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치 Jun 02. 2024

불편한 회식

아침 시간이 떠들썩하게 지나간 것과 다르게 오후 시간은 평소와 같이 지나갔다. 

조금 작은 셔츠를 낑겨입은 진혁의 심기가 불편한 것 빼고는 모두 평소와 같았으니 말이다.

"과장님, 오늘 회식 장소 어디로 할까요?"


이주임이 회식 장소 리스트를 들고 와 진혁에게 물었다.


"아, 맞네요. 회식이지. 이주임 가고 싶은 곳으로 갑시다."


집에 가서 씻고 빨리 눕고 오늘의 스트레스를 잠으로 풀어야 하는데 하필 회식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분명히 아침에 회사를 출근하면서 해솔에게 회식이 있으니 저녁은 차리지 말라고 말했으면서 말이다.

애써 웃으며 이주임에게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 소고기 먹어요!"


이주임의 소고기 발언에 옆에 있던 김대리가 박수를 짝-하고 쳤다.


"소 좋지!"


"그러면 저번에 갔던 한우 사랑 갈까? "


"거기 너무 비싸지 않아요? 적당한 곳은 한우네도 괜찮던데..."


'한우사랑이든, 한우네 덜었는지 알아서 해라.'


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의 진혁이었다. 지금은 회식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싫었다. 

오늘은 일진도 안 좋아서 밖을 더 돌아다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도 들었다.


오후 6시, 진혁이 속한 M사의 마케팅부 5명은 북적이는 소고기 가게에 들어섰다. 박 부장, 고진혁, 김대리, 이주임, 막내사원 이렇게 다섯만 오늘의 회식에 참여했다. 


“아니, 오늘 월요일인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김대리가 가게에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김대리의 말대로 월요일 치고 가게에는 손님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 로봇올림픽 태권도 결승전이잖아요. 한국 대 일본이래요! 일본한테 절대 질 수 없죠! 그리고 여기 엄청 큰 화면이 있잖아요. 실시간 중계!” 


막내가 신이 나서 얘기했다. 막내 사원은 이제 갓 26살 남자라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그러든지 말든지 진혁은 핸드폰으로 가게의 테이블 한편의 큐알을 찍는다. 


“뭐 먹을까요?”  


큐알을 찍자 오늘 시킬 수 메뉴와 가격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오늘 들어온 소고기 부위가 추천메뉴에 올라와 있고, 사진과 가격이 적혀있다. 


“적당히 등심하고 채끝? 시킬까요?”


“좋다. 역시 먹는 거는 김대리야.”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꽃등심과 채끝을 3인분씩 주문 목록에 담는다. 


“술도 드실 거죠?”  


“어후, 빠지면 섭섭하지!”  


총괄 책임이자 부장인 박정수 부장이 허허 웃으며 술을 시키라고 말했다. 박 부장은 술을 좋아해서 대머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진혁은 소주와 맥주를 각 2병씩 주문하고, 핸드폰을 닫았다. 요즘 어떤 식당을 가도 주문을 받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없다. 


[3번 테이블.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집에서도 로봇이 밥을 차려주는데, 굳이 사람이 밥을 가져다줄 이유가 없으니까 식당에서도 사람보다 로봇을 대여해서 사용한다.

진짜 맛을 필요로 하는 요리만 사람이 하기에 주방에 가야만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어어!! 시작한다.”  


가게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화면에는 로봇올림픽이 생중계되고 있다.  


“근데 로봇 경기가 재밌어? 나는 사람이 하는 게 더 재밌던데 말이야.” 


박 부장이 물을 마시다가 물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도요! 아니 로봇은 둔 딱 둔 딱 하는 게 별로예요.” 



“둔딱둔딱이 뭐야, 이주임, 크하하.” 


두툼하고 좋은 소고기가 나오고,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진혁도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오늘의 더러웠던 일진이 생각나며 한숨이 나왔다.  


“후.”  


“어? 과장님 한숨 왜 쉬세요?” 


이주임이 진혁의 한숨에 다들 주목하며 물어보았다. 


“아, 오늘 일진이 너무 더러웠습니다. 아침부터...” 


“에? 누구야! 누가 우리 고 과장을 괴롭혔어! 어디, 우리 똑똑이 우리 팀 최고 에이스를 건드려! 데려와!” 


진혁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진혁은 오늘의 일을 직원들에게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했다. 


“... 그래서 결국에 옷이 젖고 올라온 모습을 보신 거죠. 하하.”  


진혁의 어이없이 웃으며 셔츠를 펄럭인다. 


“아니, 그런 병신이 그걸 그냥 내버려두어?” 


진혁의 말을 듣고 화가 난 김대리가 욕을 하며 맥주를 들이켠다.


