이 있어요? 아니 그게 무슨 일이래요?"


호들갑을 떨며 진혁의 셔츠를 쿡쿡 눌러 대며 놀렸다. 눈치가 없는 김대리임을 알기에 진혁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남는 셔츠 있습니까?"

"있어요. 근데 사이즈가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


김대리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워낙 진혁이 키가 크고 덩치가 있다 보니 사이즈가 차이가 났다.


"괜찮습니다. 그냥 걸쳐라도 놓게요. 찝찝해서 벗어야겠습니다."

"근데 진짜 무슨 일이 있었어요?"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진혁을 쫓아다니며, 김대리가 물었고 그 모습에 아침 멤버였던 이주임도 나타났다.


“어머, 과장님 몸이 엄청 좋으시네요!! 운동 되게 열심히 하시나 보다~”

“어허! 그런 얘기하면 성추행이야! 이주임. 조심해.”


안 듣고 있었던 것 같던 차장이 주임에게 한마디 거들었다.


"근데 진짜 무슨 일이래요? 카페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던데, 그게 설마 과장님이에요?"


이주임은 1층에서 10층 사무실까지 올라오는 사이에 이미 대충 소식을 전해 들은 듯했다. 

소문이 안 나는 게 이상하지만 이렇게 빨리 소문이 날줄은 몰랐다. 진혁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김대리에게 얼른 셔츠를 달라고 말하며 손을 뻗었다.


“셔츠 빨리 주세요.”

“아, 여기 있습니다.”


김대리는 자신의 사물함에서 구겨진 셔츠를 건네주었다. 부끄러웠던 진혁은 김대리가 준 셔츠를 받아 들고는 화장실로 급한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사무실 사람들이 웃으며 놀렸다.


“귀엽네 고 과장!”


차장이 장난스럽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셔츠를 갈아입으러 가는 진혁에게 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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