“그니까요!” 


이주임이 맞장구치며 대답한다. 


“아니? 커피를 사람한테 집어던졌는데 그걸 맞고, 또 그걸 참고 그냥 올라오셨다고요?” 


“한 잔해. 고 과장. 아주 그런 놈들은 다 돌려받을 거야! 마셔!” 


사원까지 합세하며 난리를 치며 호들갑을 떨어대자 진혁은 조금 당황했다. 


“아 뭐, 끝난 일이니 잊어야죠.”  


‘ㅈ같지만 잊어야지, 어쩌겠습니까.’라고 생각하는 진혁이었다. 


“와아아아!!” 

그 순간 갑자기 소고기 집에 환호 소리가 넘실 됐다. 한국과 일본의 로봇 경기에서 간발의 차이로 한국이 이긴 것이다. 


그 소리에 진혁의 마지막 말이었던 ‘잊어야죠.’라는 말이 묻혔다.  


“이겼나 봐요!!” 


“오!! 뭐야. 질 것 같더구먼. 이겼네!” 


“아니, 그래서 고 과장 어쩐다고? 뭐라는지 못 들었어.”


“아, 그냥 잊. 는. 다. 구. 요!” 


진혁은 소란스러운 가게에 분위기 때문에 멀리 앉은 부장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던가. 시끌거리던 가게가 조용해졌다.

가게 안은 정적이 흐를 정도였다.


“아. 죄송합니다.”


좋았던 분위기를 망친 느낌이 든 진혁은 곧바로 가게의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테이블의 어떤 30대 남자가 등을 돌려 진혁의 테이블을 바라본다.


30대 남자는 팔에 문신을 가득하고 목에는 두꺼운 금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배만 잔뜩 나와서는 입고 있는 셔츠가 곧 터질 것 같았다. 


“시끄럽다고 하는 줄 알았네. 지들이 제일 시끄러우면서 말이야.” 


칵- 퉤 


그는 일부로 침을 바닥에 뱉으며 시비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남자의 비꼬는 말과 행동에 마케팅부 모두가 화가 났고, 진혁도 열이 받았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진혁은 빠르게 사과했다. 


‘아, 진짜 일진 개 더럽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사회인으로서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니, 저기요. 저희가 뭐가 시끄러웠어요? 방금 소리 지르고 환호한 거는 안 시끄럽고요? 아. 진짜 오랜만에 개 화나게 하네.

갑자기 끼어들어 화를 내는 이주임으로 인해 진혁이 원하는 대로 상황은 좋게 끝나지 못했다. 오히려 불이 붙어 버렸다. 


“뭐? 그거랑 네 새끼들 떠드는 거랑 같아?” 

“새끼? 여기 네 새끼가 어딨어? 네가 나 낳았어? ” 


새끼라는 말에 이주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주임이 일어나자 남자도 일어나 이주임에게 욕을 했다.


“그만하세요. 어휴 술 드셔서 두 분 다 좀 격하시네.” 


안절부절못하며 김대리가 이주임 앞에 서며 상황을 제지한다. 막아서는 김대리를 밀치며 이주임은 옆 테이블 남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대리님은 좀 나와봐요.”


“아니, 이주임 참아봐.”  


김대리의 애원에도 이주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남자에게 다가섰다. 


“ 뭐가 달라? 소리 지르고 시끄러운 건 똑같아. 아저씨야. 술 먹고 곱게 집에나 쳐가지. 왜 시비를 걸고 지랄이야.” 



“뭐 지랄? 야. 너 뭐 하는 년이야.” 


“년? 년이라 했어?” 



“그만, 그만!!” 


상황은 점점 격해지고, 난장판이 되어 갔다. 남자는 이제 이 주임에게 곧 달려들 기세였고, 진혁과 다른 직원들은 이 상황을 빨리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주임 취했어. 저런 사람 상대 하지 말고, 집에 가자.” 


“경찰 불러요.” 


“경찰? 그래 불러 씨발. 야 로봇 뭐 해 빨리 경찰 호출 안 하고!”  


지나가는 서빙 로봇을 붙잡고 소리 지르는 남자의 모습에 진혁은 한숨만 나왔다. 


‘진상 손님도 저런 진상이 없다고 생각하며 저걸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받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됐고, 갑시다.” 


“너 다음에 내 눈에 띄면 뒤질 줄 알아, 돼지새끼야!!” 


이주임은 김대리와 진혁에게 양팔을 포박당한 채로 가게를 끌려 나가면서도 시비건 남자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남자는 곧바로 뛰쳐나와 욕을 할 듯했지만 그도 주변에 친구들이 뜯어말리는 상황이라 쉽지 않았다.  





이전 05화 불편한 상황 발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